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스티커 받아가는 어르신들.. 진주도 변했다"

장명욱 입력 2017. 12. 1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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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월호 진실을 찾는 진주시민들의 모임' 박민정씨, 최세현씨

[오마이뉴스 글:장명욱, 편집:김예지]

 '세진모' 집회에 함께하는 시민들
ⓒ 장명욱
"세진모 사람들은 한다면 하는 사람들 같다. 직장 갔다 와서 어묵 300개, 400개 꼬챙이에 낀다. 달걀은 백 개씩 깐다. 리본공예 배워 세월호 리본을 만든다. 다음 날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이렇게 쭉 해왔다. 누구 한 사람 불만은 없다. 우리의 마음이 시민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진주에는 세진모가 있다. 세진모는 '세월호 진실을 찾는 진주시민들의 모임'의 준말이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일 년 후 진주에서 생긴 모임이다. 세진모는 매주 촛불집회를 열었다. 콘서트, 강연회도 열었다. 내년 2월에는 4.16 유가족 중심으로 구성된 가족극단 '노란리본' 진주 공연도 준비하고 있다.

'세월호는 이제 끝났다'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진모는 이 말 때문에 아직 (세진모 활동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세월호와 관련된 시민활동이 거의 중단됐다. 하지만 진주에서는 여전히 세진모가 활동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세진모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 1일과 17일에 걸쳐 '세월호 진실을 찾는 진주시민들의 모임'(아래 세진모)의 박민정씨(아래 박)와 최세현씨(아래 최)를 <단디뉴스>가 만났다.

한 사람의 시위, 세진모의 시작

 '세진모' 박민정 씨
ⓒ 장명욱
- 세진모 어떻게 시작 되었나?
박 :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진주에서 문화예술인 몇 분이 주축이 되어 비정기적으로 경상대 앞에서 촛불집회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일반 시민으로 가끔 참여를 하곤 했다. 근데 아는 사람만 알았다. 페이스북 하는 사람만 알고 나머지는 모르고 이런 식이었다. '진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하면 좋을 텐데' 이런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이정옥 씨(세진모 회원) 아들이 고등학생인데 외국여행 갔다가 연락이 두절되는 일이 있었다. 그 분이 페이스북에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세월호 부모님 마음이 이해된다' 면서 공단사거리에서 혼자 피케팅을 하셨다. 그걸 보고 몇 명이 모였다. 처음에는 4명으로 시작했다. '진주에서도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촛불 집회를 해보자', '뭔가를 해보자' 이렇게 의견이 모아져서 시작을 한 거다. 그렇게 해서 2015년 6월에 첫 집회를 했다."

- 세진모에 대해 조금 더 알려 달라.
최 : "세진모는 구성원 자체가 정당에 소속되어 있거나 정치적 색깔을 가진 모임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야말로 시민 스스로 꾸미는 풀뿌리 모임이다."

박 : "세진모라는 이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가 처음 회의에서 모임 이름 만드는 회의를 여러 번 했다. 우리는 단체, 조직 그런 개념이 아니라 순수하게 시민들이 모여서 한 거니 시민모임으로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진실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세월호 진실 찾기 진주시민모임' 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 세진모는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
최 : "세진모 구성원 면면을 보면 참 재밌다. 심지어 박근혜 지지자도 있다. 진주의 여느 시민단체와는 성격이 다르다. 기존의 사회운동에 참여하던 사람이 활동하는 모임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엄마, 아빠, 일반 청년들이 회원이다. 오로지 세월호 때문에 모인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고, 진보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그야말로 '정치적인 것'과 무관한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박 : "세진모는 세월호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 아니다. 우리 세진모에서는 대표나 위원장과 같은 직함이 없다. 그냥 세진모 가족, 식구 이렇게 말한다. 어디서 지시받고, 하달받고 쟁취하려는 모임 역시 아니다. 정치적인 고려는 더더욱 없다. 세진모 자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임이다. 한 달에 두 번 회의 과정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의견을 모은다. 세진모만의 방식으로 세진모만의 생각으로 말이다."

 '세진모' 최세현 씨
ⓒ 장명욱
- 세진모에 어떤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나.
최 :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대명천지에 일어났으니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순수한 의미에서 시작했다."

박 : "부모의 마음이었다. 세월호 사건 터지고 많은 뉴스가 한꺼번에 나왔다. 다른 거보다는 자식 잃은 부모가 우는 모습밖에 안 보였다. 그 마음이 바로 전해지더라. 처음에는 엄마, 부모의 마음으로 시작했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분노로 바뀌더라. 목소리를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이크를 잡았다. 시민들에게 외치게 되더라. 멈출 수 없었다."

-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최 : "시민반응은 좋은 편이였다. 우리가 인터넷에 일정을 올리면 백여 명 넘게 꾸준히 와 주셨다. 그만큼 세월호에 대한 시민들 생각 역시 불만이 많았고,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목소리를 경청해 주셨다."

박 : "젊은 학생들 특히 중고등학생들 반응이 좋았다. 정권이 바뀌고 차이를 많이 느꼈다. 가방에 매는 세월호 리본도 많이 받아가고, 휴대폰에 세월호 스티커도 붙여 갔다. 어르신들도 손주 준다고 받아 가시는 분들도 많았다. 지나가면서 박수쳐 주시고, 영상 틀어 놓으면 길가다 영상 보겠다고 서 계신 분들 보면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 우리가 그동안 했던 게 이런 식으로 표가 나는가. 응원을 많이 해주시니 보람이 생겼다."

-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최 : "추석연휴 시작되기 전에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피켓팅을 하고 했었다.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아직도 세월호냐', '빨갱이들' 하면서 따지고 들었다. 서명하고 있던 대학생과 할머니 사이에 언쟁이 붙었다. 진주가 이런 동네다."

