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스토리] 내가 기부하기 싫은 이유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신아현 인턴기자 = 어릴 때부터 정기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꾸준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온 이지선(중앙대 3학년·21) 씨는 최근 기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갈수록 지출이 많아져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진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계속되는 기부금 비리 논란 탓에 기부 단체에 신뢰를 잃었다"며 "내가 낸 돈이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르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씨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신뢰도의 문제 등으로 기부를 망설이는 이들이 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부의 손길은 감소하고 있는 상태다. 기부를 망설이게 되는 이유와 대책을 짚어봤다.
◇ 기부의 계절 시작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에 따르면 기부 참여율은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2011년 36.4%를 시작으로 2015년에는 29.9%까지 낮아졌다. 올해는 26.7%까지 떨어졌다.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참여율이다.
기부 참여 하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유독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다. 지난해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1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지구촌 기부지수 순위에서 우리는 중하위권인 75위를 차지했다.
2012년 45위까지 올랐지만 이후 매번 집계마다 하락했다.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순위다.
기부지수 순위란 CAF가 지난 1개월 사이에 낯선 사람을 도와준 비율, 기부 경험, 자원봉사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집계해 지수를 산출한 수치다.
◇ 불황에 기부 손길 줄어

경제적인 팍팍함은 기부를 망설이게 한다. 기부문화연구소가 비기부자를 대상으로 '기부하지 않는 이유'를 설문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54.8%)라고 답했다.
23일 통계청에 따르면 월평균 실질 소득은 2015년 4분기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감소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440만2천729원이던 실질소득은 올해 같은 기간 439만1천823원에 그쳤다. 0.25% 감소한 수치다.
문진영 서강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기부가 움츠러든다는 것은 경제가 어렵다는 방증"이라며 "기부를 독려하는 공익 광고를 확대하는 등 일반인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 기부한 돈, 어디로 쓰이나

내가 기부한 돈이 누구에게 어떻게 쓰이는지 모르는 것도 문제다. 비기부자의 18.2%는 "기부단체를 신뢰할 수 없음"을 두 번째 이유로 꼽았다.
잘 알려진 기부 단체가 성금 지원비를 몰래 빼돌리다 적발된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기도 했다.
2010년에 터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의 성금 유용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민이 모은 성금이 직원들이 유흥주점에서 술값으로 사용하는 등 비리가 드러났다. 이 때문에 '사랑의 온도탑' 설치가 처음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올해 초 한국가이드스타가 공익 법인의 정보공개 투명성 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가 대상 2천553개의 단체 중 엉터리로 공시한 곳이 1천784개로 절반이 넘었다. 별 5점(만점)을 받은 곳은 6%에 불과했다.
시민들은 본인이 기부한 돈이 어디에 사용되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다.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기부금의 사용처를 아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답한 비율은 61.7%였다.
◇ 난립하는 기부 단체

이름마저 생소할 정도로 기부 단체가 난립하는 것도 도움의 손길을 거두게 만드는 요인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정 기부금 단체는 2013년 2천584개에서 올해(9월 기준) 3천708개까지 증가했다. 4년 만에 1천 곳이나 늘어난 것이다. 기부 단체가 3천500곳이 넘어간 것도 올해가 처음이다.
단체가 불어난 만큼 경쟁도 심해진다. 23일 정오, 종각역부터 광화문 광장까지 약 800m 사이에는 3~4개의 기부 단체들이 작은 부스를 설치해 놓았다. 길거리 후원 모집을 위해서다.
관계자들은 점심 무렵 거리에 나온 직장인을 무작정 잡아 끌면서 적극적으로 기부 참여를 독려했다.
기부단체의 요청을 뿌리친 김지민(37·여) 씨는 "가장 안타깝다고 생각하는 환경 문제에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설문 조사에 응했더니 결국에는 기부를 종용당했던 경험이 있다"며 "생각이 없다고 말해도 30분 가까이 후원을 권유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스에 들어갔던 직장인 김모(29·여) 씨 역시 "설문 조사 스티커를 붙이니 기부단체 설명과 함께 후원을 하라고 했다"며 "너무 갑작스러워 거절하고 나왔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기부 단체 관계자는 "직접 단체를 홍보하고 설명하기 위해 길거리에 나왔다"며 "얼굴을 맞대고 권유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 제도의 보완도 필요

"2014년 세법 개정으로 기부금 연말 정산 공제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 공제로 전환되자 세 부담 증가 등의 이유로 국세청에 신고된 기부금이 처음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바른정당 이혜훈 의원 등이 발의한 소득세법 일부 개정 법률안 중 일부다. 발의안에 따르면 국세청이 기부금 신고 현황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14년까지 기부금액은 매년 증가했다. 그러나 2015년에는 전년 대비 약 460억 원 감소했다. 기부금 신고 인원 역시 2013년 88만 명에서 2015년 78만 명으로 줄었다.
실제로 종합 소득이 7천만 원인 근로자가 350만 원을 기부할 경우, 이전까지 84만 원이던 세금 감면액은 2014년 이후 52만5천 원으로 30만 원 넘게 감소했다.
한용외 사회복지법인 인클로버재단 이사장(사회복지학박사)은 "제도의 변화로 기부 시 세제 감면 폭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며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세제 혜택 등을 내세워 기부를 독려하고 있는 판국"이라고 말했다.
기부단체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모금 단체 관계자는 "소액 기부자들이 점점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단체의 비전에 동의하는 이들이 더 많은 기부를 하도록 독려함과 동시에 충성도 있는 후원자들을 결속시키는 것 정도가 지금으로써는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인포그래픽=김유정 인턴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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