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사관 없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 증거 불인정"..임채진 지인 '무고 사건' 새 국면
[경향신문]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20년 지기를 사기로 고소한 사람을 검사가 거꾸로 무고죄로 수사하면서 수사관 참여 없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가 법원에 의해 통째로 증거능력을 부정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검사가 형사소송법 절차를 무시하고 검찰수사관 참여 없이 독단적으로 피의자신문을 진행해온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다.
이로써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와 별개로 검사를 상대로 한 검찰수사관의 적절한 견제 역할에 대해서도 공론화가 필요해 보인다.
18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조형우 판사는 임 전 총장의 20년지기 건설업자를 무고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 등에 대한 16일 공판에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을 기각했다.
조 판사는 “검사가 피의자신문시 검찰수사관의 참여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검사가 작성한 조서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의자 신문시 변호인이 참여한 만큼 강압수사는 있을 수 없었다’는 반박논리를 내세웠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 판사는 “대법판결(1973도2361)을 참고할 때 형사소송법(243조)상 검사가 피의자를 신문할 때 검찰수사관을 참여하도록 한 것은 강압수사 방지뿐 아니라 신문기록의 공정성과 객관성, 입회 수사관의 직무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수사관 참여 없는 피의자 신문조서를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무고죄 피고인과 변호인이 “신속한 재판을 위해 피의자 신문조서에 나온 진술 내용은 부정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조 판사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했다. 검사가 수사관 참여 없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내용의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이에 따라 수사 검사는 피고인이 ‘굳이 부정하지 하겠다’는 조서 내용에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해 법원에 나와 피고인 신문을 해야 하는 ‘수모’를 겪게 됐다.
문제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지난해 초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에 근무한 김모,홍모 검사가 작성한 것으로 이들 검사들은 공문서 조작혐의로 수사를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법원이 검찰수사관 참여가 없었다고 판단한 반면 두 사람이 작성한 2건의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검찰수사관 김모씨 이름이 입회 수사관으로 기재돼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사기죄로 기소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의 20년지기 사업가 박모씨(60)가 무죄를 선고받는 과정에서 구형과 항소를 모두 포기한 검찰은 ‘봐주기 공판’에 이어 ‘조서조작’ 의혹까지 받게 됐다.
박씨는 2010년 ‘국새위조 사기사건’으로 민홍규씨가 구속될 당시 임 전 총장을 통해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며 5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가 2016년12월 무죄가 선고된 바 있다. 반면 박씨를 변호사법 위반과 사기죄로 고소한 민씨의 아내 김모씨 등은 무고죄로 기소됐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박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기 전부터 무고죄에 대한 수사를 무리하게 진행하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진 바 있다.
검찰은 김씨 등을 무고죄로 기소하면서 박씨가 임 전 총장에 대한 수임료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아 중간에 가로챘다는 고소사실을 허위로 판단했으나 재판과정에서 검찰의 기소내용과 다른 증언이 나오고 있다.
2010년 민홍규씨 사건을 맡았던 김모 변호사는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민씨 쪽으로부터 5000만원에 임 전 총장에 사건을 맡겼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후 내가 모르던 수사정보를 먼저 파악해서 알려줬다”고 말했다. 검찰이 김씨 등을 무고죄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사건을 맡았던 조 모 변호사는 “피의자신문과정에서 검찰수사관 참여는 없었고 김모 검사는 태도가 편견에 잡힌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공판과정에서 임 전 총장 20년 지기의 무죄 선고와 고소인에 대한 무고죄 수사과정에서 검사들의 석연찮은 행적과 심지어 조서 조작 의혹까지 드러나고 있지만 대검은 여전히 사태를 지켜만 보고 있다.
김모 대검 감찰1과장은 감찰 실시 여부를 묻는 질문에 “공판검사실 구조상 수사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입회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검사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신문했고 변호인이 계속 입회한 점을 참고해 달라”고 했다. 김 과장 답변은 수사관이 계속 참여는 하지 않았지만 피의자 신문조서에 입회자로 기재할 정도의 참여는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김모,홍모 검사가 김씨 등을 무고 혐의로 피의자 신문을 할 때 입회했던 조모 변호사가 지난해11월30일 법정에 나와서 한 증언은 김 과장의 해명과 다르다.
조 변호사는 “지난해 2월 조사시 수사계장은 8층 영상녹화실까지만 안내하고 바로 내려갔다”며“306호 공판검사실에서 진행된 4월 조사시에는 조사실이 수사관과 검사가 같이 앉을 수 없는 구조였고 수사관은 수사과정 내내 같이 있지도 않았다”도 증언했다.
이처럼 조 변호사와 김 과장의 해명이 엇갈리는 가운데 감찰 실시 여부에 대한 판단을 김 과장에게 맡기는 게 적절한지도 논란거리다. 김 과장은 임 전총장의 20년지기 박모씨가 무죄가 선고되고 거꾸로 박씨를 고소한 사람이 무고죄로 기소될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장으로 공판과 수사를 지휘한 바 있다.
박씨는 지난해 7월 경향신문에 당시 공판진행 상황을 설명하면서 “검사 덕에 무죄가 나온 것”이라고 털어놓은 바 있다. 사실상 공소유지를 해야 할 검사가 피고인인 자신의 무죄를 위해 노력을 해줬다는 것이다.
임 전총장과 가까운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씨의 공판이 열릴 때 방청석에 앉아서 공판 검사가 신문을 잘 하고 있는지 지켜본 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번 사건이 단지 검사 한 두 명의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전직 검찰총장을 의식한 검찰내부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병폐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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