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이프] '로봇다리 수영선수' 접고 이젠 '세상의 바다'와 맞서다

이강은 2017. 11. 1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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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나서는 장애인 국가대표 출신 21살 김세진씨 / 선천성 장애로 삶 자체가 도전의 연속 / 무릎 아래·오른손 세 손가락 없어 / 4세 때 재활 치료 위해 수영 배워 / 국내 출전 못해 日서 첫 50m 완주 / 꼴찌했지만 일본서 환호.. 자신감 / 장애인 국가대표 명성 날렸지만.. / 2009년 영국 세계선수권 3관왕 올라 / 세계신기록 등 국내외 대회 휩쓸어 / 런던 패럴림픽 못 나가 고통의 시간도 /엄마가 위기 극복 큰 힘..한층 더 성장 / 검정고시로 대학 입학..IOC 위원 큰 꿈 / 뉴욕 허드슨강 10km대회서 전체 21위 / 장애 딛고 리우수영마라톤 예선 완주 / 유학 준비중.."유엔 인권분야 일하고파 / 세상이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 되겠다"

2016 브라질 리우올림픽 수영마라톤 10㎞ 최종 예선전이 열린 지난해 6월13일 포르투갈 세투발. 거의 모든 선수가 진작에 레이스를 마치고 9위 이내 입상자와 그 안에 들지 못한 선수 중 대륙별 1위 선수에게 주어지는 리우올림픽 출전권이 모두 확정된 후에도 대회는 종료되지 않았다. 혼자 남은 한국 선수의 ‘완주 의지’를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기 진행 관계자와 응원석의 외국인 관중들 모두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가슴 졸이며 그 선수를 응시했다. 그는 경기 시작 전부터 모두의 주목을 끌었다. 양 다리와 오른손에 장애가 있는 앳된 얼굴의 한국인 선수가 키와 덩치가 2∼3배 큰 세계적인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쟁을 하겠다니 그럴 만도 했다. 예상대로 그는 경기 초반부터 한참 뒤로 밀리다 정해진 시간 내에 도착하지 못하는 ‘오버타임 판정’을 받았다. 어떤 보조 기구도 없이 상반신으로만 거친 파도를 거스르는 모습도 힘겨워 보였다. 저체온증 등 건강위험도 염려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고 주최 측의 배려에 1위보다 1시간이나 늦은 약 2시간35분의 기록으로 코스를 완주했다. 순간 경기장 안의 모든 사람이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렇게 한국인 최초·최연소·장애인 선수로 하계올림픽 수영마라톤 도전사를 쓴 김세진(21)씨는 자신의 ‘수영 인생’에도 마침표를 찍었다. 

김씨와 어머니 양정숙(50)씨.
김씨 제공
“저를 있게 한 11년간의 선수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던 차에 어깨 부상까지 겹쳤어요. 수영을 관두고도 미련이 안 남도록 간절하게 바랐던 올림픽 도전을 통해 마지막 매듭을 짓기로 마음먹었죠. 다만 이후 사람들이 평범해진 나를 어떻게 볼지, 이제는 무슨 꿈을 향해 가야 하는지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 김세진이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하냐’는 어머니 말씀에 용기를 내 출전했고 여한이 없었어요.”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난 김씨는 정말 평범해 보였지만 더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로봇다리 세진이’로 유명한 그는 요즘 세투발의 바다보다 훨씬 크고 험한 파도와 맞서야 하는 세상의 바다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가슴으로 낳은 장애 아들을 보란듯이 자랑스러운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키운 어머니 양정숙(50)씨와도 떨어져 혼자 지낸 지 제법 됐다. “또래 친구들처럼 영어 학원도 다니고 어머니 몰래 식당과 와인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 했는데 하루에 설거지와 와인포장을 각각 5시간, 10시간이나 해보면서 아르바이트 일이 만만치 않음을 절감했어요. 일부 손님의 갑질에 시달릴 때는 ‘아, 내 또래들이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구나. 나는 남들보다 좋은 길을 걷고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난해 6월 2016 리우 하계올림픽 수영 마라톤 최종 예선전에 나서 각국 비장애인 대표선수들과 함께 출발을 준비하는 김씨의 모습이 보인다.
김씨 제공
수영과 무관한 새로운 꿈이 생겨 두려움도 사라졌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쉽지 않은 길을 택했지만 꿈을 꾸는 청년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다.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인 그는 유엔에서 인권분야 업무를 하고 싶다는 가까운 목표를 세웠다. “(IOC 위원이 되려는) 첫 번째 이유는 제가 어디를 가든 태극기가 걸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열심히 노력했지만 꿈을 이루거나 빛을 발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싶어서예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을 널리 알리고픈 마음에 당찬 꿈을 품은 것이다. IOC 위원들은 외국을 갈 때 입국비자가 필요없고 투숙하는 호텔에 자국의 국기가 게양되는 등 각별한 대우를 받는다. 
‘로봇다리 수영선수’로 유명한 김씨가 지난 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주자로 참여하게 된 이유와 앞으로의 포부 등을 설명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로봇다리 김세진, 지체장애인의 날 성화봉송 삼성 주자로 참여
지체장애인의 날인 지난 11일, 삼성 성화봉송 주자 김세진(전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이 전국장애인수영대회서 신인선수상을 받은 김동훈(경운중, 14) 군의 학교를 찾아, 성화의 불꽃과 함께 꿈을 향한 열정을 응원했다. 삼성전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공식 후원사로서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을 응원한다는 의미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Do What You Can’t)' 캠페인을 펼친다.
김씨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과도 뜻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어머니와 함께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게임 개막식 성화를 점화했던 그가 이번엔 성화봉송에 참여한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 공식 후원사인 삼성전자가 ‘Do What You Can’t(불가능을 가능케 하라)’를 주제로 선발한 성화봉송주자 1500명 중 한 명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도전해 나가는 사람들을 격려한다는 성화봉송 캠페인의 취지가 제 삶과 많이 닮아 공감했어요. 또 불을 지피는 것(성화 점화)처럼 그 불이 어디서 오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지도 중요하잖아요. 최종 점화자는 불을 전달한 모두의 꿈을 담아 불을 지피는 것이고, 저는 거기까지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게 굉장히 의미있을 것 같았죠.” 
삼성 성화주자 로봇다리 김세진, 장애인 수영 선수 김동훈 군(김해 경운중)과 성화봉송 순간을 ‘찰칵’
삼성 성화주자 로봇다리 김세진이 장애인 수영 선수 김동훈 군(김해 경운중)에게 전하는 희망과 도전의 불꽃
지체장애인의 날인 지난 11일, 삼성 성화봉송 주자 김세진(전 장애인 수영 국가대표)이 전국장애인수영대회서 신인선수상을 받은 김동훈(경운중, 14) 군에게 꿈과 열정을 응원하는 성화의 불꽃을 전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 공식 후원사로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열정을 응원한다는 의미의 '불가능을 가능케 하라(Do What You Can’t)' 캠페인을 펼친다.

