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모나리자도 울고 갈 '신비의 미소'.. 유려한 곡선의 '절제美'

기자 2018. 1. 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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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
일본의 고류지 목조반가사유상.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 전준엽이 만난 한국의 美感 - ②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서양의 절대미감, 누드로 표현

동양권에선 佛像이‘시대의 美’

삼국시대 만들어진 국보 83호

생명력 넘치는 아기의 線 따와

긴장된 日 목조상보다 한수 위

물 흐르는 듯 ‘맑은 정신’ 표출

손끝·발끝·입꼬리 의도된 일탈

인류가 만든 가장 빼어난 조각

19세기 로뎅作 ‘생각하는 사람’

단테의 神曲에 매료되어 제작

‘종교적 모티브서 출발’공통점

알몸과 누드는 어떻게 다를까. 영어에서는 ‘naked(알몸)’와 ‘nude(누드)’로 구분하고 있다. 영국의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는 저서 ‘누드의 미술사’에서 ‘18세기 초 유럽의 다른 나라에 비해 예술적 교양이 낮았던 영국인들에게 나체가 예술의 중심 주제가 된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기 위해 쓰이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알몸은 옷을 벗은 무방비한 신체로 수치심과 함께 동물적인 느낌을 주는 상태를 말한다. 이에 비해 누드는 건강하고 자신만만하게 균형 잡힌 육체이며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통한다. 그래서 서양미술에서는 특히 여성의 누드를 통해 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아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비너스다. 서양미술사 첫 장에 등장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는 결코 아름답다고 하기는 어렵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지방에서 발견된 이 돌조각은 키가 작고 뚱뚱하기까지 하다. 구석기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그 시대 아름다움의 상징인 ‘풍요와 다산’을 나타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시대 아름다움의 척도는 이상적인 비례를 찾아내는 데 있었다. 황금비(1:1.618)나 팔등신 비례의 발견이 그런 노력의 결과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그리스 밀로스 섬에서 발견)는 그 시대 이상적 절대 미감을 담아낸 대표적인 작품이다.

15세기의 여성 누드는 서양 배처럼 볼록한 복부와 사과같이 조그맣고 동그란 가슴을 가져야 아름답게 보았다. 17세기에 오면 육중하고 풍만한 여성 누드가 인기를 끌었던 반면, 18세기에는 가슴이 크고 둔부가 튼실하게 균형 잡힌 누드를 원했다. 여성의 일상적 몸에서 누드의 미감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다.

누드화가 없었던 동양권에서는 불상을 통해 시대의 미감을 표현했다. 불상은 서양의 영향을 받아 태어났다. 진정한 세계 국가 건설을 꿈꿨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 원정 때 인도 북부 간다라 지역에 그리스 형상 문화를 심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간다라 불상이다. 그래서 초기 불상은 서양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그에 비해 삼국시대 우리나라 불상은 풍만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당나라 영향을 받아서이다. 당나라의 아름다움은 글래머 스타일이었고, 당대 최고 미인으로 꼽혔던 양귀비는 뚱뚱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었다.

이 시기에 태어난 명품이 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국보 83호)이 그것이다. 사견으로는 지금까지 인류가 창조한 조각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동으로 만들고 금칠한 불교조각으로 한쪽 다리를 무릎에 올리고 앉아서 생각에 잠긴 미륵보살의 형상이다.

반가사유상은 6∼7세기 100년간 꽤 많이 만들어졌는데, 미륵보살을 모델로 삼은 이유는 당대의 시대정신과 연관이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쟁을 자주 치르던 시절이라 백성의 삶은 무척 팍팍했을 것이다. 불확실한 앞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미래의 밝은 세상을 상징하는 미륵사상의 유행을 불러 왔다.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자신도 의지하려는 심리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집중 제작으로 이어졌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백제나 신라 중 어느 나라인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장식성보다는 예술적 감각이 앞선다는 점에서는 충청도 지역(당시 백제)일 가능성에 무게가 있지만, 섬세한 조형성이 출중한 것으로 보면 경상도 지역(당시 신라)이 고향일 수 있다. 그 숱한 세월 이 작품이 어디에 있었고, 어디로 갔었는지 역시 알 도리가 없다. 정체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12년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입수 기록에 의하면 1912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품상인 가지야마 요시히데로부터 2600원(현재 가치로 대략 26억 원)에 사들였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이었던 걸로 봐서 가치를 국제적으로도 공인받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입했을 때의 모습은 불상 전체가 호분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었으며, 얼굴에는 먹으로 표정을 그렸는데 꼬불꼬불한 수염에다 입술이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오래되고 가치가 귀한 불상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기법 중 하나다.

