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19] 명품 갑주, '메이드 인 가야'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2017. 12. 2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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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8일. 전북문화재연구원 조사단은 남원시 아영면 소재 월산리 고분군 발굴에 나섰다. 대형분 3기가 고속국도 확장공사 구간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그중 M5호분은 주변이 밭으로 개간되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됐으나 잔존 봉분의 지름이 16.6m에 달했다.

철제 갑주, 남원 월산리 M5호분, 높이(투구) 29.5㎝, 국립전주박물관.

무덤 내부를 조사한 결과, 주인공을 안치한 중심부는 이미 도굴꾼이 훑고 지나가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으나 석곽 양 단벽 쪽에 유물이 무더기로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벽석과 덮개돌이 무너지며 '안전 공간'을 만들었던 것이다.

북쪽을 맡은 김규정 실장이 흙 일부를 제거하자 청자가 살짝 모습을 보였다. "고려청자?" 일순 당황했으나 곧 닭 머리 모양이 드러나 중국 남조(南朝)의 계수호(鷄首壺)임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가야 유적에서 발굴된 유일한 자기로, 월산리 M5호분이 5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기준 자료가 됐다. 이어 남쪽에선 겹겹이 쌓인 가야 토기, 각종 마구와 함께 철제 갑주가 출토됐다. 투구는 위쪽이 고깔 모양이고 눈썹 사이 장식과 챙, 볼 가리개를 갖추고 있었다.

조사단은 국립전주박물관에 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10월 24일. 이영범 학예사는 철기를 수습했고 1년 9개월 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으며, "이 갑주에는 철기 제작에 사용되는 주요 기술이 모두 구현돼 있어 1500년 전 만든 것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라는 소회를 밝혔다.

근래 한·일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철의 왕국' 가야의 존재는 인정하면서도 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갑주 가운데 상당수, 심지어 대가야의 왕도인 고령 출토품까지 왜(倭)로부터 수입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고분 속에서 갑주가 다량 발굴됐다는 점이 근거다. 그러나 남원 월산리 M5호분 출토품을 비롯해 근래 발굴된 가야 갑주에서 가야적인 특색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머지않아 '당대 최고 수준' 가야 갑주를 휘감은 베일이 벗겨지게 되리라는 기대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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