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도시 여행 | 시카고 건축 산책 Chicago Architecture Tour

시카고는 세 번 가 본 도시다. 그러나 아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지금 시카고 강가 하류 지역을 걷고 있다. 참 단순한 구조다. 강이 있고, 둑이 있고, 둑 위로는 차도가, 아래로는 산책로와 뜨문뜨문 위치한 카페가, 강 곳곳에는 철교들이, 그리고 강 위에는 시카고 관광객들을 가득 태원 유람선, 수상택시 등이 쉴새 없이 운항 중이다. 시카고에는 숱한 명물들이 있지만, 가장 먼저 경험해야 할 곳은 역시 건축들이다.

‘건축은 바벨의 후예들이다’, ‘욕망의 상징이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연결의 공간이다. 도시와 인간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건축을 그냥 건축이라고 하지 않고 ‘건축디자인’이라고 하는 이유엔 사람이라는, 건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사람을 기쁘고 흥분하게 만들어 준다. 감히 대자연에 비유할 순 없지만, 때로는 못지 않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세계의 부자들이 세계 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할 만한 건축에 집착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하물며, 왕조 시대 때처럼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 목숨을 걸어가며 짓는 건축이 아닌, 여러 사람에게 돈도 벌어주고, 완성된 후에는 모두가 이용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 최고의 가치 중 건축을 올릴 만도 하다. 미국 일리노이주, 오대호 중 미시간호 호반에 위치한 시카고는 세계 최대의 건축 박물관이다. 규모 면에서, 디자인의 다양성 면에서 그렇다. 그 때 그 시각, 나는 시카고 공식 출장 일정을 끝내고 단 반나절 여가를 고마워하며 시카고 강가를 걸었다. 시카고 여행자들은 대개, 특히 건축 투어를 목적으로 하는 여행자들은 해설을 곁들인 크루즈 투어나 버스 투어를 선호하지만 나는 그냥 강가를 걸으며 건축과 도시, 인간의 흐름을 띄엄띄엄이나마 관찰하기로 했다. 아, 그리고 크루즈 투어는 겨울철엔 문을 닫으니 이 글에서 도움될 정보가 되지도 못한다.

출발 지점은 시카고강 하구 네이비피어. 피어(Pier)란 육지에서 바다로 쭉 뻗어 건설된 일종의 부두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선박이 정박하고 선원이나 여행자들의 편의 시설이 있는 곳이다. 미국의 피어는 주로 나무와 시멘트로 마감을 해서 빈티지의 쓸쓸함이 배어 있다. 이곳은 시카고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들이 적지 않다.
분수대와 일리노이주 오크파그에서 태어난 미국의 유명 배우로 <엘프>, <빅뱅이론> 등에 출연한 ‘조지 로버트 뉴하트’의 동상이 있고 여행자들을 위한 관람차, 회전목마 등이 있다. 또한 시카고 셰익스피어 극장 등 문화 시설도 들어서 있다. 피어에 서면 바다처럼 넓은 광경엔 수평선이 보이고 파도까지 몰아치는 미시간호의 파노라마를 볼 수 있으며, 밤이 찾아온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도 있다. 나는 대관람차에 올라 서서히 높아졌다 하강하는 도시의 높낮이를 눈에 담고 싶었으나 시간 여유가 부족해 그냥 피어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피어를 떠나기 전, 피어뿐 아니라 시카고 미시간호 주변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유리 건물이 있는데, ‘레이크 포인트 타워(Lake Point Towe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68년에 완공된 이 아파트는 독일의 건축가 ‘미스 반 데르 로에(Mies van der Rohe)’가 디자인 한 ‘유리 마감 건축물’에서 영감을 가져 왔다고 한다. 미시간호와 시카고 강,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끝내주는 전망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주방이 딸린 넉넉한 크기의 방 한 개와 욕실 사용료(노빌트인)로 월 1800~220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시카고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의, 차용해온 명성에 비해 초라해보이기까지 한 건물을 지나 이스트 일리노이 스트리트를 걸어 나오니 ‘시카고트리뷴타워’가 우뚝 서 있다. 세계에는 ‘트리뷴(tribune)’이라는, ‘시민 권리의 옹호자’라는 뜻의 단어가 들어간 신문사들이 몇 곳 있다. 시카고 트리뷴 또한 ‘시민의 권리를 우선한다’는 뜻을 품고 1847년에 창간된 신문이다. 시카고트리뷴타워는 창간 75년을 기념하기 위해 건축되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 공모’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전개했다. 전세계 250여 건축가, 건축회사에서 응모한 끝에 지금의 건물을 디자인하고 설계한 주인공은 뉴욕에서 활동한 건축가 존 미드 하웰과 레이몬드 엠 후드였다. 당시 미국 건축의 대세였던 마천루 스타일의 건축물이라는 점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시카고 트리뷴타워가 지금도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건물 하단 외벽을 ‘세계, 미국 전역에서 가져 온 돌’로 장식했다는 점 때문이다. 시카고트리뷴타워 하단이 세계의 돌로 장식된 것은 1914년 당시 편집장이었던 로버트 맥코익이 1차 세계대전을 취재하다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파괴된 프랑스의 한 성당 돌을 주워 갖고 온 게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시카고 트리뷴의 해외 특파원들 사이에 현지에서 의미 있는 돌을 주워 편집장에게(사실상 회사에게) 선물하는 전통 비슷한 게 생겼다. 그 돌들이 건축의 오브제로 사용된 것이다. 시카고 트리뷴의 돌 수집 전통은 건축이 완성된 이후에도 지속되어 베를린 장벽 잔해 등 역사적 현장의 잔해가 확보되면 새로 설치하곤 했다. 돌들은 나라와 지역 등이 표기된 채 외벽에 붙어 있고, 지금도 이 사실을 알고 시카고를 찾은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 없다.