사실 그의 삶 자체가 믿기지 않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무릎 아래로 두 다리가 없고 오른손도 세 손가락이 없는 무형성 장애를 안고 태어난 김씨는 재활치료 차원에서 4살 때 처음 수영을 접했다. 물 속에서 느낀 편안하고 자유로움에 수영을 사랑하게 됐고 9살 때 선수로 첫 시합을 나갔다. 국내에선 어리다고 출전이 안 되자 어머니가 무작정 일본으로 가 현지 수영연맹 고위 관계자에게 통사정을 해 얻어낸 기회였다. 정식 경기가 끝난 후 김씨를 위해 이벤트로 진행된 경기에서 그는 당연히 꼴찌를 했지만 날아갈 듯 기뻤다고. “수영을 배운 후 그날 처음 50미터를 완주한 거예요. 제 스스로에게 놀란 데다 일본 선수와 관중들이 모두 자리에 남아 기립박수를 해주는데, 정말 감격적이었어요. 제가 자신감을 갖고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했던 가장 감사했던 순간입니다.”
김씨가 2014년 인전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수영 자유형 400m 은메달을 딴 뒤 밝게 웃고 있는 모습.
다음부터는 거침이 없었다.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합쳐지면서 2009년 영국 장애인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3관왕에 오르고, 이듬해 유스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800m 아시아최고기록, 1500m 세계 기록을 잇달아 세우며 금메달을 따는 등 국내외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메달이 늘어나고 신기록을 세울 때마다 인정받는 듯한 느낌도 좋았다고 했다. 특히 한 방송에서 어머니와 김씨의 사연을 담은 다큐프로그램을 방영한 뒤에는 대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인기는 잠깐이었고, 세상은 비정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2012년 영국 런던 장애인올림픽에 불참하고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특히 인간관계에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언론과 체육계는 물론 주변에 가까웠던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거나 손가락질을 하자 살기조차 싫어졌다. “올림픽에 불참한 것보다 기대했던 분들을 실망시키고 버려졌다는 자책감에 너무 가슴이 아파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만큼 힘든 시기였어요. 다행히 어머니가 ‘내 아들이 상처받아가면서까지 하는 것 보고 싶지 않으니 원치 않으면 수영을 그만두라’며 단단히 붙잡아주셔서 극복했습니다.” 김씨는 그때의 상처를 자신을 한층 더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았다.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17살에 대학생이 됐다. 어린 나이에 형들과 경쟁해야 하는 낯선 대학생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일이 매우 벅찼지만 오기로 이겨냈다. 학업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좋아하는 잠도 하루 4∼5시간으로 줄였다. “정말 공부보다 수영이 더 쉽더라고요. 하하하….”

대학생활 첫해인 2013년 9월 생일 사흘 뒤 그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에 나섰다.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서 펼쳐진 10㎞ 수영대회에 나간 것. 비장애인 엘리트 선수 150명과 일반인 등 300명(218명 완주)이 겨룬 경기에서 그는 당당히 21위로 골인했다. 6개월간 매일 다이버용 납벨트를 차고 훈련에 매진한 결과였다. “그 전까지는 저와 같은 장애인들과만 경쟁하다 일반 선수들과 처음 경쟁해 본 자리였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김씨는 ‘지체장애인의 날’인 11일 오후 경남 김해에서 전국장애인수영대회 신인선수상을 받은 김동훈(14)군에게 성화를 전달하고 격려한다. “성화를 이어받을 친구가 제가 걸어온 길을 걸어갈 테니 저를 보며 힘을 내고 저 역시 그 친구를 통해 제 앞날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어린 시절 김씨를 가슴으로 낳은 어머니 양씨와 김씨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
그는 더 이상 ‘로봇다리’나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 출신’ 등의 꼬리표 대신 평범하지만 미래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스물한살의 김세진’으로 불리길 원했다.

“직책을 따지는 사회처럼 그동안은 제 이름 앞에 달리는 수식어가 중요하다고 여겼는데 부질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형이나 오빠, 동생으로 불리면 좋겠어요. 또 세상에 기대고 바라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이 기대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으로 밝고 아름다운 청년이다. 신체적 한계와 세상 편견의 벽을 수없이 뛰어넘어 온 그가 또 다른 도전기를 어떻게 써내려갈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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