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쾌한 향신료 '고수' 처음 맛볼 땐 너무 이상했어
[푸드트래블-9] 어릴 땐 못 먹었지만 성인이 된 후엔 먹게 되는 음식들이 있다. 예를 들면 쓴맛이 느껴지는 채소나 양파, 파처럼 향이 강하고 매운 음식들. 내 경우엔 카레 속 당근이다. 어릴 땐 그 물컹한 맛이 싫어서 엄마 몰래 남기거나 당근만 모았다가 숟가락에 얹어 가루약 먹듯 한 입에 털어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먹는다. 어른이 되니 갑자기 카레 속 당근이 맛있어진 건 아니고, 음식을 남길 수 없어서 먹는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내가 카레를 만들 때도 당근을 넣는다. 왜냐고? 노란 카레엔 주황색 당근이 들어가야 색이 예쁘니까. 맛은 여전히 모르겠지만.
난 카레 속 당근을 제외하곤 어릴 때부터 가리는 음식이 없었다. 성인이 된 후 난도가 높은 음식을 만나긴 했지만 잘 적응했고(처음 '홍어'를 만났을 때는 좀 당황했다) 어떤 음식과의 만남도 대범하게 대처했다. 그런 나를 휘청이게 만든 식재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고수'였다.


미나릿과의 한해살이풀인 고수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널리 쓰이는 재료다. 잎이나 줄기를 요리에 넣기도 하고 씨를 향신료로도 많이 사용한다. 폭넓은 사용처만큼이나 외국 요리책에도 자주 나오는 재료인데, 잎을 사용할 때는 실란트로(cilantro)라는 이름으로, 씨를 사용할 때는 코리앤더(coriander)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고수는 다양한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났다.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라서 태국에선 팍치, 호찌민에선 라우무이(rau mui), 인도에선 다니야(dhaniya)로 불리며 다양한 음식에 등장했다. 고수는 어떤 나라에선 탕에 들어가 있었고, 어떤 나라에선 샐러드처럼 나오기도 했으며 또 다른 나라에선 카레에 섞여 있기도 했다.


조금씩 고수의 맛을 알아가던 나는 향신료 가득한 동남아 요리에 푹 빠지게 됐고, 동남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에 태국 방콕까지 날아가 쿠킹스쿨에 다녀오게 됐다. 나를 타지의 요리학교까지 이끈 걸 보면 내가 처음 접했던 향채, 고수의 힘은 대단하다.

여전히 내 주변엔 고수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게 언제부터 고수를 먹기 시작했는지를 묻는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여행 횟수가 늘어나고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면서 나의 미각과 후각은 더 단련이 되고 새로운 것들에 저항감이 서서히 사라진 게 아닐까.
고수 맛에 익숙해진 뒤 난 다시 홍콩을 거쳐 중국 선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도착한 중국에선 예의 '그 나라 특유의 냄새'가 났지만, 난 그 냄새가 중국에 처음에 갔을 때만큼 낯설지 않았다. 내가 낯설어했던 그 냄새엔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서 나는 향도 함께 섞여 있을 것이다. 난 이제 그 향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음식과 문화와 사람이 뒤범벅되어 나는 그 냄새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정영선 요리연구가]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모텔 청소부가 쏘아올린 '1000억 벤처' 신화
- "재고없으니 기다려라" 아이폰 배터리 교체하러 갔다 분통
- 2017 현대차 임단협 최종 타결..2차 합의안 노조투표 통과
- 제로투세븐, 알로앤루·알퐁소 봄·여름 컬렉션 출시
- '타미힐피거 키즈', 신학기 책가방 30% 할인
- 강경준, 상간남 피소…사랑꾼 이미지 타격 [MK픽] - 스타투데이
- AI가 실시간으로 가격도 바꾼다…아마존·우버 성공 뒤엔 ‘다이내믹 프라이싱’- 매경ECONOMY
- 서예지, 12월 29일 데뷔 11년 만에 첫 단독 팬미팅 개최 [공식] - MK스포츠
- 이찬원, 이태원 참사에 "노래 못해요" 했다가 봉변 당했다 - 스타투데이
- 양희은·양희경 자매, 오늘(4일) 모친상 - 스타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