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유족 없는 쓸쓸한 죽음..'무연고 사망' 느는 이유는?

송인호 기자 입력 2017. 10. 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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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앞두고 고시텔에서 숨진 50대 남성 추적해보니….

추석을 20여 일 앞둔 지난 9월 초순 50대 남성이 서울 종로의 한 고시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좁은 쪽방에서 숨진 이 남성의 죽음은 발견될 때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시신이 부패하기 시작해 냄새가 나자 고시텔 총무가 이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부검 결과 이 남성은 올해 52살의 김 모 씨로 시신의 경직도 등으로 미뤄 숨진 지 닷새가 지난 상태였습니다. 특별한 외상이 없어 부검의는 '내재적 질병에 따른 병사'로 결론지었습니다.

김 씨에겐 형과 누나 등 세 명의 이복형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부모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 씨 사망을 이복형제들에게 알렸지만 어느 누구도 김 씨의 시신을 인수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김 씨와 오랜 기간 연락을 끊고 살았고 형편도 넉넉지 않아 김 씨의 시신을 거둬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가족은 있지만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됩니다. 이 경우 장례는 사망자가 속한 지자체에서 대신 치르게 됩니다.

● 가족 사망해도 '돈 없어' 시신 인수 포기…해마다 급증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가족이 사망해도 돈 없어 시신 인수를 포기한 사례는 2013년~2017년 6월까지 4년 반 동안 401명에 달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무연고 사망자의 40%에 달합니다. 문제는 가족이 있어도 시신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로 올해는 천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신 인수를 거절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큽니다. 무연고사를 담당하는 지자체 담당 공무원의 말을 종합하면 "변사자 중 연고자를 찾는 과정에서 수십일이 걸리고, 이 기간 동안 시신안치를 위한 병원 비용이 많게는 수백만원까지 들어간다. 저소득층이나 혼자된 자녀가 어렵게 살고 있는 경우 시신인수 비용에 장례비용까지 부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고 말합니다.

● 유족 없는 쓸쓸한 장례식…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이 상주 역할

앞서 고시텔에서 숨진 김 씨의 시신은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추석 연휴 전날 화장됐습니다. 기자도 가족없이 쓸쓸한 죽음을 맞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봤습니다. 이날 장례에는 지난 8월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59살 우 모 씨의 장례도 함께 진행됐습니다. 우 씨는 그야말로 기댈 가족이 한 명도 없는 '무연고자'로 한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 씨와 우 씨의 합동 장례에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시민단체 '나눔과 나눔' 관계자와 자원봉사자 4명이 나와 고인들의 넋을 기렸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는 보통 시신을 운구하는 운전사와 지자체 공무원이 담당합니다. 빈소도 없이 시신을 화장한 뒤 각 지자체가 마련한 무연고 사망자 납골당에 10년 동안 안치합니다. 무연고 처리된 고인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유골을 찾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결국 가족이 나타나지 않아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은 10년 뒤 유택동산에 뿌려지게 됩니다. 누군가의 축복을 받고 태어났지만, 쓸쓸한 죽음을 홀로 맞고, 마지막 가는 길조차 위로받지 못하는 죽음이 바로 '무연고사'입니다.

● 40~50대 남성 무연고사 31.8%…세계적으로 드문 현상

우리 사회 무연고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40~50대 남성의 비율이 높다는 점입니다. 무연고 사망자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1,833명에 달해 5년 새 1.8배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40~50대 남성 비율이 31.8%나 됩니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3명이 한창 일할 나이인 40~50대라는 것인데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드문 현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수년째 치러주고 있는 시민단체 '나눔과 나눔'의 부용구 전략사업팀장의 말입니다. "무연고사로 처리된 40~50대 남성을 보면 많은 경우 가족은 있지만 연락을 끊고 산 지 거의 20년 정도 된 경우가 공통적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들었던 IMF가 참 큰 영향을 줬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 30~40대셨던 분들이 지금 50~60대거든요. 무연고 사망자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50대입니다."

● "IMF 위기 후 20년간 가족과 단절"…혼자 지내다 질병 악화

IMF 경제위기가 바꾼 우리 사회의 자회상입니다. IMF시절인 30~40대 실직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던 남성들이 가족과 단절한 뒤 20년 뒤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혼자 막일을 하며 지내다가 쓸쓸히 홀로 죽음을 맞는다는 겁니다. 물론 모든 무연고 사망자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40~50대 남성의 무연고 사망이 많아지는 건 사회적 고립과 함께 경제적 어려움이 겹쳤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08년~'12년 대구지역 무연고 사망자 부검결과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병사가 37%로 가장 많았습니다. 혼자 외롭게 지내다가 우울증 등 정신적으로 고립되고, 만성 질병까지 앓다 사망하는 겁니다.

무연고사는 고독사와는 개념이 다릅니다. 고독사는 말 그대로 혼자 살다가 외롭게 죽은 걸 통칭하는 용어이고 무연고사는 연고자가 아예 없거나 있더라도 시신 인수를 할 사람이 없는 경우를 일컫습니다. 고독사가 어떻게 보면 좀 더 폭넓은 개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고독사와 무연고사를 비슷한 용어로 섞어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조차 무연고사와 고독사에 대한 정확한 통계 수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소득 3만 달러의 그늘…"2035년 고독사 1만 명 이상" 

무연고사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늘입니다. 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고 저소득층의 일자리는 줄어드는 반면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취약계층이 살 주거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가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발견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본의 1인 가구 비율은 35%로 한 해 평균 고독사가 약 3만 건 발생합니다. 우리도 지금은 1인 가구 비율이 27% 정도지만, 오는 2035년엔 일본 수준으로 높아질 경우 고독사와 무연고사도 함께 증가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은 오는 2035년엔 우리도 무연고사 포함 고독사가 1만 건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무연고사와 고독사 고위험군인 1인 독거노인 뿐만 아니라, 경제적 실패 등으로 가족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40~50대 중장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해 보입니다.    

송인호 기자songs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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