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침술, 한반도 북부 두만강 유역서 시작됐다"
소영자 유적서 나온 골침과 석침, 치료용 '침'의 초기 형태로 결론내
"중국보다 앞선 침술 문화 있었다"
"동아시아의 침술 전통은 '한의학의 본향'으로 알려진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 북부 두만강 유역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침술을 사용한 사람들은 옥저(沃沮)의 조상이었고, 이후 침술 전통은 고구려로 계승됐다."
고고학자 강인욱(48) 경희대 사학과 교수와 한의학자 차웅석(48) 경희대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교수는 최근 대한의사학회 발행 국제학술지 '의사학' 57호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논문 '연길 소영자(小營子) 출토 유물로 본 동아시아 침구류(針具類)의 기원'을 발표했다.
두만강 부근 소영자 유적은 1938년 경성제대 교수 후지다 료사쿠(藤田亮策)의 주도로 발굴된 기원전 12~9세기 청동기시대의 무덤이다. 골침(길이 9~21㎝)과 석침(12~18㎝) 등 대부분 침 종류인 주요 유물이 현재 서울대박물관에 남아 있다. 강인욱 교수는 후지다가 서울에 남기고 간 사진과 보고서를 정리하는 작업을 맡아 2009년 끝냈다. 그는 작업 도중 묘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엔 그 유물들이 바늘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바늘귀도 없고, 당연히 주변에서 나와야 할 방추차(실을 뽑을 때 쓰는 도구) 같은 유물도 없었죠."
'혹시 치료에 사용한 침이 아닐까?' 의문을 지녔던 강 교수는 5년 전 우연히 한 술자리에서 차웅석 교수를 만나 그 얘기를 했다. 순간 차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흥미롭네요. 실물 자료를 좀 봐야겠는데요!" 이때부터 70년 개띠 동갑내기인 두 학자의 '협동 작전'이 시작됐다.
소영자 유적의 골침과 석침은 시신의 배 위에 매우 소중한 물건인 듯 놓여 있었다. 거기서 함께 출토된 '둥근 돌'이 차 교수의 눈에 띄었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위석(�石), 안마용 돌이었습니다. 불에 달궈 국부에 온열 자극을 주는 것이죠." 아마도 청동기시대의 '의원'이었을 사람의 무덤에서 침과 위석을 포함한 다양한 치료용 도구들이 함께 나왔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침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6세기의 상황을 쓴 '좌전'이고, 침이 확실한 실물은 기원전 2세기의 만성한묘(滿城漢墓)에서 나왔다. 황 교수는 "일반적으로 피부를 자극해 치료하기 위한 폄석(�石)이 침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보는데, 지금까지 폄석과 침의 중간 단계가 나오지 않았었다"며 "소영자 골침과 석침이 바로 그 부분에 해당하는 침의 초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폄석이 종기를 째기 위한 도구로 발전하고, 다시 특정 부위를 찌르는 용도로 특화돼 나온 것이 바로 이 침이라는 얘기다.
이 같은 침 유물은 소영자뿐 아니라 북한의 나진, 중국 훈춘·룽징·왕칭, 러시아의 말라야 포두세치카 등 두만강 유역의 인근 지역에서도 나왔다. 두 교수는 "일관된 형태의 의료 도구가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 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발굴됐다는 것은 나름의 의학문화나 지식체계에 근거해 폭넓고 오래 이뤄진 침술의 전통이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고구려 사람이 침을 잘 놓았다는 당나라 '유양잡조'나 일본인이 침술을 배우러 고구려에 유학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은 두만강 유역의 침술 전통이 계승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선 '획기적인 논문'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현숙 연세대 의학사연구소 교수는 "중국 의학과 구별되는 한국 의학의 고대 공백을 복원할 수 있게 하는 실증적인 연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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