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죽음 부른 도로 한복판 '정위치 근무'

김찬호 기자 2018. 1. 2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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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장기 주차장에서 안내 업무를 담당하던 용역업체 직원 김모씨(54)가 차들이 오가는 도로 위에서 주차안내를 하다가 공항 셔틀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용역업체는 ‘도로 위’를 안내 직원의 ‘정위치’로 지시해두고 조금이라도 자리에서 벗어나면 모욕적인 말로 ‘도로 위’로 돌아갈 것을 강요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직 직원의 생명만 희생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2일 오후 5시쯤 김씨는 용역업체로부터 새 방한복을 받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웃으며 “주차안내 업무를 끝내고 옷을 받아 가겠다”고 말한 뒤 전날 새 근무지로 발령받은 제1여객터미널 장기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김씨의 웃는 모습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날 오후 5시30분쯤 공항 셔틀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왔다가 후진을 하면서 김씨를 보지 못하고 치었고, 김씨는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근무지는 4차선 도로 중간인 1~2차선 사이였다.

이 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직원 ㄱ씨는 사고 소식을 전해듣고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며 고개를 떨궜다. 그는 “회사가 직원들에게 ‘도로 위’를 근무 정위치로 지정해주고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일하기 싫으냐’ ‘정위치로 돌아가라’는 식으로 윽박질렀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 ㄴ씨 역시 “회사가 도로 위에 서 있지 않으면 해고할 것처럼 협박하거나 상대적으로 근무가 힘든 지역에 배치해 불이익을 줬다”고 말했다. 이 업체엔 90명 정도의 직원이 교통·주차 관리와 안내 업무를 하고 있다. 대부분 도로 위가 이들의 근무지라고 했다.

문제는 이 같은 ‘비극’이 이미 수차례 예견됐다는 점이다. 또 다른 직원 ㄷ씨는 “이전에도 몇 차례 교통사고가 있었다”며 “도로교통법상 무단횡단으로 돼서 사고가 나면 우리 과실 50%로 가더라. 그때마다 회사는 충분한 치료를 받게 하기보다 빨리 일을 나오라고 재촉했다”고 말했다.

하루 16시간의 근무시간도 위험을 키운 요소로 지적된다. 직원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2시간 근무-1시간 휴식’을 반복하는 식으로 일했다. ㄴ씨는 “계속 밖에 서서 하는 일이다 보니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며 “추운 겨울날 밖에 서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져 앞에 오는 차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비정규직이어서 업체 측에 항의나 건의는 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대통령이 인천공항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마당에 회사에 밉보여 해고라도 당할까 봐 두렵다”며 “회사 내에 제대로 된 노조도 없어 부당한 업무 지시에 항의할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해당 사고를 수사한 인천공항 경찰단 측 관계자는 24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셔틀버스 운전자의 운전 부주의로 수사가 종결됐다”며 “추가 수사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현장의 안전을 감독해야 할 지방노동청은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24일 오전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노동청 관계자는 “원래 교통사고는 조사를 나갈 필요가 없지만 언론 문의도 있고 해서 현장조사를 나갔다”고 밝혔다. 인천공항을 관리하는 ‘원청’ 격인 인천공항공사는 사고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동건강연대 유성규 노무사는 “이번 사고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들어 낸 전형적인 사고”라며 “산업재해를 야기한 업주들에게 벌금형 같은 가벼운 처벌만 계속 내려지니 사고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해당 용역업체 관계자는 “사고가 난 지역이 도로는 맞지만 일방통행 지역이고 큰 위험은 없는 곳”이라며 “업무 특성상 도로 위에서 안내를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 보도블록과 가까운 도로에서 근무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출국장 앞은 주정차 위반이 많고 이용객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도로 위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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