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list] 유럽 리그 선수 트레이드: 승자와 패자 10

편집팀 2018. 1. 22. 07:1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알렉시스 산체스와 미키타리안 트레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중 누가 더 이득을 볼까? 최근 잉글랜드 축구판에 떠오르는 이슈다.

선수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를 항상 웃게 하지 않았다.

솔직히 첼시와 벤피카 중 누가 더 이득을 봤는지 가늠이 안 된다.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였던 루이즈를 영입한 첼시가 조금 더 이득을 봤을 거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포포투=Amit Katwala]

알렉시스 산체스와 미키타리안 트레이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널 중 누가 더 이득을 볼까? 최근 잉글랜드 축구판에 떠오르는 이슈다.

선수 트레이드는 양 팀 모두를 항상 웃게 하지 않았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는 법! 아, 그리고 꼭 선수와 선수끼리 트레이드한다는 법도 없다.


# 앤디 콜 - 키스 질레스피 + 600만 파운드 (뉴캐슬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994-95 시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맨유에서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프리미어리그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우승 주역들을 떠나보냈다. 돌아보면 그 작업은 훌륭한 성과를 거뒀다. 앤디 콜을 뉴캐슬에서 데려왔으니까. 그가 골문 앞에서 놓친 게 한두 개가 아니지만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콜이 모든 경기에서 이기고 흥겨워하고 있을 때, 질레스피는 뉴캐슬 경기장 잔디만 벤치에서 구경했다. 1998년 길레스피는 뉴캐슬을 떠났다. 그 시즌에 콜은 트레블을 달성했다.

+ 최후의 승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사무엘 에투 + 3500만 파운드 (인테르나치오날레 - 바르셀로나)
펩 과르디올라는 바르셀로나의 개혁을 필요로 했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뛰는 즐라탄을 원했다. 특급 골잡이를 노렸다. 2009년 에투를 현금과 함께 보내고 즐라탄을 데려왔다. 모리뉴는 인테르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2009-10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두 팀은 맞붙었다. 즐라탄은 잠잠했고, 에투는 날아다녔다. 에투는 결승전에서도 밀리토와 환상 호흡을 펼치며 인테르의 첫 번째 빅이어를 안겼다. 즐라탄은 펩과 사이가 나빠졌다. 자서전에 “그는 나를 무시했다”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려면 왜 트레이드 했을까?

+ 최후의 승자: 인테르나치오날레


# 파비오 칸나바로 - 파비안 카리니 (인테르나치오날레 - 유벤투스)
2004년, 인테르는 칸나바로를 보내고 카리니를 데려왔다. 칸나바로가 2006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발롱도르 수상자가 될 거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칸나바로는 유벤투스로 와서 부폰, 튀랑, 잠브로타와 함께 막강 수비진을 구축했다. 유벤투스에서 활약은 2006 월드컵 이후 레알 마드리드로 가게 된 계기가 됐다.

카리니는 인테르 1군에 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3년 동안 4번 출전에 그쳤고, 대부분 시간을 임대 생활로 보냈다. 카리니는 2016년 부상으로 은퇴했고, 칸나바로는 광저우 에버그란데 감독직을 맡으며 승승장구했다.

+ 최후의 승자: 유벤투스


# 호베르투 카를루스 + 100만 파운드 - 이반 사모라노 (인테르나치오날레 - 레알 마드리드)
칠레 공격수 사모라노는 1995년 당시 가장 눈에 띄는 스트라이커였다. 38경기에서 28골을 넣으며 레알 마드리드를 라리가 정상에 올려놨다. 포지션 라이벌인 라울과 신경전 끝에 로이 호지슨 감독이 이끄는 인테르로 떠났다. 인테르는 환호했다. 어린 브라질 수비수를 주고 최고 공격수가 왔으니 말이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사모라노는 실패의 실패를 거듭했다. 호나우두에게 ‘9번’을 뺏겨 ‘1+8’을 등번호로 새겼다. 어린 브라질 수비수 카를루스는 레알에서 1997-98, 1999-2000, 2001-2002 시즌 유럽 챔피언에 등극했다.

+ 최후의 승자: 레알 마드리드


# 프란체스코 코코 - 클라렌스 세도르프 (AC밀란 - 인테르나치오날레)
2002년, 레알 마드리드와 인테르를 거친 세도르프는 라이벌 밀란으로 떠났다. 밀란은 이탈리아 국가대표 풀백 코코를 보냈다. 코코는 한때 ‘말디니의 후계자’로 불렸다.

