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사용하는 '합리적 사유' 논쟁 불붙을듯
OECD 30개국 중 12개국 '제한'.."너무 강력해도 부작용"

(세종=뉴스1) 박정환 기자 = 문재인 정부가 기간제(비정규직) 근로자를 합리적 사유에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사유제한'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노동시장에서의 논쟁이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악화되는 비정규직 실태를 개선하는 강력한 정책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합리적 사유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뿐더러 자칫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하는 등 제도 마련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기존 기간제법 문제 공감…'합리적 사유'는 과제
정부는 지난 18일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발표하며 비정규직 정책으로 내년 중 기간제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기간제한'에서 '사용사유 제한' 방식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현행 기간제법은 합리적 사유 없이도 최대 2년까지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지만 앞으로는 합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사용이 가능하도록 바꾸겠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상시·지속 가능하거나, 생명·안전과 직접 관련되는 철도·항공 등의 업무에는 비정규직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전반적으로 비정규직 남용을 억제하고 정규직 채용 중심의 노동시장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의 이러한 정책 추진은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한 기간제법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악화시켰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6년 제정된 기간제법은 근로계약 기간이 2년이 넘을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간주하도록 했지만, 사업주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해고와 '쪼개기 계약'을 반복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됐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기간제법이 시행된 지난 2007년 기준 비정규직은 약 570만명이었지만, 지난해는 약 644만명으로 74만여명이 늘기도 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기간제법이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이미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비정규직 오남용을 막기 위한 법 개선에 대한 방향은 긍정적이라고 본다"라고 밝혔다.
다만 걸림돌은 '합리적 사유'다. 정부는 이에 대한 예시로 정규직 육아휴직 보충이나 계절적으로 영향을 받는 직종, 시간제 근로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명확한 기준에 대해선 아직 실태조사를 거치진 않았다. 무엇보다 재계와 노동계의 시각차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합리적 사유에 대한 해석 차이로 분쟁이 빈번할 소지도 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해고의 '정당한 이유'에 대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권혁 교수는 "합리적 사유는 틀림없이 논쟁거리가 될 수밖에 없기에 구체적인 명확성이 법기술적으로 필요하다"며 "가능한 사유를 명확하게 열거한 뒤, 기타 상세한 요건을 달아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이 밀집한 업종에 대해서도 고민이 불가피하다. 정부는 산업·업종별로 합리적 사유를 나누진 않겠다고 잠정적으로 밝혔지만, 업종별 특성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경우 비정규직이 7396명(85.7%)에 달한다. 정부의 방침에 따르면 이중 상시·지속이나 생명·안전에 해당하는 이들은 정규직으로, 나머지는 합리적 사유에 따라 정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예상된다.
현재 4만6000명에 달하는 기간제 교사 채용 역시 앞으로는 합리적 사유를 달아야 할 전망이다. 가령 정규직 교사의 육아휴직이나 교사 수요가 대폭 늘어날 경우가 해당될 수 있다. 이밖에 조선·자동차업체 등도 생산업종 특성상 비정규직 비율이 상당히 높아 혼란이 예상된다.
고용부 관계자는 "합리적인 사유를 정할 때 범위 등에 대해 관계부처 간 협의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조만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노사, 전문가 등 논의를 거치고 독일·프랑스 등 해외 사례도 참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OECD 30개국 중 12개국 '제한'…"너무 강력해도 부작용"
민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독일은 Δ노동력 수요가 일시적인 경우(계절노동) Δ직업교육이나 학업과 연결된 근로 Δ휴가나 병으로 인한 업무 공백 Δ시용기간(수습기간) 등에 기간제를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기준이 더욱 까다롭다. Δ결원의 일시 대체(최대 18개월 또는 결원의 복귀 시까지) Δ신규채용 정규직의 업무개시 전(최대 9개월) Δ기업의 일시적 업무량 증가(최대 18개월) Δ계절적 고용(최대 18개월 또는 계절의 종료) 등 시간과 사용사유제한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반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영미 국가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특별한 법적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그만큼 파트타임 직종이 활발하고 노동 유연성이 높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12개국은 사용사유제한을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규제 기준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고 보고 있다.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것은 기본적인 문제지만, 사용사유제한이 노동시장을 경직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오히려 일자리를 축소하는 악영향을 낳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용사유제한 도입은 공감할 수 있지만 기간제 근로자 감소가 정규직 근로자 증가로 연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해법없이 제한을 둔다면 기업은 채용을 줄일 가능성이 있고, 특히 기간제가 다수 있는 중소기업은 고용절벽 효과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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