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올해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주목받는 인물이 바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던 인물로 알려진 '레닌'이다. 러시아에서는 구 소련 붕괴 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잠든 방부처리된 레닌의 시신을 레닌의 생전 유언대로 그의 어머니와 합장하는 안을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 내부에서 극우세력들은 구소련 붕괴 후에도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레닌 시신을 하루 속히 매장해야한다는 분위기지만 공산당 등 좌파정당들은 반대하고 있다.
레닌의 시신을 영구보존 시킨 인물은 그의 신격화를 추진했던 스탈린이다. 레닌은 죽기 전에 그의 어머니가 묻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묻히길 소망했으나 스탈린 집권 후 그에 대한 신격화가 이뤄지면서 시신은 영구보존처리됐다. 스탈린은 시신 뿐만 아니라 레닌의 개인사까지도 대부분 베일에 싸이게 만들었다.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이자 공산당 초대 당수인 레닌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였다. 이러한 권위는 레닌의 후계자를 자처하던 스탈린 본인의 독재체제 구축의 도구로 쓰였다.
실제 레닌은 그런 신격화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러시아 볼가강변에 위치한 심비르스크란 지역에서 태어났다. 레닌은 1902년부터 쓰던 필명이었으며 원래 이름은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다. 그래서 심비르스크는 오늘날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울리야노프스크'라고 불린다. 그는 백인 슬라브계 러시아인이 아닌 혼혈 조상을 둔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계도는 복잡한 편인데, 일단 아버지 계열은 볼가강 유역에 살던 투르크 계통이고 할머니는 중세시대 이후 카프카스 지역에 정착했던 몽골계 혈통이다. 여기에 레닌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는 독일계 유대인출신이었다. 제정 러시아시대부터 핍박받던 소수민족들의 피가 섞이고 섞여 희대의 혁명가가 탄생한 셈이다.
스탈린은 집권 후, 레닌의 이런 복잡한 가계도를 최대한 숨기려고 노력했다한다. 당시엔 나치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 러시아 역시 반유대주의가 기승을 부렸으며 러시아 내에서도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이 심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을 세운 국부이자 혁명의 지도자의 어머니가 유대인이었단 사실이 밝혀지면 여러모로 집권 공산당은 곤란한 입장이었기에 그의 가계도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고 한다.
레닌의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을 딛고 자수성가해 출세한 교육공무원이었고, 어머니는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교사였다. 레닌의 집안은 당시 러시아에서 상당한 자산가였으며 레닌 역시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상당히 고급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어머니로부터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에서 모국어인 러시아어보다 훨씬 일상 공용어로 쓰이고 있던 프랑스어를 배웠다.
레닌도 이런 영향을 받아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잘하게 됐으며, 훗날 그가 러시아와 유럽 각지의 부르주아 지식인 계층 출신 좌파운동가들과 교류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혁명 후에도 그는 딱히 프롤레타리아와 관계없던 본인의 과거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가지거나 숨기려 들지 않았지만, 역시 스탈린에 의해 이러한 과거는 대부분 묻혔다고 한다.
스탈린에 의해 신격화는 됐지만 정작 그의 본모습은 철저히 가려진 셈이다. 레닌은 죽기 직전에도 스탈린을 경계해야한다는 내용의 글을 유언장에 남겼지만, 그 글을 대필한 비서의 밀고로 스탈린은 그 사실을 알게됐다고 한다. 결국 스탈린은 레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잡은 후, 정적인 트로츠키를 숙청하고 레닌에 대한 신격화에 나서면서 자신의 권력을 확고히했다. 그리고 레닌의 유언을 무시한채, 그의 시신을 영구보존처리해버린 것. 스탈린 집권 이후 정작 레닌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대부분 사라졌고 대다수 구소련인들이 위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스탈린으로 굳어지기도 했다.
이번 공산혁명 100주년을 맞이해 레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면서 시신처리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든 상황이다. 러시아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을 비롯해 극우정당들은 레닌의 시신을 그만 매장하자고 주장하지만 러시아 연방 공산당 등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최대한 이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며 한편으로 이미 관광명소가 돼서 붉은광장 관광수입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그의 시신을 굳이 이장해야하느냐는 현실론도 존재한다. 세계사를 바꾼 혁명가는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편히 쉬지는 못하고 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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