인테르에서 코코의 생활은 끔찍했다. 부상이 있었고,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다. 30세 이른 나이에 은퇴까지 했다. 그 사이 세도르프는 밀란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했고, 세리에A 타이틀을 두 번이나 따냈다.

+ 최후의 승자: AC밀란


# 애슐리 콜 - 윌리엄 갈라스 + 500만 파운드 (아스널 - 첼시)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건 쉽지 않다. 잉글랜드에선 더욱 그렇다. 그것도 런던 라이벌 팀이다. 모리뉴는 첼시에서 큰 활약을 펼친 갈라스를 아스널로 보냈다. 그것도 현금을 얹어서 말이다. 바로 애슐리 콜을 데려오려는 목적이었다. 확실한 잉글랜드 왼쪽 수비수를 원했다.

2006년 여름 이적시장 마지막 날, 첼시는 콜 영입에 성공했다. 갈라스는 아스널로 와서 주장으로 뛰었지만, 트로피와 인연이 없었다. 콜은 달랐다.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동시에 맛봤다.

+ 최후의 승자: 첼시


# 저메인 데포 - 바비 자모라 + 700만 파운드 (웨스트햄 - 토트넘)
여기 또 한 번의 런던팀들끼리 스왑딜 사례가 있다. 저메인 데포는 잉글랜드의 신성으로 엄청난 재능을 가진 공격수였다. 2004년에 웨스트햄에서 토트넘으로 이적하면서 시즌 22골을 기록했다. 토트넘은 데포를 데려오면서 자모라를 웨스트햄으로 보냈다.

자모라 역시 데포와 함께 잉글랜드가 기대한 신예 공격수였다. 그는 데포만큼 이적 후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2005-06 시즌 챔피언십 플레이오프에서 웨스트햄을 승격시키는 결승골을 집어넣었다. 그 후 QPR로 떠났지만…

+ 최후의 승자: 토트넘


# 히카르두 콰레스마 + 1320만 파운드 - 데코 (바르셀로나 - 포르투)
2000년대 초반, 콰레스마는 호날두보다 더 유망한 공격형 윙어였다. 호날두가 보고 배운 선수가 콰레스마였을 정도다. 바르셀로나는 이런 신성을 놓칠 수 없었다. 캄프 누에서 콰레스마는 28경기 1골에 그치며 실망스런 활약을 펼쳤다. 2004년 모리뉴가 이끄는 포르투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했다. 중심엔 데코가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포르투의 영웅을 거액과 콰레스마를 더해 영입했다. 둘 다 유로2004에서 포르투갈을 결승에 올려놓은 주인공이지만, 가는 길은 달랐다. 콰레스마는 포르투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려고 노력했다. 데코는 바르셀로나에서 또 한 번 빅이어를 들어 올렸다.

+ 최후의 승자: 바르셀로나


# 네마냐 마티치 + 2000만 파운드 - 다비드 루이즈 (첼시 - 벤피카)
첼시는 임대 보낸 어린 선수들이 많다. 그들 대부분은 1군에서 뛰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완전 이적한다. 네마냐 마티치도 그중 하나였다. 벤피카로 보내졌고, 첼시는 다비드 루이즈를 얻었다. 마티치는 벤피카에서 핵심 미드필더로 자리 잡았다. 루이즈 역시 첼시의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첼시는 마티치를 재영입했다. 모리뉴와 함께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루이즈는 PSG로 떠난 후 콘테 감독의 부름으로 스탬퍼드 브리지에 재입성했다. 솔직히 첼시와 벤피카 중 누가 더 이득을 봤는지 가늠이 안 된다. 그래도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였던 루이즈를 영입한 첼시가 조금 더 이득을 봤을 거다.

+ 최후의 승자: 첼시


# 이안 라이트 - 여러 물건들 (그리니치 보러 - 크리스털 팰리스)
이안 라이트는 1985년 크리스털 팰리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 전엔 그리니치 보러라는 세미프로 팀에서 주급 30파운드를 받고 뛰었다. 팰리스의 스카우트는 세미프로 경기를 지켜보다 라이트의 놀라운 움직임에 감탄했다. 그래서 그리니치 보러 관계자에게 라이트 영입 의사를 밝혔다.

그는 여러 물건들과 라이트를 교환하자고 거래했다. 트랙슈트, 소시지, 페인트, 냉동 새우, 아이스크림 등. 거래 물품 내용만 해도 수십 개였다. 참으로 이상한 협상이 아닐 수 없었다. 더 이상한 건 그리니치 보러가 “OK”한 것이었다. 라이트는 팰리스에서 117골을 넣었고, 팰리스 팬들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선수가 됐다.

+ 최후의 승자: 크리스털 팰리스

에디트=박경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Copyright © 포포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