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매주 손흥민과 기성용, 또 석현준과 권창훈이 유럽 축구 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환호하고 그들의 경기에 관심을 기울인다. 나 역시 영국에서 거주하며 그들의 경기를 취재하고 그들에 관한 소식을 축구팬들에게 전하는 일을 세 시즌 째 하고 있다. 그 네 명의 선수 뿐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 축구의 가치를 높이는 이들 모두가 우리에게 소중한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에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이 세계 각지에서,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또 다른 방법으로 한국의 축구를 더 나아가서는 축구를 통해 꿈과 인류애를 전파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오늘 칼럼에서 소개할 주인공도 그런 한국의 축구인들 중 한 사람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우간다에서 최근까지 축구 코치로 활동하며 그곳의 소년들에게 축구를 통해 꿈을 심어준 황지석 코치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 우간다의 한국인 축구 코치 황지석
우간다의 한국인 축구 코치 황지석 코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간다가 정확히 어디에 위치한 나라인지를 먼저 확인해보자. 위 지도에서 노란색 원 안에 위치한 것이 우간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로 지도를 확대하면 나라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 콩고, 케냐, 탄자니아, 남수단에 둘러싸인 나라가 우간다다.
황지석 코치는 이곳 우간다의 부술라라는 지역에 있는 코너스톤(Cornerstone) 초등학교에서 1년 3개월 동안 축구부 감독을 맡아 우간다의 소년 선수들을 지도했다. 부술라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북쪽으로 1시간 30분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도시다.
황지석 코치는 우간다에 가기 전, 한국에서 지내면서 고양 자이크로 FC를 통해 고양 지역 초, 중학생 쉼터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지도했다. 그는 초,중학생 시절 본인도 축구 선수로 뛰었고 중학교 3학년 시절 부상을 당하면서 선수생활을 정리했다.
이후 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한 그는 우간다에 가기 전부터 사회적 약자,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 등에 축구를 가르쳐주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날 우간다에서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상황에 대한 황지석 코치의 말이다.
"한국에서 지내던 시절, 어린이들에게 축구를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궁극적으로는 어린이들이 삶의 변화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지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일본의 'Shalom FC'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계셨던 이형진 코치님을 통해 우간다에서 축구 코치를 구하고 있다는 말씀을 전해들었습니다.
저 역시 군 전역 후 한번쯤은 아프리카에 여행이든 NGO든 선교든 어떤 루트로든 가볼 목표가 있었기에 좋은 기회라고 여겼지만, 막상 가겠다고 결단 내리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해결 되지 않은 군 문제와 학업의 문제가 걱정이 됐고 제가 우간다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다른 친구들은 다 군대에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결심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두가지 이유로 우간다행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첫번째 이유는 그곳에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을 어린이들을 도와주고, 가르쳐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아프리카 국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우간다는 국민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반면 좋은 선수들을 발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제 경력과 지도력이 부족함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제가 갖고 있는 신앙을 축구와 제 삶을 통해 그곳의 어린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스무살부터 항상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제 삶의 목적이자 비전이었습니다."
우간다에 도착한 황지석 코치는 직접 발로 뛰며 이곳 저곳의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관계를 맺었다. 그런 노력 끝에 결국 코너스톤 초등학교와 인연을 맺고 그곳의 4,5,6학년 어린이들을 선발하여 축구를 가르치게 됐다.



2. 축구장을 만들고, 축구 대회를 열다
이런 과정 끝에 우간다의 초등학교 축구부 감독이 된 황지석 코치는 제일 먼저 어린이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제대로 된 축구장을 만들어주는 것이 그것이었다.
위에 첨부한 세 장의 사진처럼, 공사 전, 축구장(혹은 운동장)이라고 부르기 힘든 '공터' 수준이었던 장소가 황지석 코치의 주도하에 제법 괜찮은 '축구장'으로 변모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본인의 사비를 들여 장비를 구하고, 작업을 할 현지인들을 구하기도 했다.
황지석 코치의 말이다.
