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민의 inside out] 타이완을 국가로 보면 보복.. 중국의 교묘한 '샤프 파워'

이철민 2018. 1. 2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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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티베트 국가로 표시한 델타항공·메리어트에 사과 요구
사람 심어 獨·호주 내정 간섭도
"소프트파워·하드파워와 달리 협박과 여론 조작으로 힘 발휘.. 장기적으론 중국에게도 毒"
이철민

중국의 '주권'과 '민족주의'를 건드리는 것은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지난 12일 미국 델타 항공과 호주 콴타스 항공은 중국민항으로부터 '불법 콘텐츠'를 즉각 제거하고 오후 6시까지 공개 사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취항(就航) 노선에 티베트와 타이완을 '국가'로 표시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같은 날, 자사 웹사이트 지도에서 타이완을 국가로 표기한 스페인의 패션 기업 '자라'도,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의 지적을 받았다.

지난 11일엔 중국 내 300여 호텔을 운영하는 미국 업체 메리어트가 중국 국가여유국의 비판대에 올랐다. 이 호텔 체인이 의뢰한 캐나다 설문 업체가 호텔 웹사이트에서 고객 설문조사를 하면서 '거주지역'에 티베트·홍콩·마카오·타이완을 따로 설정한 것이 화근(禍根)이었다. 메리어트 미국 직원이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트윗에 '좋아요' 반응을 한 것도 문제 삼았다. 전 세계 매출의 19%를 중국에서 거두는 메리어트는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한다"는 사과 성명을 내야 했다. 이뿐 아니라 설문 업체와의 계약을 즉각 해지했고, 직원도 징계 중임을 밝혔다. 중국 문화대혁명 때 썼던 '교정(rectification)'이라는 단어를 활용해 재발 방지를 위한 '교정 8개 항'도 발표했다. 메리어트는 이런 조치를 하고도 중국 정부로부터 중국 내 호텔 웹사이트와 앱 접속이 1주일간 끊기는 처벌을 받았다.

이에 대해 미국의 CNBC 방송은 "중국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새롭게 민족주의 이슈를 강조하려는 흐름의 일부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작년 3월엔 타이완과 티베트를 국가로 표시한 지도를 썼던 독일 자동차 회사 아우디가 중국인들의 뭇매를 받았다. 아우디는 중 관영 영문 매체 환구시보에 "중국인들을 화나게 한 심각한 실수"를 사과했다.

어느 나라든 자국의 주권을 보호하려는 것은 당연한 움직임이다. 그러나 중국은 막대한 경제력과 시장을 무기로 기업에 대한 노골적인 위협을 서슴지 않는다. 중국의 이런 행태에 대해 작년 말 '미국 민주주의를 위한 기금'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협박과 교묘한 여론·정보 조작을 하는 '샤프(sharp) 파워'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문화를 매개로 설득과 공감을 유도하는 '소프트 파워', 군사력의 '하드 파워'라는 기존 개념과 대비되는 것이다.

중국의 이런 '샤프 파워' 행사는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작년 한 해 호주에선 4개 대학 이상에서 "중국의 민족주의가 상처받았다"는 중국 유학생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영어와 중국어로 '부정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경고 슬라이드를 올린 교수와, 타이완과 홍콩을 따로 분류한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 결과를 소개했던 교수 등이 모두 벌떼처럼 들고일어난 중국 유학생들에게 시달렸다. 인터넷에서 신상도 털렸다. 호주 언론들은 이런 움직임 뒤에는 자국 유학생들을 동원하는 중국 대사관이 있는 것으로 봤다.

중국이 '사기'와 '매수'로 각국 내정(內政)에 간섭하려는 움직임도 계속 감지됐다. 독일 정보기관(BfV)은 작년 12월 "패션 잡지에서 따온 '매력적인 얼굴' 사진으로 위장한 중국 남녀들이 소셜미디어에서 전문직으로 가장해 독일 공무원과 의원 등 1만여 명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뉴질랜드와 호주에선 과거 친중(親中) 경력을 숨기거나 아예 돈을 받고 중국에 대해 우호적인 활동을 한 정치인들이 잇따라 적발됐다.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샤프 파워'의 위협이 거듭되면 대상자가 스스로 민감한 주제를 피하는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샤프 파워'는 중국에도 좋지 않다고 했다. 장기적으로는 해외에서 우호적 여론 형성에 실패하고 대중(對中) 관계를 원활하게 하려는 정당한 노력도 '의혹'을 사게 된다는 것이다.

1990년 '소프트 파워' 개념을 창안했던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4일 한 칼럼에서 "공개(openness)와 투명성이 최고 자산인 민주국가들은 중국의 '샤프 파워' 사례를 적극적으로 노출해야 한다"고 했다.

☞샤프 파워(sharp power)

회유와 협박, 교묘한 여론 조작 등을 통해 행사하는 영향력을 뜻한다. 군사력(하드 파워)이나 문화·가치의 매력(소프트 파워)과는 구별되는 ‘파워’다. 중국과 러시아 같은 권위주의 국가가 내부의 정치적 다양성과 표현의 자유를 조직적으로 억압하는 데 성공했던 파워를 이제 국제사회에도 표출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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