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의생물의신비] 가물치

불현듯 옛일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겨울이었다.
산후 보혈(補血)에 좋다 하여 가물치 한 마리를 서울 경동시장에서 샀다. 집에 와 연탄불에 큰 솥을 얹고는 솥바닥에 참기름을 듬뿍 두르고 가물치를 넣은 후 솥뚜껑을 덮는다. 가물치 힘이 얼마나 센지 이를 악물고 솥뚜껑을 힘차게 누르지만 한참을 지나서야 잠잠해진다. 산후 부기가 덜 빠진 아내가 비릿하지만 가물치 국물을 훌훌 마신다. 이렇듯 가물치는 임신부들이 해산하면 부기를 가라앉히고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많이 찾았다.
가물치는 가물치과의 민물고기로서 진흙이나 물풀이 많은 곳에 서식하는데, 특이하게도 두 콧구멍이 양 눈알 사이에 아주 작게 자리한다. 그러다 보니 흔히 보잘 것 없거나 속이 좁은 사람을 일컬을 때 ‘소갈머리 좁기가 가물치 콧구멍’이라고 하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가물치가 뱀을 닮았다고 하여 ‘스네이크 헤드’(snake head)라 하고, 뱀이 변해 가물치가 됐다는 중국 속설도 있다.

가물치의 몸은 검은빛을 띤 청갈색이며 등은 짙고 배는 희거나 노란 빛을 띠고 있다. 몸은 길고 가는 편으로 길이가 80㎝를 넘는 것도 있다. 치어는 플랑크톤을 먹지만 성어는 다른 물고기나 개구리는 물론이고 허기질 때면 제 새끼까지 마구 잡아먹을 만큼 성질이 사나워 민물고기의 폭군이라 불린다.
우스운 것은 일본 사람들이 1920년대 우리나라 가물치를 일본에 일부러 들여갔는데, 그 가물치가 일본의 토종 물고기를 싹쓸이해 골칫거리라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가물치가 어떻게 미국에 들어갔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잉어, 미더덕, 억새, 칡 등과 함께 생태계를 파괴해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다. 이처럼 외래종으로 홍역을 치르는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듯, 어느 동식물도 어떤 곳이든 정착해 정(情) 붙이면 그곳이 고향이 아니던가.
권오길 강원대 명예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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