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하루에 밥 13공기 - 오타니에 대한 알쓸신잡

                                                                                                  사진 = 게티이미지 제공

알고 보면 참 쓸 데 없다. 그래도 궁금한 것들이 있기 미련이다.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23살짜리 청년 오타니 쇼헤이에 대한 잡다한 것들을 열거해 본다.

- 쇼헤이(翔平)라는 이름의 유래

아버지가 지어줬다. 12세기 일본의 유명한 무장인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리로 치면 을지문덕이나 김유신 쯤 되는 장수다. 배와 배 사이를 날아다녔다(翔)는 전설을 지녔다.

- 가족 관계

아버지는 야구 선수였다. 프로 단계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회인 팀 미쓰비시 중공업 요코하마에서 뛰었다. 현재는 가네가사키 시니어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어머니는 배트민턴 선수였다. 7살 위의 형 역시 야구 선수다. 고치 파이팅 도그스에서 뛰다가 지금은 도요타 자동차에서 코치 겸 외야수로 활약 중이다. 키가 187cm나 된다. 2살 위 누나도 있다.

- 어릴 적 별명, 잠 귀신

초등학교 때 리틀 리그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6학년 때 벌써 167cm였다. 당시 친구들의 기억은 '짧은 체육복'이었다. 워낙 키가 커서, 옷이 늘 작았다. 소매, 바지 길이가 안 맞아 엉성한 모습이었다. 합숙 훈련 때는 '잠 귀신'으로 불렸다. 저녁 9시만 되면 정확하게 취침 모드다. 주변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떠들어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 점은 프로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이동 중 어디서나 잘 자는 체질로 유명하다. )

                                                                                                    사진 = 게티 이미지 제공

- 중학시절은 4도류

미즈사와 미나미 중학 시절에는 야구 외에도 몇가지 운동을 병행했다. 육상 단거리와 높이 뛰기, 그리고 수영이었다. 특히 수영을 좋아해서 잠시 그쪽으로 갈까를 고민하기도 했다.

- 중학교 1학년 때 장외홈런

후쿠시마 원정 경기였다. 장외 홈런을 날려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기장 밖에 있는 신호등을 맞혔다. 추정 거리는 120미터 정도였다. 투수로도 발군이었다. 어느 경기에선가 총 18개의 아웃카운트 중(6이닝 경기) 17개를 삼진으로 기록한 적도 있었다.

-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목욕

대중탕에서 스스럼 없는 한국과 달리 일본 문화에서는 상당히 특이한 일이다. 참고로 당시 키가 180cm에 가까웠다. 이미 성인이나 다름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들의 목욕은 보통의 가족적 분위기가 아니었다. 코치와 선수의 관계로 접근해야 한다. 온탕에 몸을 담그고 대화를 나누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일환인 셈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근육 발달 상태를 면밀하게 점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스위치 히터에서, 좌타자로 전념하는 게 좋다는 방향 전환이 여기서 이뤄졌다.

- 고교 감독의 배려

고교(하나마키 히가시) 진학으로 본격적인 야구 선수의 길을 걷게 된다. 감독이던 사사키 히로시는 "아직 뼈가 자라고 있을 성장기다. 1학년 여름대회까지는 타자로만 활동하라"며 4번 타자 우익수로 기용했다. 투수로 나서기 시작한 것은 가을 대회부터였다.

- 배구공을 천정까지

사사키 히로시 감독만의 독특한 투수 단련법이 있다. 배구공을 던져 바닥에 강하게 튀기는 훈련인데, 보통은 아무리 힘껏 내리 꽂아도 체육관 높이의 중간 정도 밖에 바운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천장까지 튀어 오를 정도로 남다른 파워를 자랑했다.

- 만다라트 계획표

고교1학년 때 만다라트 계획표(목표 달성 차트)를 작성했다. 8개 팀으로부터 드래프트 1번 지명을 받는 것이 중심이었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72가지로 정리했다. 특히 운(運) 부분이 흥미롭다. 인사 잘하기, 쓰레기 줍기, 방 청소, (야구) 도구 소중히 다루기, 심판 선생님에 대한 태도, 플러스(긍정적) 사고, 응원받는 인간 되기, 책 읽기 등이었다.

- 가족계획은 2남 1녀

당시 세운 연령별 목표도 있다. 26세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루고 결혼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8세에 첫 아들, 31세에 첫 딸, 33세에 둘째 아들이 태어나는 것으로 돼 있다. 자신의 형제 관계처럼 슬하에 2남 1녀를 두겠다는 목표다.

- 더 빠른 공을 위해 하루에 밥 13공기씩

이 무렵 그의 관심사는 몸 키우기였다. 더 빠른 공을 던지려면 체중 증가가 필수적이라는 인식이었다. 그걸 위해 매일 같이 밥 13공기씩을 먹었다. 아침과 점심에 각 3공기씩, 그리고 저녁 때는 7공기를 섭취했다. 덕분에 3년간 20kg을 찌웠다.