리글리빌딩 앞에는 시카고 강을 가로지르는 ‘두사블 브릿지(DuSable Bridge)’가 있다. 또 다른 공식 명칭인 ‘미시간 애비뉴 브릿지’가 있지만 두사블 브릿지로 불리는 이유는, 이곳이 오늘의 대도시 시카고 시티의 출발 지점으로 확인되었고, 그 주인공 이름이 ‘두사블(DuSable)’이기 때문이다. 두사블이라는 인물은 1745년에 태어나 1818년에 죽었는데, 1780년대 초기에 시카고 강가에 나타나 정착했다고 한다. 두사블 브릿지는 전형적인 철교인데 교각과 난간 곳곳에 ‘미시시피강으로 간 사람들’, ‘시카고강을 지나간 최초의 미국인들’ 등 시카고 초창기, 개척과 도전 역사를 그린 조형물들이 유려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시카고 강가를 따라 걸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시카고 강의 모든 다리가 강철로 건설되었고, 오래된 건축물들을 모두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대개가 화강암이나 테라코타 타일 등 석재로 마감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시카고의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는 1871년 대화재의 반전의 결과이다. 대화재 이전 시카고의 건물들은 목조 일색이었다. 모든 화재가 그렇듯, 시카고 대화재 또한 처음엔 사소한 불이었으나 미시간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번진 불길은 대부분의 목조 건축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소방 당국, 시민 모두 최선을 다해 진화에 나섰지만 속수무책이었고 끝내 강변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던 다운타운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화재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시카고 시민들은 가축 사육을 위한 석재 건축물과 철강 소재의 철길은 멀쩡하게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시카고 재건 과정에서 목조 건물은 볼 수 없었다. 모두 철강 아니면 돌로 마감한 건물들 뿐이었다. 1885년 건축된 홈인슈란스 빌딩은 세계 최고의 철골조 고층빌딩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트럼프타워 앞 ‘어브 컵치넷 브릿지(Irv Kupcinet Bridge)’는 시카고에서 1912년에 태어나 2001년에 역시 시카고에서 사망한 저술가 어브 컵치넷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철교이다. 철교 뒤로 쌍둥이 빌딩이 보였다. ‘음, 옥수수를 닮았군’ 생각하는 찰나 옆에서 그 건물을 함께 보던 한국인 관광객이 외쳤다. “아, 옥수수 빌딩이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마리나시티타워(Marina City Tower)’. 60층 짜리 쌍둥이 주상복합 빌딩으로 주차장과 상가, 아파트로 이뤄져 있다. 1959년에 건축을 시작, 1967년에 완공했다. 하층부 주차장은 외부와 노출된 공간으로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자리 구역에는 주차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사진 위키미디어,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05호 (17.11.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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