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연구 성과, 지원하고 기다리자

2017. 11. 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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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과실연 명예교수
민경찬 연세대 수학과 교수·과실연 명예교수

지난 11월 9일 국회 헌정관 대강당에서는 많은 피켓과 함께 뜨거운 열기와 결의를 느끼게 하는 정책토론회가 진행됐다. 연구자들로 가득 찼는데, 내용은 출연(연) 연구자들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간절한 호소들이었다. 정부가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출연(연)에 공익적 수익활동이나 대국민 서비스 등을 수행하는 일반 공공기관처럼 '단기적 경제성'과 '경영 효율성'을 요구해 연구 환경이 점점 더 피폐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매 5년마다의 정부는 공약에 따른 정책기조를 중심으로 과학기술 연구 기관에도 양적 단기성과를 요구하고 '경제', '경영'의 측면에서 평가해왔다. 기초연구의 성과를 20~30년까지도 기다려주며, 연구비는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유연한 선진국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과제에 따라 연구수행과정의 특성이 매우 다른데 획일적인 잣대로 '관리'받고 있다고 연구자들은 답답해한다. 그 많은 과제 중 극히 일부의 문제만 생겨도, 연구 활동 전체를 규제하는 틀이 또 만들어지곤 했다.

정부가 관리를 철저히 잘하면 더 좋은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일까? 계속 법, 규정을 쌓아가면서, 더 규제하고 관리해온 정책운용방식의 연구 성과에 끼친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연구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계속 그들 탓으로만 돌릴 것인가? 연구과정에서의 얽혀져있는 많은 규제들과 행정 부담이 발목을 잡는다. 정부의 13개 부처에, 17개 평가기관이 있으며, 372개의 연구비 관리 규정이 있다는 발표가 나왔을 정도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기술을 만든 사람들이다. 기술은 별 것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다. 그들에게 도구를 쥐어주면 멋진 일을 해낼 것이다."라고 말했고,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사람들이 혁신하고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줘야 한다. 그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 사람들은 혁신을 만들어 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저력이 만들어지는 배경이다.

지난 10월 1일 일본 쿄토에서 열린 14차 '과학기술과 사회(STS)' 포럼에서 아베 총리는 '규제 없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그는 "자율자동차 실험은 어디서나, 언제라도, 허가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었다고 했다. 새로운 기술을 따라잡는데 초점을 두고 규제를 전면 조정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을 세계 각지의 인재들이 항상 함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혁신의 요람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정부는 대학을 포함해 연구관련 기관에 대한 법과 규제 등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를 새롭게 세워야 한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성과 관리'가 아니라, '성과 개발'을 생각한다. 평가를 위한 평가보다, 중간과정에서의 개선, 향상을 돕는 일이다. 감사원, 기재부 등도 '섬세한' 규제보다 연구의 내용과 긴 안목의 생산성, 이를 위한 자율적 연구 환경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국회도 규제하는 법을 만들기보다, 규제를 풀어 연구력을 높이는데 기여해야 한다. 국민도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와 국회를 평가해야 한다. 반면 연구자들은 기대하는 연구 환경으로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 구체적인 모습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이제 '사람' 중심의 국정철학이 실현되기 위해서라도, 대다수의 건강한 우수 연구자들을 믿고 신뢰하며 시대를 선도해나갈 것인지, 관리에만 매몰되어 뒤처지는 나라 만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은 상상력과 창의력에 기반한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있다. 연구자들이 어디서나, 언제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창의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시도할 수 있는 환경은 기본이다. 지원하고 기다려주자. 튼실한 미래는 여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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