박 : "욕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많이 싸우기도 했다. 앞에서 계속 싸우자 그러시는 분도 계신다. 나라가 이래선 안 된다고(한숨). 그리고 이상하게 집회하는 동안 절반 넘게 비가 왔다."

- 비가 많이 와서 힘들었겠다.
박 :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 애를 쓰자 이런 말을 많이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격려했다. 보통은 비가 오면 사람들이 안 온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세진모 집회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왔다. '저 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야.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니까 사람들이 얼마 안 올 거야. 나라도 가자라는 마음으로 올 거야' 이렇게 우리들은 생각했다.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인 거야. 그래서 더 애를 쓰자. 그 마음으로 피곤한 몸 이끌고 밤새 음식 준비하고 리본 만들고 그런 것 같다. 실제로 편집한 영상을 보면 비 오는 날이 많다. 지금도 눈물이 나는데 실제 비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행사장에 꽉꽉 차 있다."

 '세진모' 사람들
ⓒ 장명욱
"'세월호는 끝났다'는 말 때문에 더 끝낼 수 없어"

- 세진모 활동하면서 언제 가장 뿌듯했나?
최 : "세월호 7시간이 탄핵의 고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속이 시원했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퇴진까지 이어진 건 당연했고 우리 활동에 보람을 느꼈다. 세진모는 퇴진 집회도 함께 해 왔다. 우리가 시작했던 촛불이 이어졌다. 세월호 집회 촛불이 결국은 박근혜 퇴진 촛불과 연결되었다고 생각하면 뿌듯하다."

박 : "세월호가 인양되고 나서 다른 지역에서는 세진모와 같은 활동은 거의 스톱되었다. 안산 유가족 분들도 진주 같은 작은 도시에서 '더 외치다'와 같이 공연을 하고, 이석태 변호사 강연회도 하고 꾸준히 세월호를 기억해 주는 지역은 없다고 한다. 대도시도 흔치 않다고 한다. 우리는 이게 잊힐 문제는 아니니까 계속하는 것이다. 유가족 분들께서 진주에서만 더욱 힘내 하신다니 더욱 뿌듯하다."

- 실제 세월호 유가족과 만남이 지속되나.
박 : "팽목항에 갔다 왔다. 안산 단원고도 갔다 왔다. 유가족 분들도 진주에 여러 번 오셨다. 만나면 눈물바다였다. 세진모 유가족들께서 늘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말씀하신다. '힘이 된다' 얘기하신다. 하지만 거기 분들 애쓰시는 거에 비하면 우리의 활동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 유가족들 아픔을 공감하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안산이나 세월호가족협의회에는 세진모가 나름 유명해졌다고 하더라(웃음)."

- 고맙거나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최 : "세진모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온 고등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또 진주 박사모 지회장 하셨던 분의 시민발언도 기억에 남는다. 박근혜 지지를 후회한다고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 정말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하셨다. 진주에서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인터뷰를 빌어서 출연료 한 푼 받지 않고 공연해 주신 많은 문화예술인에게도 감사드린다."

박 : "세진모 사람들에게 고맙다. 유가족에 비해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세진모 사람들 애를 많이 쓰셨다. 세진모 회원은 대부분 직장을 다니시는 분들이다. 다음 날 집회를 위해 일 마치고 각자 집에서 리본 수작업도 하시고, 어묵을 꼬챙이를 끼고, 영상 제작도 하고 그러신다. 시민께 나눠주는 리본, 쉬운 것 같아 보여도 가죽공예 배워서 만든 거다. 이렇게들 열심히 하신다. 다들 '내가 이만큼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 같다."

 '세진모' 집회에서 공연하는 학생들
ⓒ 장명욱
- 앞으로 세진모 계획은?
최 : "올해 9월까지는 대부분 촛불집회 형태였다. 새로운 뭔가 없을까 해서 이석태 변호사 초청 강연회를 개최했다. 이전에는 콘서트도 열었다. 내년 2월에는 유가족 연극도 예정되어 있다. 형식을 바꿔서. 소모적이지 않게 여러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 : "진주에서 계속 해야 하고 진주시민께 기억이 되어야 하는 데 어떤 형태로 남을 것인가 고민이 많다. 특별법은 통과되었지만 활동과 관련해서 시민들에게 알리는 방향, 이런 부분들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게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세진모 우리는 어떻게 언제까지 할 것인가 고민은 많지만 지금이 마칠 시기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올 가을 '더 외치다' 콘서트에 유가족 합창단을 모셨듯이 내년 2월에는 유가족 극단 '노란리본' 공연이 현장아트홀에서 열릴 계획이다. 제목은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이다. 2월 3일 토요일 오후 4시로 예정되어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최 : "앞으로는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진주가 상관이 없지 않다. 진주시민께서 정말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만약 세진모 활동이 멈추더라도 우리는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세월호를 기억할 수 있는 행사를 4월16일 진주에서 꼭 할 것이다. 우리가 다시 모이는 날 진주시민들께서도 우리와 함께 계셨으면 좋겠다."

박 : "세월호 사건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는 게 제일 서운하다. 그 말 때문에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는 거 같다. 앞으로 계속 기억을 해야 하는 문제이지 끝을 가지고 얘기 할 수 없다. 세진모 사람들은 나와 같은 생각이다. 앞서 TV에서 유가족 우는 모습만 보이더라고 했는데 내가 저 엄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거다 생각을 늘 한다. 그러니까 시내에 나가서 '세월호' 외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우리 같이 위로하고 함께 힘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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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주지역 독립언론 '단디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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