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 나누며] "비빔 문화의 맛과 멋 알리려 필사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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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건지산 기슭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인근의 한 비빔밥 식당.
이 식당 주인이자 세서미각 필사본의 주인공인 유비빔(54)·김연수(50·여)씨 부부는 "누군가 시킨 일이라면 절대로 못한다"며 "세서미각은 쓰면 쓸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다"고 밝혔다.
"비빔밥은 다양한 재료가 적절히 섞이고 한데 어우러질 때 참 맛이 나죠. 비빔밥의 고장 전주의 전통과 문화가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 나가 함께 어우러지길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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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이 작은 다이어리 몇장에 다 옮겨 적었다고요?”
지난달 31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건지산 기슭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인근의 한 비빔밥 식당. 손님마다 음식 주문에 앞서 던지는 질문이다. 한옥 주택을 고쳐 아담하게 꾸민 이 식당에 들어서면 사방에 내걸린 그림과 글씨가 시선을 뺏는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얼핏 보면 까만 줄무늬를 새긴 종이 몇장을 뜯어 붙여 만든 액자 같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깨알보다 작은 글씨가 가득 채워진 사실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세서미각의 달인’ 유비빔(오른쪽)·김연수씨 부부가 271쪽의 분량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다이어리 9쪽에 옮겨 적은 것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동욱 기자 |
이 식당 주인이자 세서미각 필사본의 주인공인 유비빔(54)·김연수(50·여)씨 부부는 “누군가 시킨 일이라면 절대로 못한다”며 “세서미각은 쓰면 쓸수록 묘하게 빠져드는 중독성이 있다”고 밝혔다.
손님들이 밀려드는 저녁시간인데도 가장자리 밥상머리에 쭈그려 앉아 노트에 파묻혀 있는 유씨는 29쪽짜리 인문학 서적을 필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글쓰기에 골몰하던 2015년 9월 길라잡이가 될 책 한 권을 접한 뒤 문장력을 기를 수 있는 방법으로 선택한 이후 아홉 권째다.
그가 악착같이 책을 집필하려는 이유는 ‘비빔’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한데 모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15년간 틈틈이 관련 자료 5000여건을 모아 따로 정리해 뒀다.
유씨는 필사에 앞서 2009년부터 전주 한지에 ‘비빔’이라는 두 글자를 수십만개 써넣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하는 작품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한글 자음에 알파벳이나 비트코인(가상화폐)과 같은 문양을 결합해 만든 ‘비빔문자’를 개발했다. 이를 활용해 만든 작품만 줄잡아 200여점. 이 중 20여점은 유명 백화점 초대전에 내걸렸고,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도 있는 ‘비빔문자’는 현재 전북대 박물관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주에서 나는 전통 한지에 ‘비빔’이라는 두 글자를 가득 채워 완성하는 작품 내용은 주로 커다란 ‘비빔’ 단어와 ‘세계지도’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전주비빔밥의 맛과 명성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를 원하는 바람에서다. 최근에는 부인 김씨까지 가세해 소발순지(수제 초배한지·63×93) 10장을 이어 붙인 세계지도에 ‘비빔’을 채워 넣고 있다.
“요즘 같은 겨울만 빼고 연중 공연도 해요. 신명 나는 소리가 입맛을 돋워준다고 손님들이 아주 좋아해요.”
유씨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사물놀이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비빔악보’를 쓰고 ‘비빔공연’을 만들어 식당 손님들에게 선물하는 것은 일상화한 서비스다.
전주세계소리축제가 열릴 때마다 악기를 챙겨 들고 달려가는 자원봉사 공연도 올해로 10년째 해온 일이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셋째 딸을 그때 낳아 이름을 ‘소리’로 지었다.
“비빔밥은 다양한 재료가 적절히 섞이고 한데 어우러질 때 참 맛이 나죠. 비빔밥의 고장 전주의 전통과 문화가 지구촌 곳곳으로 뻗어 나가 함께 어우러지길 염원합니다.”
유씨는 자신의 이름(본명 인섭)까지 개명할 정도로 비빔밥과 비빔 문화에 애착이 강하다. 유씨는 “향후 5년 정도는 필사해야 제대로 된 비빔책을 쓰게 될 것 같다”며 “세계에서 비빔 글자를 가장 많이 쓴 인물로 기네스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전주=김동욱 기자 kdw763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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