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20명 사망 여탕, 비상구 아는 직원들 해고당해 없었다
자동문 수동으로 강제 개방 가능, 비상구도 안에서 열려
여탕 직원 3명 해고, 스낵코너 매점주도 계약종료 공석
"비상구 아는 직원 있었으면 20명 참사 피할 수도" 증언
3층 남탕은 이발사 안내로 손님들 대피해 피해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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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시 2층에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은 이날 해고 통보를 받은 탈출한 세신사 한 명뿐이어서 탈의실과 자동문 앞에서 숨진 사람들은 숨을 거두기까지 아무런 탈출 경로를 안내받지 못한 것이다. 앞서 이곳에서 일하던 직원 3명 중 2명은 이미 해고통지를 받고 출근하지 않았다. 그나마 위탁운영하던 매점주인도 계약종료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3층 남자 목욕탕은 근무 중이던 이발사가 화재가 나자 손님들을 비상구로 안내해 사망자가 전무했다.
◇자동문은 고장·비상구는 목욕바구니로 가려져
2층에서 질식사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큰 20명의 시신 중 11구는 1층으로 이어지는 중앙계단으로 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버튼식 자동문 앞에서 발견됐다. 나머지 9구는 그 위쪽인 탈의실 앞에 있었다.
2층의 설계 도면을 보면 왼쪽에 욕탕, 오른쪽에 황토방과 비상구·계단이 있다.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한 후 내부 진입을 위해 파괴했던 건물 앞면 통유리가 있는 쪽에 특수탕, 온탕, 냉탕이 있다. 2층 한복판엔 입식 샤워기와 머리 말리는 곳이 있으며 그 아래엔 자동문과 1층으로 이어지는 중앙계단이 있다. 바로 위 탈의실이 있고 그 오른쪽 윗부분엔 황토방이 있다. 황토방 밑으로 목욕 바구니를 100여 개를 놓을 수 있는 높이 2m 높이 철제펜스가 있다. 철제 펜스 바로 아래에 비상구가 있고 여기를 통과하면 건물 밖으로 벗어날 수 있는 건물 뒷면 1층 문으로 연결된다.
1층 지상주차장에서 불이나 화염이 중앙계단을 타고 여자 목욕탕이 있는 2층으로 흘러들어왔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갈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자동문을 거쳐 중앙계단으로 내려가거나 비상구를 열고 비상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하지만 자동문은 화재로 인한 단전으로 인해 열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건물 여성목욕탕을 4년 동안 회원제로 이용했으며 사고 당일 오전에 이곳에서 목욕한 A(50)씨는 “1년 전 건물주가 바뀌기 전부터 자동문이 자주 고장나 롤러를 교체하거나 AS센터 서비스를 받는 일이 잦았다”고 말했다.
화재 발생으로 단전이 돼 자동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해도 문의 개폐를 자동에서 수동으로 바꾸는 스위치를 누른 후 문을 좌우로 벌리면 탈출이 가능했다. A씨는 “나는 단골이라서 알지만 스위치 버튼을 누른 후 평범한 여성의 손힘으로도 충분히 문을 열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층에 있던 사람들이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했을 때 안에서 스위치 버튼의 존재를 아는 직원만 있었다면 피해가 줄어들 수 있는 대목이다.
2층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목욕탕에서 고용한 세신사 3명에 임대료를 내고 스낵코너를 운영하는 매점주까지 총 4명이지만 이날 근무를 했던 사람은 세신사 한 명뿐이었다. 세신사 2명이 사고를 며칠 앞두고 해고된 데다 스낵코너 매점주마저 최근에 계약을 종료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비상구 위치를 아는 세신사는 사고 당일 1층과 2층 사이 계단에서 창문을 깨고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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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단 한 명이 있었던 직원마저 사고 초반 먼저 탈출하고 자동문이 잠긴 상황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비상구를 통해 탈출하거나 통유리를 깨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7mm 두께의 통유리를 여성의 힘으로 깨는 건 물리적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남은 방법은 비상계단으로 이어지는 비상구였지만 이 존재를 아는 사람이 손님 중에는 없었다.
이 건물 다른 층에서 스포츠댄스 강사로 3년 동안 일하다 1년 전에 그만둔 C씨(44)는 “이 건물에 비상구와 비상계단이 있다는 것은 아마 건물 직원들밖에 모를 것”이라며 “근무를 하다 더울 때 열을 식히기 위해 비상계단으로 나오곤 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욕탕에 들어가기 전 비상구 앞에 있는 철제 펜스 위에 있는 목욕탕바구니를 챙기러 다니곤 했다”면서도 “철제 펜스 뒤로 비상구가 있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예전 스낵코너를 운영하던 사람이 냄새가 난다며 통풍을 위해 문을 열기는 했다. 하지만 그쪽으로 비상계단이 있는지는 몰랐다”고 했다.
역시 비상구 앞 철제펜스 위에 목욕탕 바구니를 놓았던 B씨도 “휴게실에선 탈의함에 가려 비상구 있는 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비상구의 위치를 표시한 게 있다고 하더라도 사고 당시 위치를 안내하는 직원이 없었다면 비상구를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23일 원주기독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로 경찰의 방문조사를 받은 건물주 이모(53)씨는 “손님들이 목욕용품을 도난당할 수 있다고 민원을 제기해 비상구 문을 잠그고 철제 수납장을 놓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 1층에서 계산대 업무를 보는 D씨는 “건물주가 바로 위층인 3층에서 여성 목욕탕이 있는 2층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잠근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 건물 직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2층 비상구 잠금장치는 안쪽에서 잠그는 방식이다. D씨는 “건물주가 불이 나자 한 층씩 차례로 올라가면서 비상구를 두드렸다고 들었다”고 했지만 A씨와 B씨는 “설령 건물주가 비상구를 두드렸다고 하더라도 잠겨 있어 문을 연 것도 아니고 비상구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화재 사고 당시 자동문을 수동으로 열 수 있는 직원이나 비상구의 위치를 안내하는 직원이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당시 화재현장에서 살아나온 생존자들과 직원들은 당시 2층 여탕에 비상구 위치를 아는 직원과 매점주인이 근무하고 있었으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박남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법공학부장은 이날 오전 충북 제천시 화산동 제천체육관에서 유가족 상대로 열린 브리핑에서 “자동문은 사고 당시 열리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답했다.
윤여진 (kyl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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