이 작품은 몸체가 풍만하지는 않지만 충만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생명력 넘치는 어린 아기의 몸에서 선을 따왔기 때문이다. 서양 회화사상 가장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누드화를 그렸다고 평가되는 모딜리아니의 선이 연상된다. 가냘프면서도 탄탄한 생동감을 주는 누드화다.

‘생각’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인체에 담아냈다. 56억7000만 년 후 세상에 나타나 모든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이 윤회의 마지막 단계인 도솔천에서 다시 태어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했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능가하는 신비한 미소, 유려한 선으로 단순화시킨 세련된 형태,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에서 보이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시대를 넘어서는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도 맑고 청아한 생각의 이미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런 생각은 걸림이나 막힘이 없는 정신 상태다. 한마디로 맑은 생각이다.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는 듯한 형상으로 이런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입체를 표현한 조각임에도 평면 회화처럼 선이 두드러져 보인다.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선의 움직임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변형시킨 형태인데도 과장이 보이지 않는다. 절제미의 진수다.

형태를 설명하는 선들은 거의 직선처럼 보인다. 정제된 곡선이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흘러내린 선이다. 그러나 힘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에서 맺힌다. 선의 힘을 마무리에 두고 약간의 파격을 가하는 기술의 백미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뺨에 살짝 갖다 댄 손가락이나 무릎에 올린 발가락에서 보이는 일탈의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런 파격은 입꼬리나 눈꼬리에서도 나타난다.

자유분방하게 무장해제시킨 정신이 아니라 절도와 질서 속에 들어선 바른 정신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술에 조예가 없더라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다. 이게 예술의 힘이다.

이 걸작은 당시에도 유명했는지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어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제작됐다.(일본 아스카시대 제작, 목조반가사유상, 교토 고류지)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바로 그 조각이다. 나무로 만들었는데 우리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보인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고 다소 딱딱해 보인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결국 생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체로 표현해 우리 눈앞에 제시하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인 셈이다.

‘생각하는 사람’의 주제는 19세기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 의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무려 1200여 년 후에 제작된 것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사실적인 모습으로 고뇌에 가득 차 있다. 단테의 ‘신곡’에 매료돼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꼭대기에 앉아있는 인간의 모습이다. 고뇌하는 단테를 염두에 두고 제작했다고 하는데, 지옥에서 고통받는 많은 사람을 보고 고뇌에 찬 생각을 표현했다.

지옥의 문 중앙 상단부에 앉은 인체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가, 후에 실물보다 조금 크게 독립된 조각으로 다시 제작했다. 이로써 종교적 색채에서 벗어나 예술성을 확보하게 돼 로댕을 대표하는 예술 작품으로 올라선 셈이다.

로댕이 모티브로 삼은 단테의 ‘신곡’은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후 세계를 기독교적 감각으로 재현한 문학 작품이다. 죽은 후 지옥, 연옥, 천국을 여행하게 되는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 뛰어난 환상성 때문에 서양 예술의 주요한 모티브로 떠올랐다.

지옥은 어디일까. 사실주의자인 로댕의 기질에 비추어 보면 아마 현실일 게다. 그러니까 온갖 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의 생각을 생생하게 담아낸 셈이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육체를 더함도 덜함도 없이 드러낸 로댕의 솜씨는 역시 일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생각을 주제로 한 조각 작품들이다. 하나는 맑은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고뇌다. 그리고 똑같이 종교적 모티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성 높은 조각 작품으로 대접받는 동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불교적 유물 정도로나 인식돼 왔다. 우리의 서구 추종적인 미술 교육 탓이리라.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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