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현의 내 인생의 책] ⑤ 에덴의 용| 칼 세이건
[경향신문] ㆍ‘빅히스토리’의 진정한 원조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마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두말할 것도 없이 내 인생의 책이 되었다. 세이건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번역된 책이 없었다. 원서로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유학을 가서야 세이건의 다른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손에 든 책은 <에덴의 용>이었다. ‘코스모스’ 다큐멘터리에 자주 활용되는 ‘우주 달력(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해서 우주 역사를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설명한 것)’이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세이건의 사상의 원류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에덴의 용>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다른 책들도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찾아서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나는 세이건을 사랑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코스모스>를 기적처럼 등장한 20세기 최고의 교양과학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에덴의 용>을 읽고 나서 이 책이야말로 그런 <코스모스>를 만든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 진화의 역사를 고찰한 후 이를 바탕으로 인간의 뇌가 발달하고 더 큰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 인류가 뇌 바깥에 지성의 전당인 도서관을 만들게 된 과정을 인간 지성의 발달사라는 측면에서 깔끔하게 정리한 책이 바로 <에덴의 용>이다. 앞으로의 인류의 지성 발달 과정에 대한 예측과 바람도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뇌과학의 결과를 그저 과학적인 사실 자체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그로부터 삶과 인류에 대한 깊고 넓은 성찰로 이끌어내는 세이건의 서사에 압도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빅히스토리’의 진정한 원조는 세이건의 <에덴의 용>이라고 하겠다. <코스모스>가 현란한 기술을 가진 원숙한 투수라면 <에덴의 용>은 깨끗한 강속구 하나로 승부하는 풋풋한 새내기 괴물 투수라고 할 것이다. 글을 쓸 때 늘 <에덴의 용>의 서사를 흉내 내보려 했다는 것을 이참에 고백해 둔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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