- 한국전 패배

3학년 때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됐다. 한국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한국과의 5,6위전에 선발 등판했다. 7이닝 2실점(12K)으로 호투했지만 패전투수가 됐다. 한국의 선발은 이건욱(현재 SK). 8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 스트레스에는 단음식이 최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는 크레페를 꼽는다. (나중에 크레페는 기름이 많아서 좋지 않다며 일본식 과자로 바꾸겠다고 반성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초콜릿, 아이스크림 같은 단 음식을 즐긴다. 스트레스 받을 때면 달달한 것을 먹으며 해소한다. 경기 중에는 소세지도 먹는다. 한번에 5개 정도. (이는 아마도 일본에서 뛰던 팀의 모기업이 햄 만드는 회사였기에 만들어진 스토리로 보인다.)

- 무취미 선언

취미는 없다. 스스로 '무취미' 선언을 하기도 한다. 오로지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봐야 한다. 굳이 꼽자면 독서와 DVD 감상이다.

- 외출도 없다

프로 입단 후에도 숙소 생활을 자청했다. 외출이나 외박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훈련 끝나고 돌아오면 근처 편의점에 들르는 게 전부다. 특별한 일이 있을 경우는 구리야마 감독의 허락을 얻는다. 이도류를 위해서는 스스로 금지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팀의 간판 스타임에도 아직까지 가을 캠프에 개근하고 있다.

- 글러브의 호랑나비

글러브에는 호랑나비가 새겨져 있다. 2015년 어느 날인가 등판을 앞두고 몸을 푸는데, 주변에 나비가 많이 날아다녔다. 그날 완봉승을 거둔 뒤 행운의 상징처럼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글러브에 새겨진 나비 문양.  출처 = 오타니 SNS

- 좋아하는 선수

다르빗슈 유와 클레이튼 커쇼다. 고등학교 때부터'제2의 다르빗슈'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졸업후 진출한 프로 팀 역시 니혼햄이었다. 물려받은 백넘버 11번도 다르빗슈의 것이었다. 반면 커쇼는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에 매료됐다고 밝힌 바 있다.  

- 독특한 오타니 체조

오타니 체조.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독특한 포즈가 있다. 중학생 시절 일본의 인기 프로 골퍼 이시가와 료가 하는 것을 TV로 보고 따라하면서 부터다.

중학생 때 프로골퍼의 모습을 보고 따라하게 됐다는 유연성 체조.                                   일본TV 화면 캡처.

- 메이저리그 직행을 포기한 이유, 한국의 실패 사례들

본래 고등학교를 마치고 곧바로 미국으로 가려고 했다. 자신을 지명해봐야 소용 없다는 기자회견도 가졌다. 그럼에도 니혼햄 파이터스는 드래프트 1번으로 그를 찍었다. 그리고는 끈질긴 설득 작전을 펼쳤다. 30페이지짜리 PDF가 만들어졌다. 야구뿐 아니라 축구, 육상 등의 모든 종목에서 해외 진출한 일본 선수들에 관한 자료였다.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내용이 있었다. 한국 선수와 관련된 데이터였다. 2006년 이후 미국으로 직행한 고교생 21명 중 아무도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지 못했다는 통계였다. 오히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그러니까 프로 생활을 하다가 간 류현진 같은 경우가 훨씬 좋은 결과와 연결됐다는 게 설득 포인트였다. 결국 그는 "생각지 못한 내용이었다"며 수긍했다.

한국의 메이저리거들에 대한 니혼햄의 분석 자료. 2006년 이후 직행한 선수 중에는 성공한 예가 없는 것으로 돼 있다.

- 음주운전이 절대 성립할 수 없는 구조

작년 일본 프로스포츠 대상을 수상했다. 야구선수로는 다나카 마사히로 이후 3년만이다. 부상으로는 중형차가 주어졌다. 기자들이 물었다. '차를 어떻게 할 거죠?' 운전 면허가 없음을 알고 한 질문이었다. "이제 와서 면허를 따기도 그렇고..." 난감한 표정이었다.

출퇴근은 택시를 이용했다. 야구에만 전념하기 위해 자동차는 관심거리 밖으로 뒀다. 아버지는 한 술 더 뜬다. "진짜 거물은 기사가 붙는다." 술 담배도, 운전도 하지 않는다. 음주 운전이라는 것은 절대 성립할 수 없는 구조다.

- 내년 연봉

올해 연봉이 2.7억엔(약 28억원)이었다. 내년에는 메이저리그 최저 연봉을 받아야 한다. 54만 5천 달러, 그러니까 5억 7천만원 가량이다. 1/5로 줄어들었다. 만약 2년 뒤에 갔으면2천만 달러(약 200억원)가 훨씬 넘는 대우를 받았을 게 분명하다.

아버지로부터 매달10만엔(약 100만원)의 용돈만 받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돈이야 뭐, 야구를 즐겁게 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백종인/ 칼럼니스트前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