"우간다에서 지내면서 저는 제자들을 코칭 하는 일을 전부라 여기고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포커스를 두고 생활했습니다. 그들에게 더 나은 훈련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또 저의 제자들이 아니라도 현지 어린이들의 보다 나은 놀이 환경을 위해서(맨 발로 뛰어다니기에 위험했습니다) 기존의 학교 건물 뒤편에 경사가 심한 울퉁불퉁한 운동장을 트렉터로 전부 갈아엎고, 돌들과 무성한 잡초들을 일일이 전교생들과 함께 제거하며, 저 혼자만이 아닌 모두와 함께 운동장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기존의 나무로 만들어진 골대를 허물고 쇠로 된 골대를 세웠고, 학교 선생님들과 제가 함께 페인트칠을 하며 완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골라인을 그리는 작업은 기름으로 마무리 하였습니다. 저도 몰랐지만 기름이 운동장에 마르면 비가 몇 번이고 내려도 그대로 그 흔적이 남습니다."



1년 3개월의 시간 동안 유소년 선수들을 지도한 그는, 최근(이달) 우간다를 떠나기 전 그곳에서 직접 같은 연령대 선수들의 대회를 만들어서 진행하기도 했다. 대회명은 '코람데오 토너먼트'.
"선수들과 작별의 의미에서, 또 유종의 미를 위해서 대회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현지에 인프라 구축이 잘 되어있지 않으니 아이들 연령대의 대회는 찾아보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결국 '없다면 내가 만들자'라는 마음으로 결국 제가 대회를 열었습니다. 우수한 팀들을 초청하여서 대회를 진행했고, 참가팀 4팀이 모두 강팀이었지만 저희 선수들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회에서 우승이나 그런 결과보다는, 팀 창단 초창기의 경기에서 1:7로 졌던 팀을 상대로 대회날 1:0으로 승리했다는 점. 그리고 또 다른 한 팀은 제가 이곳에 오기 이전에 0:7으로 졌던 팀이었으나 대회 날은 아쉽게도 0:1으로 졌다는 점. 그런 부분에서 제자들 스스로가 성장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의미 깊은 대회였습니다."
3. '아빠'가 없는 아이들의 '아빠'가 되다
우간다에서 축구 코치로 활동하면서, 황지석 코치는 축구뿐 아니라 정신적인 멘토로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그 중 특히 기억나는 두 소년이 있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대륙의 가장 큰 ‘상처’중 하나는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도한 학생 중 카토(10세), 카미야(4세) 형제의 경우 아버지가 계시지만, 아버지가 자신이 아버지이길 포기한 그런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시지 않으시고, 군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계심에도 가장으로서 그 어떠한 부분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어머니 혼자서 매일 새벽 대중교통으로 팔리지도 않는 민물 생선을 구매해 오셔서 팔고 계십니다.
제가 아직 직접 아버지가 되어 보지는 않아서 잘은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형제들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슬픔을 나누고, 함께 기쁨을 나누다보니 어느날 그 소년들이 저를 '아빠'라고 부르는 날이 왔습니다. 저 역시 진짜 '아빠'가 아니더라도 형은 되어줄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하루는 기븐(13세)이라는 제자가 해가 진 후에 저희 집에 찾아 왔습니다. 울면서 엄마가 집에서 쫓아냈다고 말하며 어지간히 맞았는지 겁먹은 목소리로 들어가면 죽는답니다. 들어보니 심부름을 깜박하고 게임을 하러 가서 그렇답니다.
