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아파트 한 동에 몇마리 살던 '닭둘기' 1년 새 수십 마리로..
퇴치 전문업체 성업
한 베란다에서 없애면 근처 다른 베란다로 이사..
한 업체 연간 500건 처리도
불편 민원도 폭증
비둘기에 먹이 주는 '피존맘' 막아달라는 요구 가장 많아
교량 하부도 주요 민원 대상
정부 체계적 관리 등한시
유해 조수로만 지정 10년간 모니터링 안 해
개체 수 파악조차 안 돼

횡단보도에서 비둘기 서너 마리가 퍼덕거렸다. 여학생들이 기겁해 물러났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지하철 당산역 앞. 포장마차 주인은 "날마다 수십 마리가 나타나는데 사람이 피해 다닐 지경"이라며 혀를 찼다. 보도에 배설물 자국이 선명했고 흩어진 깃털도 많았다. 집단 서식지라는 증거다.
당산역 고가(高架)에는 비둘기가 진을 치고 있었다. 역사(驛舍) 밖 파이프나 사거리 이정표 위에도 즐비하게 앉아 아래를 두리번거렸다. '비둘기' 소리만 듣고도 미간을 찡그린 야쿠르트 아주머니는 "간혹 먹이 주는 사람을 본다"며 "뭐라도 던지는 척하면 득달같이 날아온다"고 했다.
며칠 전 그리스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를 채화할 때 하얀 비둘기가 날았다. 하지만 서울에서 이 조류는 거룩하지 않다. 도시를 더럽히는 '닭둘기' '쥐둘기'로 조롱당하는 신세다. 비둘기 배설물로 문화재나 건축물이 부식된다. 환경부는 2009년 이 천덕꾸러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그해 서울에 비둘기 3만5000마리가 산다고 조사됐지만 10년이 다 되도록 추가 모니터링은 이뤄진 적이 없다.
그사이 아파트 베란다에선 '비둘기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 송파구 A아파트와 영등포구 B아파트, 경기 안산 C아파트에서 특히 심각하다. 개체 수가 너무 많아 '비둘기 아파트'라 불리고 퇴치 업체도 성업 중이다. 비둘기가 둥지를 틀었던 에어컨 실외기를 청소·소독하고 박스 형태의 망을 씌운 뒤 앉지 못하게 뾰족한 스파이크를 설치하는 데 30만~50만원을 쓴다. 비둘기는 한 장소에 계속 거주하려는 습성이 있다. 우리 집에서 쫓아내면 윗집이나 아랫집, 옆집으로 '이사'할 가능성이 높다.
특수 청소 업체 바이오해저드는 비둘기 퇴치만 연간 450~500건쯤 처리한다. 이 업체 전애원 실장은 "아파트 베란다나 교량·고가 밑에 사는 비둘기를 없애 달라는 요청이 해마다 폭증한다"고 말했다. "작년엔 아파트 한 동 중 다섯 가구에 비둘기가 살았는데 올해 가보면 서른 가구쯤으로 늘어 있어요. 한여름엔 예약받기 어려울 정도로 일감이 몰려요."
19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르며 수천 마리를 방사한 뒤부터 서울에 비둘기가 흔해졌다. 도심 집비둘기는 천적이 없고 먹이도 풍족해 1년에 서너 차례 이상 번식한다. 유정칠 경희대 한국조류연구소장은 "정부나 지자체가 개체 수 파악조차 안 해 구체적 상황을 모르는 게 문제"라며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만 하고 체계적 관리는 등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불편 민원도 폭증하고 있다. 영등포구청 담당자는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피존맘'을 막아 달라는 민원이 특히 많다"며 "홍보물을 나눠주고 냄새로 쫓아내는 조류 기피제를 설치하고 있지만 아파트는 사유지라서 뾰족한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에서는 중구 용산구 성동구 동대문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 구로구 영등포구 관악구 서초구 강남구 강동구가 조류 기피제를 많이 요청하는 지역이다. 지자체 허가를 받으면 비둘기를 사냥·포획할 수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다.
비둘기는 야생에서 절벽에 살았다. 도시에선 교량 하부에 많이 서식한다. 한강 다리 20개를 비롯해 교량 51개를 관리하는 서울시 교량안전과는 "비둘기가 접근할 수 없게 망을 씌우고 스파이크를 설치하는데, 면적과 예산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비둘기를 대상으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를 조사한 결과 국내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고 지난 1월 밝혔다. 비둘기가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전파할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먹이를 주거나 접촉하는 행위는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영국은 2003년부터 런던 트래펄가광장에서 새 모이를 주다 적발될 경우 50파운드(약 7만4000원) 과태료를 물렸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불임 모이를 먹이거나 포획해 불임 시술을 하는 방법으로 비둘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가 생태 교란 등을 이유로 반대한다. 유정칠 소장은 "둥지를 막거나 먹이를 주지 않으면 개체 수를 줄일 수 있다"며 "과자·빵 부스러기만 주지 않아도 비둘기 스스로 풀씨나 곡물을 찾아 먹느라 번식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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