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를 대표하는 레전드로 선정된 차범근 전 감독이 분데스리가 홍보대사로 위촉돼 11월2일부터 4일간 '분데스리가 레전드투어 인 코리아' 행사에 함께 했다. 첫 날 분데스리그 우승쟁반 마이스터샬레를 공개하는 미디어데이 행사를 시작으로 둘째 날은 차범근 축구교실 아이들과 함께, 마지막 날은 축구를 좋아하는 팬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뷰잉파티에 참석한 팬들은 시종일관 휴대폰을 꺼내 레전드 차범근의 모습을 담기 바빴고, 독일 현지에서 온 취재진은 그를 찍는 팬들의 모습을 담느라 덩달아 분주했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멀리 독일에서 날아온 그들에게 차범근은 여전히 위대한 레전드 였다.
흥미로운 것은 '분데스리가 홍보대사'를 취재하러 온 그들 앞에 차범근 전 감독은 반대로 '한국축구'를 홍보하고, 한국축구를 알리는데 바빴다는 것이다. 첫 날 미디어데이부터 마지막 뷰잉파티까지 차범근 전 감독의 모든 이야기에 한국축구에 대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첫 날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차범근 전 감독은 독일 대표팀이 위기를 극복한 사례를 예로 들며 한국축구 또한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축구하는 아이들이 줄고 있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있었고, '유소년 지도자에게 공부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 대안도 있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포털 사이트에는 <차범근 "언제까지 히딩크를 그리워할 것인가">라는 자극적인 기사가 메인을 장식했지만 실상 그가 정말로 전하고 싶은 핵심은 그 멘트 바로 뒤에 이어진 "우리에게도 축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지도자가 많다. 그들이 공부할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고 세계 축구와 함께 성장하도록 키워야한다"는 것이었다.


분데스리가 레전드 선정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에 참석한 몇몇 축구인들은 숙연한 자세로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이야기를 끝낸 차범근 전 감독은 무거운 공기를 감지한듯 분데스리가 우승쟁반 마이스터샬레에 급 관심을 보이며 화제를 전환했다.



대표팀 상황이 상황인 만큼 기자회견 내내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의 부탁까지 거절할 수는 없었는지 뒤늦게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띄웠다. 다음날 축구교실 행사에서도 차두리는 몇 번이나 아버지 차범근의 SOS를 받아야 했다.





기념촬영을 끝낸 아이들은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자유롭게 진행된 행사인 만큼 차범근 전 감독은 틈틈이 아이들 수업을 지켜봤다. '아이들이 잘 못 알아보는데 서운하지 않냐'는 질문에 "나중에 크면 알게 될거라"며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보인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축구예찬으로 이어졌다.
"스포츠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기본을 알려준다. 축구를 하면 자연스럽게 규칙을 알게 되고, 공동체 생활에서 필요한 기본을 습득하게 된다.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축구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한참 이어지던 축구예찬의 마무리는 역시나 한국축구에 대한 걱정이다.
"요즘 축구하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일선에서 뛰고 있는 지도자들의 가장 큰 고충은, 축구를 하려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 해답을 생활체육에서 찾아야 한다. 처음부터 엘리트로 접근하니까 비용이 부담되고, 중간에 선수를 그만 둔 아이는 갈 길이 없다. 악순환이다. 생활체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축구를 접하고, 그 속에서 엘리트를 발굴해 가야 한다. 공부하는 아이들, 생활체육 속에서 엘리트가 나와야 한다."
그의 이야기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아이들이 우리 미래'라는 두루뭉술한 낙관론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감독들도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개혁이 필요한데, 지금 그들도 먹고 살기가 힘든 형편이다. 그들도 돈이 없어 학부모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다. 대한축구협회가 귀를 열고,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지금 밑에는 죽어가고 있다."

축구예찬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한국축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마무리 됐다. 많은 이들이 한국 축구가 위기라고 말하지만 전문가들 조차 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소년 시스템이 잘못됐다 두룽뭉술 말하지만 딱히 대안은 없다. 정작 현장의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축구영웅 차범근의 뼈있는 조언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보인다. 그의 안타까움 속에는 '일선 감독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직접 만나 듣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두가 대표팀을 걱정하는 요즘 한국 축구영웅은 '밑에는 죽어가고 있다'며 오히려 아래를 걱정했다. '대표팀이 살아야 한국축구가 산다'는 축구협회의 회유와 상반되는 논리다. 그는 축구협회가 귀를 열고, 일선에 있는 지도자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쓴소리를 전했다.

많은 축구인이 한국축구의 위기에 침묵하는 가운데 그의 용감한 조언은 귀담을 필요가 있다. 차범근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자신이 독일에서의 현역시절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유소년에 투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대로라면 머잖아 일본에게 추월당한다고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때 그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됐다. 이제 한국 축구는 중국에게도 위협을 받고 있다.
그의 쓴소리를 지금도 그냥 흘려버린다면, 앞으로 10년 뒤 지금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지 모른다.
글 사진=구윤경 기자 (스포츠공감/kooyoonk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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