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허용 D-11]① 연명의료 결정 제도 본격 시행..죽을 권리 인정받는다
2월 4일부터 환자가 행복한 죽음을 맞을 권리를 보장하는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시행된다. 우리나라에서 ‘존엄사'가 화두로 떠오른 지 20년 만이다.

존엄사 문제는 1997년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1997년 12월 술에 취해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져 머리를 다친 김모씨가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는데 아내가 퇴원을 요구했다. 당시 병원 측은 퇴원에 반대했지만 김씨의 아내가 퇴원 후 사망해도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자 퇴원시켰다. 김씨는 자택에 도착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고 나서 5분 있다가 사망했다. 이 사건은 ‘살인방조죄' 논란을 불렀고, 김씨를 퇴원시킨 의료진은 살인방조 혐의로 처벌받았다.
이후 2009년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치료를 받아온 김모 할머니의 ‘존엄사 허용’을 두고 논란이 불거졌다. 김 할머니 가족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대법원은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법원은 판결을 내리면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법제화를 권고했다.
김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약 8년만에 연명의료 결정 제도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렸다. 연명의료는 죽음을 눈앞에 둔 임종기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와 같은 의학적 시술로 치료 효과가 없이 임종 과정(죽음)만을 연장하는 것이다. 곧 시행되는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고통스러운 임종기 치료 여부를 환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정부는 제도 시행에 앞서 3달 간 연명의료 결정제도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 연명의료중단 결정 “환자 자기결정권 커진다”
보건복지부는 24일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석달 간 시범사업을 종료하고,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를 본격 시행한다고 밝혔다.
연명의료 결정법에 따라 앞으로는 ‘임종 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이 전제된 환자는 ‘연명의료를 중단해달라’고 의료진에 요구할 수 있다.
단, 모든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한 것은 아니므로 ‘존엄사’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에 걸린 후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고, 점차 증상이 악화돼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 위원장인 권덕철 보건복지부차관은 “한 해 의료기관에서 사망하는 환자가 전체 사망 환자의 75%”라며 “제도가 시행되면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이 존중되고 임종기 의료가 집착적 치료에서 돌봄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본인이 연명의료 의향서·계획서 작성→의학적 판단·환자 가족 동의

연명의료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서류 작성이 작성이 필요하다. 연명의료결정법 상 요건에 맞는 사람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와 ‘연명의료 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남겨놓을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건강한 사람도 작성해 둘 수 있다. 다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을 찾아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서식을 작성해야 법적으로 유효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있는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명으로부터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로 진단 또는 판단을 받은 환자에 대해 담당의사가 작성하는 것이다.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는 연명의료정보포털에서 조회할 수 있으며, 작성자 본인은언제든 그 내용을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실제 병원에서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선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된 의료기관에서 담당의사와 전문의 1인에 의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사망에 임박한 상태에 있는 임종과정 환자라는 판단을 받아야 한다. 그 다음 환자가 스스로 서명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기를 원한다는 사실이 확인돼야 한다.
만약, 연명의료계획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모두 없고, 환자도 의사 표현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라면 평소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의향을 환자가족 2인 이상이 동일하게 진술하고, 그 내용을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경우도 불가능하다면,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해 환자를 위한 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함께 확인해야 한다.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친권자가 결정할 수 있다.
◆ 시범사업 종료…임종기 환자 54명 “연명 치료 안 받겠다”
정부가 제도 시행에 앞서 작년 10월 16일부터 올해 1월 15일까지 시범사업을 한 결과, 임종기 환자 54명이 실제로 연명의료를 유보(처음부터 시행하지 않는 것)하거나 이미 시행 중인 연명의료를 ‘중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시범사업 기간 동안 사전연명의료의향서 9336건, 연명의료계획서 107건이 보고됐고,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이행한 경우는 54건”이라고 밝혔다. 시범사업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작성·등록(5개 기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및 이행(10개 기관) 등 2개 분야로 나눠 진행됐다.

연명의료를 거부한 총 54건 중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이행한 경우가 27건이었고, ‘환자 가족 2인 이상의 진술’로 이행한 경우가 23건이었다. ‘환자가족 전원 합의’를 통해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은 경우는 4건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28건 남성이 26건이며, 연령대별로는 60대가 16건으로 가장 많았다. 54명의 연명의료결정 이행 환자 중 47명이 사망했다.
3달 간 시범사업에서 작성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총 9336건으로 집계됐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았고, 모두 70대에서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서울, 경기, 충청 순으로 많았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총 107건이 작성됐다.이 중 96건(90%)이 말기 암환자가 작성한 것이었다. 남성이 60건, 여성이 47건이었고, 연령대는 50~70대가 86건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했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으로 선정된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을 중심으로 강원대병원, 고대구로병원, 국민건강보험일산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영남대병원,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 충남대병원, 각당복지재단, 대한웰다잉협회 등 13개 기관이 함께 참여했다.
시범사업에 참여한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그동안 법이 없었다보니까 여러 혼선이 많았는데 법으로 명문화돼 정리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의사와 가족이 결정해왔던 일의 상당 부분이 환자 본인에게 넘어온다는 점에서 환자와 가족의 가치관이 적극적으로 반영될 것이며 그에 따른 부담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이윤성 원장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도 시스템과 전달체계를 철저히 관리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연착륙을 지원하고, 적극적 홍보를 통한 제도 확산 및 연명의료에 대한 대국민 인식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권덕철 복지부 차관은 “임종 문화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제도 정립에 다소간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나, 보건복지부·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료계 간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해 제도가 빠르게 안착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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