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이날']12월21일 전두환 사면, 과연 잘한 일일까

김형규 기자 2017. 12. 2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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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래전 ‘이날’]은 1957년부터 2007년까지 매 10년마다의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7년 12월21일 전두환 사면, 과연 잘한 일일까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 및 복권 소식을 1면 톱기사로 다뤘습니다. 두 사람은 12·12 군사 반란과 5·18 내란의 주동자로 반란, 내란 수괴, 내란 목적 살인, 특가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가 적용돼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습니다. 임기 말의 김영삼 대통령은 ‘국민통합’을 내세워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권을 이들에게 행사했습니다. 막 대선에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이들의 사면·복권을 지지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은 이들의 사면을 먼저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도 “국민의 정부는 어떠한 정치보복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이들을 국가의 최고 권력자가 마음대로 ‘용서’할 수 있냐는 문제 제기가 그동안 꾸준히 있어왔습니다.

지난 4월 5·18기념재단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학자들은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한 특별사면이 “국민의 의사에 반한 자의적 권한 행사로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전씨는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받고, 대법원이 이를 확정한 지 8개월 만에 사면을 받았습니다. “사법 정의와 역사적 심판을 무너뜨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전씨는 사면받아 풀려난 지 20년 만인 올해 <전두환 회고록>을 펴냈습니다. 전씨의 회고록에는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 “광주시민을 향해 총을 겨누지 않았다” “전두환이 5·18 발단부터 종결까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등의 내용이 실렸습니다. 사면의 대가로 우리 사회가 얻은 건 헌정 파괴범의 반성이 아니라 파렴치한 역사 왜곡인 셈입니다.

20년 전 경향신문엔 전·노씨의 사면과 별개로 이들에 대한 수천억원대의 추징금은 그대로 거둬들일 것이라는 기사도 함께 실렸습니다. 법원이 선고한 전씨의 추징금은 2205억원입니다. 20년이 지난 현재 전씨의 추징금은 이제 겨우 절반을 조금 넘게 거둬들인 상태입니다. 지난 9월 전씨 장남 재국씨 소유 토지 매각대금 3억3000만원을 국고로 환수하며 전씨의 추징금 집행률은 52.3%(전체 2205억원 중 1155억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987년 12월21일 하루 한 명 꼴로 죽거나 다친 서울시 청소원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 사회면엔 “청소원 안전사고 다시 증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1987년 1~11월 서울시 청소원 중 17명이 업무 중 사망하고 319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상자 합계가 336명으로 거의 하루에 한 명 꼴로 죽거나 다친 셈입니다. 사상자 숫자는 전체 서울시 청소원 8532명의 4%에 육박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교통사고가 15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기사는 청소원들의 사고를 늘어난 차량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1987년 서울시에 등록된 자동차 대수는 약 166만대였습니다. 2017년 현재 서울시 자동차 등록대수는 310만대를 넘어섰습니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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