엄청 위험한 시기인데, 듣다 보니 짠하기도 하고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뭔 이야기를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이런 저런 농담을 먼저 건네며 제가 우간다에 온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아이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대화 중에 그 친구는 저에게 자기도 언젠가 저를 돕고 싶다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기 뿐 아니라 팀의 주장인 무기샤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줬습니다. 제가 우간다에와서 보낸 모든 시간을 보상 받는 것 같은 날이었습니다. 제가 사랑을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을 더 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4. 한국의 코치가 축구로 아프리카에 꿈을 전하다
아프리카의 작은 한 나라에서 축구 코치로 활동한 황지석 코치. 그가 우간다에서 보낸 1년 3개월이 즐겁고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직간접적으로 주변의 이웃에 강도가 들거나, 사고로 사람이 죽는 등의 일을 목격하게 됐다. 그런 위험을 파히기 위해서 그는 우간다 생활 중 절대로 밤에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한번 죽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한 황지석 코치의 말이다.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간지럽기 시작하더니 근육에 마비가 오고, 복통 두통 등으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아프면 아프다고 신음도 못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만큼 정말 죽을 것 같이 아팠습니다. 3곳의 병원을 다녀도 호전이 없었고, 결국에는 입원을 해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계속해서 투여했고 3일 후 호전 반응이 보여 퇴원했습니다. 퇴원 당시 의사가 백혈구 수치가 계속해서 쇼크 위험 수치였었다고 뒤 늦게 말해줬습니다.
그 때는 약이 너무 독해서 몸에 털들이 빠지고, 참 힘들었지만,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도 병명과 감염 루트등 아무것도 밝히지 못하여 더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물탱크에 새가 빠져 죽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한참동안 그 물로 씻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물의 바이러스들이 제 상처를 통해서 침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고충에도 불구하고 우간다의 어린 소년들을 위해 각고로 노력한 그의 열정은 뜻깊은 결실을 맺었다.
집에서 쫓겨났던 제자 기븐이 내년 4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고, 팀의 주장이었던 무기샤도 같은 대회에 참가할 가능성이 생겼다. 그 외에도 많은 소년들이 계속해서 축구를 배울 기회를 얻었다.
황지석 코치가 일했던 학교의 코치들, 선수들과 그 가족은 서로 연락처를 나눠 헤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 받기로 했다.


5. "언젠가 다시 돌아와 아프리카에 축구센터를 지을겁니다"
황지석 코치는 최근 우간다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귀국하기 전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를 잠시 방문하고 있다. 그는 아직 23세의 젊은 코치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다.
우간다에서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체험을 한 그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었다. 황지석 코치의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제자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쯤에는 주장 무기샤와 함께 우간다에서 가장 교육환경이 열악한 장소를 찾아서 초등학교를 짓고, 제자에게 모든 운영을 맡기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보낸 시간 동안 학교다운 학교와 교사다운 교사가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고, 저부터 시작해서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일단 한국에 들어가면 바로 AFC C급 라이센스를 시작으로 경험을 쌓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개인 레슨이든 팀이든 코칭을 하고 싶습니다. B급 까지 취득을 하고, 기회가 된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꼭 UEFA B 라이센스 취득을 위해서 영국으로 건너가 보려고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서는 아프리카 빈민 국가에 축구 센터를 지을 겁니다. 부모 없는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 꿈과 희망이 없는 아이들에게 축구를 통해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가장 큰 지도 목적과 가치로 여기고, 라이프 코칭을 축구 코칭과 함께 하는 그런 축구 센터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21살부터 조금씩 돈을 모으고, 적금을 들고 있습니다. 아직 학생이기에 현재로서는 얼마 모이지는 않지만, 꾸준히 먹을 것, 입을 것들을 아껴가면서 계속해서 돈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제 좌우명이 “생각 말고 행동”이기에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시작으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고 앞으로는 저 혼자의 힘이 아니라 함께하는 분들이 생기길 바라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꿈이라면, 언젠가 꼭 한번 아프리카 최약체 국가의 대표팀 감독이 되어보고 싶습니다. 축구 센터를 지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아프리카의 최약체 국가대표 감독이 되고 싶다는 꿈 중 어떤 것이 먼저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 이 두 가지가 실현 됐을 때 꼭 이성모 기자님과 다시 한번 인터뷰 하겠습니다."
황지석 코치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란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10년 후, 혹은 20년, 30년 후에 다시 그의 이야기를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전할 수 있길 빌며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