[평창PICK] 김동성, 韓 쇼트트랙의 '신'이라 불렸던 사나이

김병학 2018. 1. 31. 14:0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평창PICK]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한국 동계올림픽사를 빛낸 스포츠 영웅들을 재조명해보는 코너입니다.<편집자주>

[스포츠서울 김병학 인턴기자]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계주에서 김동성(37)과 중국의 리자준이 금메달을 놓고 마지막까지 접전을 펼쳤다. 결승선이 눈앞에 보이던 찰나, 김동성은 스케이트의 칼날을 쭉 뻗었다. 0.053초 차. 정말 짜릿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김동성은 1996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 시니어 무대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진 1997 나가노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당시 겨우 만 17세의 나이로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당대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던 리자준에게 '칼날 들이밀기'로 금메달을 손에 넣으며 한국 쇼트트랙의 아이콘으로 단번에 자리를 잡았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누구나 다 알만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 당시 김동성은 쇼트트랙 남자 1500m 계주에서 압도적인 기량 차이로 무난하게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태극기를 들며 우승을 축하하는 사이 결과가 뒤집혔다. 아폴로 안톤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실격된 것이다. 결국 금메달은 오노의 차지가 됐고, 그의 노력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금메달을 뺏기다시피 놓친 김동성은 빙판 위에서 분노를 원 없이 풀어냈다. 2002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대회 남자 1500m 계주 결승에서 무려 다른 경쟁자들을 한 바퀴 반 차이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하는 '분노의 질주'를 선보였다. 페이스 조절이 중요한 1500m 계주에서 연일 전속력으로 달려나가는 그의 모습에 외신들도 혀를 내둘렀다. 이를 포함해 전 종목 우승(6관왕)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신'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오노 사건과 분노의 질주 이후로 부상과 코치들 간의 불화가 겹쳐 잠시 빙상에서 내려왔다. 연예계 활동 등 쇼트트랙과 잠시 동떨어져 지냈던 그는 2003년 말 절치부심하며 다시 스케이트를 신었다. 대회 출전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후배 양성에 더욱 초점을 뒀다. 그리고 2005년에 안현수, 성시백 등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채 은퇴를 선언했다.

<1998년 2월 18일 스포츠서울 1면>

쇼트트랙 해냈다!…통쾌한 역전쇼

김동성, 0.053초차…남 1000m 우승

한국의 남녀쇼트트랙이 11일동안 막혀있던 금맥을 시원하게 뚫었다.

한국은 17일 나가노 화이트링에서 펼쳐진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김동성(경기고 3)이 첫 금메달을 따낸데 이어 3000m 계주에서도 안상미(대구 정화여고 3)-전이경(연세대 3)-원혜경(배화여고 3)-김윤미(정신여고 2)조가 두 번째 금메달을 터뜨려 나가노의 밤하늘에 두차례의 애국가를 울렸다.

김동성은 4명이 겨룬 결승에서 시종 중국의 리 지아준을 뒤쫓다 마지막 코너에서 힘차게 스퍼트, 결승선에서 약 30cm 차이로 따돌리고 1분32초37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의 리 지아준은 1분32초42로 스케이트날 1개 차이인 0.053초차로 눈물을 삼켰다.

여자계주팀 역시 결승에서 중국과 2파전을 펼치며 인사이드를 허용하지 않는 중국의 뒤를 쫓다가 마지막 2바퀴를 남기고 극적으로 안을 공략해 간발의 차로 대역전극을 펼쳤다. 여자계주팀은 4분16초26으로 중국(4분16초38)과 함께 세계신기록(4분17초63)을 갱신했다.

여자계주팀은 이로써 지난 94년 릴레함메르대회에 이어 2연패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팀은 당시 멤버에서 전이경-원혜경-김윤미가 또다시 참가했고 김소희 대신 안상미가 투입돼 금메달을 일궈냈다.

남자 1000m에 김동성과 함께 8강전에 올라갔던 이준환(한체대 2)은 김동성에 추월할 통로를 열어준 뒤 자신은 아깝게 4위로 처져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채지훈(연세대 대학원) 역시 8강전에서 에릭 베다드(캐나다)와 충돌하며 실격해 메달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1997 나가노 세계선수권 대회 출전을 앞두고 우승을 위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2 몬트리올 세계 선수권대회서 유례없는 6관왕을 차지했다.

안톤 오노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사건도 이젠 한편의 추억이 됐다.

김동성은 아직도 한국 쇼트트랙 역사에서 '신'이라고 불리고 있다. 후배 이승훈은 과거 MBC 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김동성은 신 같은 존재다.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 후광이 비칠 정도"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심판의 부당한 판정으로 큰 시련을 겪었던 김동성은 후배들한테만큼은 이런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은퇴 이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어학연수와 심판 준비 과정을 거쳤다. 비록 주변의 권유로 도중에 코치로 전향하기는 했지만 심판이 돼서 깨끗한 빙상판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해설위원으로 나섰지만 이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위원이 아닌 지도자로 빙판에 다시 복귀한다. 김동성은 코치라는 직함을 걸고 '쇼트트랙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의 위상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예정이다.

wwwqo2@sportsseoul.com

사진ㅣ스포츠서울 DB

Copyright © 스포츠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