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도서관]'좋은 나라'로 갈 수 있을까..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2017. 12. 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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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앞으로 서울 나올 일 있으면 우리 카페로 와. 신사동 로타리 바로 앞이니까 찾기도 쉬워. 일주일 후에 오픈할 거야. 이름도 정했어. 작가 선생 마음에 들는지 모르겠다. '좋은 나라'라고 지었는데. 네가 못마땅해도 할 수 없어. 벌써 간판까지 달았는걸 뭐."

그녀가 카페 이름을 '좋은 나라'로 지은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못마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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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주변부 서민들이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원미동 사람들’의 작가 양귀자 씨. 동아일보DB
《“…어쨌든 앞으로 서울 나올 일 있으면 우리 카페로 와. 신사동 로타리 바로 앞이니까 찾기도 쉬워. 일주일 후에 오픈할 거야. 이름도 정했어. 작가 선생 마음에 들는지 모르겠다. ‘좋은 나라’라고 지었는데. 네가 못마땅해도 할 수 없어. 벌써 간판까지 달았는걸 뭐.”

좋은 나라로 찾아와. 잊지 마라. 좋은 나라. 은자는 거듭 다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카페 이름을 ‘좋은 나라’로 지은 것에 대해 나는 조금도 못마땅하지 않았다.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다만 내가 그 좋은 나라를 찾아갈 수 있을는지, 아니 좋은 나라 속에 들어가 만날 수 있게 될는지 그것이 불확실할 뿐이었다.

-양귀자 소설 ‘한계령’ 중에서》

‘한계령’은 양귀자 씨의 유명한 연작 ‘원미동 사람들’ 중 한 편이다. 경기 부천 원미동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에는 서울 아닌 주변부에 산다는 박탈감 속에서도 활기차게 삶을 꾸려가는 변두리 서민의 이야기가 담겼다. ‘한계령’에선 박은자라는 밤무대 가수가 등장한다. 경인지역 밤업소에서 인기가 굉장하다는 ‘미나 박’이다. 그가 화자인 소설가에게 전화를 걸어 “찐빵집 하던 철길 옆의 그 은자인데…”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이 노래 부르는 클럽으로 한번 오라고, 오랜만에 얼굴을 보자고 옛 친구에게 채근하는 은자. 그러나 화자는 쉽게 마음을 먹지 못한다. 그는 어렸을 적 순수했던 은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썼던 터다. 무대에 서는 마지막 날이라는 일요일 저녁에야 그는 클럽으로 발을 옮긴다. 그러나 미나 박으로 짐작되는 여성이 부르는 ‘한계령’을 듣고 나올 뿐, 은자와 끝내 만나지 않는다.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동아일보DB
인용한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이다. 은자는 자신이 차린 카페 ‘좋은 나라’로 오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러나 화자는 좋은 나라로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화자가 자신의 소설에서 그려낸 곳, 어린 시절 은자가 속했던 곳은 좋은 나라였을 테지만, 화자는 현실의 미나 박과 그가 열었다는 좋은 나라가 그의 기억과 같을지 알 수 없다.

은자를 만나지 않은 소설가는 매정했던 것일까. 양귀자 씨가 보여주는 것은 소설가가 처한 현실의 팍팍함인 것 같다. 소설의 화자가 은자를 만나기를 망설이는 건 매정해서라기보다는 그의 기억 속 ‘좋은 나라’에 대한 소중함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의 고단함과 대비된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좋은 나라’에 대한 기억이 있지 않을까. 삶의 짐 꾸러미는 좀처럼 덜어지지 않지만, 저마다 품고 있는 ‘좋은 나라’가 인생길을 가는 이의 땀을 닦아주고 추슬러 나아가도록 해주는 것 아닐 런지.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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