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총 벽화의 명장면(2) - 수렵도
[고구려사 명장면-32] 수렵도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많이 등장하는 제재 중의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수렵도하면 누구나 얼른 떠올리는 그림이 무용총의 수렵도일 만큼 워낙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수렵도는 무용총 널방 서쪽벽에 자리 잡아 동쪽벽의 무용도와 마주 보고 있다.
먼저 그림 전체를 살펴보자. 모두 5인의 말을 탄 무사가 등장하며 호랑이, 사슴 등 5마리동물이 사냥 대상이다. 앞뒤로 네 다리를 쭉 뻗어 힘차게 달리고 있는 말 위에는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고 머리에 새 깃을 꽂은 무사들이 놀라서 달아나는 호랑이와 사슴들을 뒤쫓고 있다. 사람과 짐승의 움직임이 역동적으로 그려지고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힘차고 속도감이 넘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오른쪽 하단의 산맥 모습은 좌우 대칭적인 구도이지만 흰색과 붉은색으로 구분되어 산이 겹쳐 보이게 의도했다. 그 위쪽, 즉 멀리 있는 작은 산과 그 뒤의 큰 산도 겹쳐 보이도록 표현하여 공간의 깊이를 살리고 있다. 또 이들 산맥은 윗부분의 사슴 사냥 장면과 아랫부분의 호랑이 사냥 장면을 분리하는 경계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아래쪽 산의 기능도 맨 아래쪽의 사슴 사냥하는 장면과 그 윗부분을 구분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맨 아래쪽에 2인 무사의 사냥하는 모습이 하나의 열을 이루고, 맨 위의 사슴 사냥하는 장면까지 차례로 모두 4개의 수평 열을 이루면서 다중적인 공간감을 형성한다.
또 무사가 타고 있는 말이나 사냥감인 짐승들 대부분이 오른쪽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고 있음에도 주목해보자. 이는 오른쪽 방향으로 역동적인 흐름을 만들어 수렵도에 박진감을 넘치게 한다. 게다가 아래 1열과 2열의 기마무사는 삼각형을 구성하며 거의 동일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구도에 안정감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중 가장 크게 묘사된 2열의 기마무사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맨 위쪽 4열에는 두 마리 사슴이 왼쪽으로 달리고 있어 그 아래 4열까지 오른쪽 방향으로의 흐름을 다소 역류시키고 있지만, 그 오른편 기마무사의 말이 오른쪽으로 달리면서 그 아래의 흐름과 조응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 흐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고 맨 위쪽 4열의 사슴들과 이를 겨냥하고 있는 무사와 활의 방향이 반대 방향을 취함으로써 화면의 단조로움을 깨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나름 조화로운 구성 중에 다소 이질적으로 눈에 띄는 인물이 보인다. 2열 가장 왼쪽에 있는 기마인물이다. 이 말은 네 발을 앞뒤로 한껏 뻗으면서 내달리는 다른 말과는 달리 뒷발을 마치 도움닫기 하듯이 잔뜩 웅크리고 있으며, 무사 역시 활시위를 당기지 않고 그냥 들고 있으며, 어떤 짐승도 쫓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매우 동적으로 움직이는 다른 기마무사와는 달리 매우 정적이다. 이 무사는 지금 사냥을 포기하고 있는 것일까?
화면 구성상에서 볼 때 다른 해석이 가능할 듯하다. 즉 이 정적인 기마무사는 다른 4인의 기마무사가 힘차게 오른쪽으로 내달리기 직전의 모습이다. 즉 여기서 힘을 응축시켰다가 일시에 폭발시켜 오른쪽으로 강렬한 속도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수렵도가 활기차고 박진감 넘치면서도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데에는 위에서 살펴본 다양한 화면 구성의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수렵도는 무용총에 있는 벽화 가운데서 회화적인 구성과 그 효과가 가장 뚜렷한 그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수렵도에도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다. 제일 위쪽에서 말이 달리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뒤로 틀어 활을 쏘는 기마무사의 모습을 잘 살펴보기 바란다. 이런 자세는 이란 땅 북부에 있던 파르티아 왕국에서 유래하여 파르티안 사법이라고 부른다. 이 파르티안 사법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기마무사는 왼손잡이로 표현되었다. 정말 왼손잡이였을까? 그런데 덕흥리고분 천장 수렵도를 보면 왼쪽 방향을 향해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무사가 왼손잡이로 그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화면상 왼쪽 방향으로 활을 쏘는 자세가 되는 두 사람 모두 왼손잡이로 그렸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런데 몽골에 유학하고 온 한 학자에게서 무용총의 그림과 비슷한 춤사위가 몽골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아직 필자가 이를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런 춤이 몽골에 있다면 고구려가 유목민족들과 활발하게 교류하고 유목문화적 요소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무용총 그림과 같은 춤사위를 추었을 가능성도 충분히 열어놓아야 한다. 고구려는 다양한 계통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자기화했던 국가였다. 오히려 우리의 시각이 고구려인들만큼 넓고 다양하지 못해 벽화 속 다양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고구려 역사에서 배워야 할 중요한 교훈의 하나는 넓은 영토가 아니라 넓은 시야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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