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몬스터>-사람의 정신을 파괴하면 뭐가 드러날까?
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을 하나만 고른다면 이것이다.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다.’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파괴하면 인간 안에 잠재한 끝을 알 수 없는 악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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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라사와 나오키 작가의 만화 <몬스터>에서 등장인물 요한이 덴마와 맞서 논쟁하는 장면. 서울문화사 |
심장이 떨려 왔다. 12월 7일. 뉴스에서 오랜만에 ‘형제복지원’이라는 단어를 보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대 국회에 장기간 계류 중인 ‘형제복지원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는 보도였다. 이미 한참 전인 2014년 19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처리되지 못한 법이었다. 그래도 ‘이제서야’보다 ‘이제라도’라는 간절함이 앞섰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나는 약 1년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의 구술기록집을 펴내는 일에 함께했다. 당시 내가 만났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시 곱씹으며 나는 문득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를 떠올렸다.
<몬스터>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과 그에 맞선 인간의 투쟁을 깊이 파고든 작품이다. 1980년대 독일 뒤셀도르프의 한 병원에서 일하던 천재적인 일본인 뇌외과의 겐조 덴마는 자신의 출세를 보장해 줄 시의원 대신 먼저 실려 온 어린아이를 구하는 선택을 한다. 모든 목숨은 평등하다는 신념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살려낸 ‘요한’은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한 어둠을 이용하는 능력을 지닌 악의 화신 같은 존재였다. 9년 후 다시 나타난 요한과 마주한 덴마는 자기 손으로 살려낸 ‘악마’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거두기 위해 요한의 뒤를 쫓는다. 요한의 쌍둥이 동생 안나(니나)도 요한의 폭주를 멈추기 위해 그를 죽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요한이라는 ‘몬스터’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가 드러난다.
‘형제복지원’에서 <몬스터>를 떠올리다
‘몬스터’의 탄생과 성장에 관련된 두 장소가 있다. 붉은 장미의 저택과 511킨더하임. 두 장소에서는 모두 잔혹한 집단살인이 벌어진다. 저택에서의 살인은 한 사람이 저질렀다. 그러나 범인은 안나도 요한도 아니다. 둘은 목격자다. (한 아이는 그 장소에 있었고, 다른 아이는 나중에 그 아이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511킨더하임에서 벌어진 집단살인은 서로가 서로를 죽인 사건이다. 그런데 그 상황이 벌어지도록 사람들을 조종한 것은 요한이다. 511킨더하임은 명목상으로는 고아들을 위한 교육기관이었지만 실제로는 정치범이나 망명하다 잡힌 이들의 자식들이 들어와 학대와 폭력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인간 안에 자리한 악한 본능을 키우고 감정이 삭제된 ‘인간병기’를 만들어내려는 계획이 시행되고 있었다.
붉은 장미의 저택에서의 살인도 주도한 집단은 다르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관련된다.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통제하는 방법을 실험하고 ‘우수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 자리에서 죽은 이들은 모두 그 실험을 기획하고 실행한 이들이었다. 요한과 안나의 부모는 그들의 실험물이었고, 요한과 안나는 그 결과로 탄생된 아이들이었다. 그날 저택의 살인 현장에 요한과 안나 중 한 명만이 있게 된 것은 그들의 어머니가 둘 중 하나를 ‘실험용’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강요에 의한 것이었지만, 어머니가 ‘버렸다’는 사실은 요한 내부의 괴물을 깨우는 계기가 된다.
이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을 하나만 고른다면 이것이다.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다.’ 사람의 정신과 영혼을 파괴하면 인간 안에 잠재한 끝을 알 수 없는 악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일 게다. 한편으로 ‘사람은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말은 그러한 폭력에 저항해 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인간의 내적 힘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도 내가 형제복지원과 함께 <몬스터>를 떠올린 것은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부랑인 교화라는 명목으로 설립되어 매년 20여억원의 국고지원을 받은 시설, 그러나 실제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시민들을 납치해 가두고 강제노역과 가혹행위를 행한 형제복지원은 511킨더하임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511킨더하임은 만들어진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류에서는 항상 현실이 상상을 앞지른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형제복지원 기록을 하면서 처음 악몽을 꾸었다. 이 세계에서는 열 살도 채 안된 어린아이가 흠씬 두들겨 맞는 건 이야깃거리에 속하지도 못했다. 아름다움이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영혼을 찢는 듯한 잔혹함만이 존재하는 장면들이 피부에 달라붙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러나 <몬스터>가 말하듯, 그 모든 일을 겪고도 사람들은 마음속에 ‘보석’을 품을 수 있는 존재다. 1987년 형제복지원 폐쇄 후 아무 것도 없이 거리로 내몰린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무너지는 몸과 마음을 다시 쌓아올리며 삶을 지켜 왔고, 진실을 밝히는 싸움을 시작했다.
현실 속 가해자들은 왜 천수를 누릴까?
내가 무서워하는 건 요한처럼 법망을 피하는 악마적 초인의 존재가 아니다. 그러한 존재가 있다면 아마도 시스템의 희생자들 속에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짓밟는 것보다 무력함을 학습하고 수치심을 몸에 새긴다. 그 존재는 힘을 휘두르는 법을 배우는 이들, 법망을 보호막으로 두른 현실의 괴물들 사이에 더 가까이 있을 것이다. 형제복지원은 특수하게 일탈된 유형의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 시설을 허락하고, 세우고, 비호한 이들의 존재는 더욱 끔찍하다. 비슷한 시기 세간에 알려진 양지원, 성지원, 수심원, 선감학원 등 ‘사회복지’나 ‘종교시설’의 탈을 쓴 ‘괴물’들은 너무나 많아서 세는 것조차 곤란한 지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들은 지금도 합법적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몬스터> 속에서 잔혹한 인간성 파괴를 주도했던 이들은 모두 요한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그것은 ‘복수’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괴물을 탄생시킨―그래서 그들 자신이 괴물이었던―이들은 제거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와 같은 존재들, 이를테면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이나 그의 비호세력인 전두환 같은 사람들은 천수를 누린다. 이런 세상에서 피해자들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지난 수년간 국회 앞에서 삭발투쟁도 했고 형제복지원이 있던 부산 사상구 주례동부터 청와대까지 447㎞를 걷기도 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걸 다했다. 그들의 이야기가 두 차례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방송되었음에도 그들의 싸움에 힘이 실리지 않는 건 어쩌면 그들의 일이 ‘나의 일’이 되지 않는 사람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짜 ‘몬스터’들은 그 마음을 먹고 자란다.
<박희정 기록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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