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카드서 사과로..'태블릿 보도' 그날 밤 청와대에선
[앵커]
기자 한 사람을 더 만나야되는데요. 서복현 기자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JTBC가 태블릿PC를 보도하기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개헌 카드를 꺼내며 정국을 돌파해 나가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불과 하루 만에 갑자기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국면은 빠르게 전환됩니다. 하루 사이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정치부 서복현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태블릿PC 보도 이전에 박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입장은 강경했습니다.
[기자]
그렇습니다. 당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 씨가 개입했다는 보도들이 나왔고요. 지난해 10월 19일, JTBC는 최 씨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대통령 연설문 수정이라는 고영태 씨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재단 문제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입장은 이랬습니다.
[박근혜/전 대통령 (지난해 10월 20일) : 재단이 제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들어졌다는데 그럴 이유도 없고 사실도 아닙니다. 만약 누구라도 재단과 관련해서 자금유용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겁니다.]
그리고 최순실 씨 연설문 수정 보도에 대해 이원종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원종/전 비서실장 (지난해 10월 21일) : 봉건 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그런 것이 밖으로 활자화되는지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앵커]
봉건시대라는 단어는 그때 그래서 화제가 됐습니다.
[기자]
그렇죠. 이렇게 박 전 대통령 그리고 비서실장까지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앵커]
겉으로는 그랬지만 안으로는 다급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자]
그 증거가 지난해 10월 22일 안종범 전 수석의 수첩에 적힌 내용입니다.
'1. 국면전환 대책 2. 시정연설-개헌'이라고 돼 있습니다.
[앵커]
결국 개헌 얘기가 그때 본격적으로 나오는 거군요.
[기자]
그렇죠. 참모들이 모여 회의하는 자리에서 적었던 겁니다. 국면전환용으로 개헌을 들고 나오기로 결정을 한 겁니다.
[앵커]
개헌에 반대했던 박 전 대통령이 갑자기 개헌 카드를 뺐다는 건 강력한 개헌 카드로… 사실 정치권에서 개헌만큼 큰 뉴스는 없으니까요. 그걸로 다른 의혹을 덮으려 했다는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기자]
박 전 대통령이 했던 말 중에 그 답이 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박근혜/전 대통령 (지난해 1월 13일) : 지금 우리 상황이 저기 블랙홀같이 모든 것을 빨아들여도 상관없는 그런 정도로 여유가 있는 그런 상황이냐 이거지요.]
본인 스스로가 개헌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개헌을 지난해 10월 24일에 빼든 겁니다.
[박근혜/전 대통령 (지난해 10월 24일) : 저는 오늘부터 개헌을 주장하는 국민과 국회의 요구를 국정 과제로 받아들이고 개헌을 위한 실무적인 준비를 해 나가겠습니다.]
[앵커]
그 상황이 그대로 지속됐더라면 지금의 한국사회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도 갖게 됩니다. 실제로 언론들은 그 부분을 대서특필했으니까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 부분은 연설 직후 언론사들의 속보가 잇따랐고요. 실제로 지상파 3사의 메인뉴스 톱은 개헌이 차지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말했던 대로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됐던 것이지요.
저희 취재팀도 개헌 발표로 태블릿PC 보도가 묻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를 한게 사실입니다.
[앵커]
일부에서 했겠죠. 그래도 저희는 보도를 했던 것이고요. 그렇다해도 개헌까지 꺼낸 박 전 대통령이 다음날 사과를 한다는 건 사실은 상상하지 못한 거잖아요?
[기자]
그 때 기억이 나는데요. 기존대로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JTBC를 겨냥한 공세적인 발언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때문에 당시 저를 비롯한 취재팀은 더 강하게 후속 보도를 내기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연설문 등에 국한된 반쪽 사과이기는 했지만 사과문을 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태블릿PC 보도 후 밤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데요.
[기자]
그렇습니다. 보도 후 청와대가 긴박하게 돌아간 것은 맞습니다. 저희도 청와대 쪽 돌아가는 상황을 직, 간접적으로 알아봤는데요,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저희 보도에 대해 청와대 입장을 물었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반응이 없기 때문에, 물론 부인을 했을 거다라는 예상을 했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기 때문에 추종보도가 나오기 시작했고요.
[앵커]
만일 그때 적극적으로 부인을 했다면 다른 언론들의 상황이 어땠을지는 지금 판단하기 어렵기는 합니다만은, 난리가 났다…박 전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도 그 시간 동안 대책을 논의했을 텐데요?
[기자]
그런데요, 말씀드렸지만 이원종 당시 비서실장은 봉건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국회에서 얘기했습니다. 이 말만 보면 비서실장도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와 관계를 몰랐던 것으로 보이고요. 안종범 전 수석은 사과엔 관여를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
사과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판단하는 데에 있어서 안종범 수석은 역할을 하지 않았다?
[기자]
네,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종범 수석 자체가 이미 당시에도 의혹의 당사자로 주목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김재원 당시 정무수석은 사과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머지 핵심 참모들이 남지만 당시 어떤 입장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도대체 JTBC 보도가 맞는 거냐를 놓고 모두 궁금해 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앵커]
제일 중요한 박 전 대통령의 움직임은 어땠습니까?
[기자]
지금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최순실 씨입니다. 박 전 대통령은 24일 밤과 25일 새벽까지 수차례 차명폰으로 최순실 씨와 통화를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태블릿PC 보도에 대한 대응을 논의한 것으로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그후 박 전 대통령은 사과를 했고요.
[앵커]
물론 대화 내용을 지금 알 수는 없습니다만 추정은 된다 하는 것이지요. 사과 이유로 또 추정되는 건 태블릿PC 안에 저장된 것이 무엇인지 사실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저희들은 알고 있었지만…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기자]
네, 연설문 관련된 사과만 하면 상황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태블릿PC 안에 각종 자료는 이메일을 열면 자동 저장되는, 눈에 잘 안 띄는 캐시폴더에 저장돼 있었습니다. 최 씨와 통화를 했지만 최 씨도 자신이 열어본 것이 태블릿에 저장됐을지는 몰랐을 수 있는 겁니다.
결국 박 전 대통령 사과는 JTBC 보도를 인정하는 셈이었고 더욱이 연설문에 국한된 사과는 다른 기밀도 유출됐다는 JTBC 후속 보도로 진정성 없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더 거세졌습니다.
[앵커]
그 이후에 후속 보도가 봇물처럼, 저희 뿐만이 아니라 다른 언론을 통해서도 쏟아져나왔고…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커다란 물결이 아니었는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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