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0] 실패는 성공에 이르는 길이 아니어도 좋다

"'노안'이라니요!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유명한 존재가 되어 있더라는 시인 바이런의 행운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내가 늙었다'라니!…그때서야 제 처지를 바로 보게 되었어요. 소설가가 되려다가 좋은 시절 흘려보내고 노년의 문턱에 들어선 실패자!"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이라는 책에서 공사판, 식당, 과수원에서 일하며 신춘문예에 매달린 지 30년 됐다는 작가의 문장을 읽었을 때, 마음이 울렁거렸다. 나 역시 13년을 수없이 문학 공모에 떨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펜을 꺾고 배낭을 멘 채 아이슬란드로 여행을 떠났다. 그곳이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실패를 찬양하다니! 저자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라고 했다. 우리가 실패를 말할 때 가장 '정직한 말'은, 실패란 성공의 과정이 될 때라야만 빛난다는 것 아닌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점이 성공한 리더의 특징이란 말은 아름답다. 하지만 진실에 더 가까운 말은 실패한 사람의 강연이나 책은 우리가 듣거나 읽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실패의 박물관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그런 탓이다. 성공이 아닌 실패 그 자체로 끝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증발하기 때문이다. 71일 동안 얻어 탄 차가 60대, 하루에 495㎞를 이동한 한 여자의 아이슬란드 여행기가 빛나 보였던 건 그것이 책이 되어 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작가와 음악가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아이슬란드에서 수없이 길을 잃어본 후, 그녀가 남긴 말은 이것이었다. "아니, 뭐가 되고 못 되었다는 게 어떻게 우리의 결말일 수 있겠어요?" 어쩌면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였기에 그토록 많은 예술가도 존재했을 것이다.
실패를 성공에 이르는 경로가 아니라 실패 그 자체로 포용할 때, 인간은 행복을 '발견'한다. 저자가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사는 삶이 주는 가벼움에서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말은 그렇게 이해해야 마땅하다. 실패가 성공이 될 수는 없지만 성장이 될 수는 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의 홀가분함은 바람 같을지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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