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 길어지고 몸집 커지고..10년만에 진화한 솔개
외래종 '우렁이' 침입..사냥 힘들어 '멸종위기' 겪다가
긴 부리, 몸집 큰 솔개로 '자연선택' 개체 수 회복 중
[한겨레]
비교적 수명이 긴 맹금류가 아주 짧은 기간에 부리가 길어지고 몸이 커지는 진화 과정을 보인다는 주장이 보고됐다.
로버트 플래처 미국 플로리다대학 야생동물생태보전학과 교수 등 연구팀은 우렁이솔개가 새로운 먹이를 구하게 되면서 몸의 형태와 유전자까지 변하고 있다는 주장을 11월27일 발간된 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에 발표했다.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즈 습지에만 서식하는 우렁이솔개는 몸길이 36-48㎝, 날개 편 길이 99-120㎝ 정도의 중형 맹금류다. 국내 겨울철에 흔히 볼 수 있는 말똥가리보다 약간 작은 편이다. 이름에 걸맞게 우렁이솔개는 먹이의 98.5%가 우렁이일 정도로 우렁이만 먹으며 산다. 미국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외래종 우렁이의 침입
에버글레이즈 습지에 사는 골프공만한 크기의 토종 우렁이가 우렁이솔개의 거의 유일한 먹이였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몸 크기가 2~3배이고, 몸무게는 4~5배 더 나가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외래종 우렁이가 에버글레이즈 습지에 침입했다. 토종 우렁이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고, 외래종 우렁이는 급격한 속도로 서식 범위를 넓혔다. 서식처에 따라 토종 우렁이보다 2~100배나 많은 수가 살게 됐다.
우렁이솔개는 날아가면서 혹은 나무에 앉아 있으면서 두 발로 우렁이를 움켜쥐고 구부러진 부리를 우렁이 몸 안에 집어넣어 속살을 뜯어먹었다. 그런데, 테니스공보다 더 크게 자라는 큼지막한 외래종 우렁이는 우렁이솔개가 두 발로 움켜쥐기 어려웠다. 두 발로 나무에 앉아 있으며, 커다란 우렁이까지 움켜쥐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그나마 우렁이솔개 성체는 어찌해서라도 큰 우렁이를 잡고 뜯어먹을 수 있었지만, 경험이 적은 어린 새들은 우렁이를 쥐고 있다가 자주 놓치곤 했다. 어린 새들은 토종 우렁이를 잡아먹을 때보다 외래종 우렁이를 잡을 때 8~10배나 더 자주 우렁이를 떨어뜨렸다. 외래종 우렁이를 먹는 데도 4배나 시간이 더 걸렸다. 이 때문에 어린 새들은 외래종 우렁이를 잡아먹으면서 얻는 칼로리보다 이를 잡을 때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할 것이라고 학자들이 추측할 정도였다. 우렁이솔개 성체의 경우 연간 생존율이 85~90%에 달하지만, 어린 개체는 15~60%에 불과했다.
1999년에 미국 내 개체 수가 3500여 마리였던 우렁이솔개는 2007년엔 700여마리로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이들의 생존에 적신호가 켜졌다. 우렁이솔개 모두가 커다란 외래종 우렁이만 바글거리는 에버글레이즈 습지에서만 살고 있었기 때문에 30년 이내에 우렁이솔개가 미국 땅에서 멸종할 확률이 80%나 될 것이라고 학자들은 예측했다.
회복되는 개체 수…비밀은 길어진 부리
그런데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우렁이솔개 개체 수는 지금 2000마리 이상으로 늘었다. 플로리다대학 연구팀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생후 26~32일째 되는 어린 솔개 590마리의 부리 길이와 몸무게 등을 측정해봤더니, 외래종 우렁이 침입 이후 부리와 몸 크기가 평균 8%, 최대 12% 늘어난 것을 확인했다. 새로운 먹이가 등장함에 따라 솔개의 몸 구조가 짧은 기간 동안 진화한 것이다. 우렁이솔개는 수명이 길며 세대시간은 5~8년으로 관찰되었는데, 1~1.4세대라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이러한 형태적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들은 세대시간이 길기 때문에 외래종 침입이나 기후변화 같은 생태계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렁이솔개는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신체 구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진화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 이유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자연선택이 역할을 한 것 같다. 커다란 외래종 우렁이 살을 파먹기 좋은, 긴 부리를 가진 어린 솔개가 상대적으로 짧은 부리를 가진 개체에 비해 살아남을 확률이 커졌을 것이다. 외래종 우렁이를 잘 먹을 수 있는 어린 솔개는 그렇지 못한 개체에 비해 더 빠르게 성장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더해져 솔개의 부리와 몸 크기가 커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부리가 큰 어미가 부리가 큰 새끼를 낳는 것을 보면 이미 유전적인 변화도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지구촌 곳곳에서 외래종이 침입해서 토착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침입한 새로운 환경에서 외래종이 빠른 형태적 변화를 보인 사례는 여러 건이 확인되었지만, 외래종 침입에 대해 수명이 긴 토착 척추동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외래종 침입은 대게 토착 생태계에 혼란을 일으키면서, 원래 살고 있던 생물들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데, 이 사례에서는 그 반대 경우가 나타나서 학계의 관심을 더 많이 받고 있다.
우렁이솔개가 사는 에버글레이즈 습지는 미국 플로리다반도 남쪽 끝의 열대지역에 있는 거대한 민물 습지다. 여러 개의 호수와 강이 연결되어 있고 일부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원래 크기는 경기도 면적보다 넓은 1만360여㎢였지만, 지금은 각종 개발 등으로 그 절반 정도만 습지로 남아있다. 악어를 비롯해 다양한 야생동식물이 사는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습지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hristopher E. Cattau, Robert J. Fletcher Jr, Rebecca T. Kimball, Christine W. Miller & Wiley M. Kitchens. Rapid morphological change of a top predator with the invasion of a novel prey. Nature Ecology & Evolution (2017)
DOI: 10.1038/s41559-017-0378-1
마용운 객원기자 ecoli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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