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at >초당 340프레임·오차 ±2.6mm.. "심판의 종말" vs "완벽체 아냐"
- 테니스 인·아웃 판정… 라인맨 대체하는 ‘호크아이’
초고속 카메라 10~14대 통해
3차원 영상이 공 낙하점 짚어
2006년 도입 땐 보조 역할만
현재 ATP 등 80여 대회 활용
올 심판 판정 4분의1 번복돼
그림자를 공으로 오판 가능성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가 오는 11월 7일부터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넥스트 젠 ATP 파이널에서 라인맨 대신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호크아이(Hawk-eye)로 인·아웃을 판정한다. 넥스트 젠 ATP 파이널은 21세 이하 최강자전이다. 21세 이하 랭킹 상위 7명과 와일드카드를 받은 1명 등 8명이 출전하기에 남자프로테니스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이벤트다.
전통적인 테니스에선 경기를 관장하는 주심과 인·아웃을 판별하는 9명의 라인맨 등 총 10명의 심판진이 구성된다. 라인맨이 9명이나 투입되는 이유는 테니스공의 속도가 100㎞를 훌쩍 넘기 때문이다. 워낙 빨라 공이 라인을 벗어났는지를 판단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런데 ‘인간의 눈’엔 한계가 있었고 이로 인해 판정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호크아이가 등장했다. 2006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나스닥100오픈에서 ‘매의 눈’이라는 의미의 호크아이가 공식적으로 도입됐고, 지금까지 라인맨의 보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라인맨의 인·아웃 판정에 선수가 이의를 제기하면 주심은 호크아이로 판독한다. 호크아이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고 공식 데뷔 11년 만에 9명의 라인맨 일자리를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ATP는 “더 빠르고 박진감 넘치는 경기 진행을 위해 호크아이를 도입한다”며 “호크아이만으로도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는 기술의 진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영국 매체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이제 심판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며 “테니스 전통의 한 축인 심판과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공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호크아이는 1999년 영국의 폴 호킨스가 고안했으며 2001년 크리켓에서 처음 선보였다. 호크아이는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10∼14대의 초고속 카메라가 공의 움직임을 포착, 3차원 영상으로 재구성해 공이 떨어진 지점을 짚어준다. 2001년 호크아이의 오차범위는 ±5㎜ 정도였지만, 현재는 ±2.6㎜ 이내까지 정확도를 높였다. 테니스공의 지름이 67㎜인 것을 고려하면 2.6㎜는 ‘보풀’ 수준. 촬영 속도는 초당 340프레임으로 인간의 10∼12프레임에 30배 이상으로 빠르다.
4대 메이저대회에선 2006년 US오픈을 시작으로 2007년 윔블던과 호주오픈에서 호크아이를 도입했다. 다만 프랑스오픈은 흙바닥인 클레이코트에서 열려 공 자국이 남아 유일하게 호크아이를 활용하지 않는다. 가장 보수적인 스포츠로 통하는 테니스에서, 그것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대회에서 호크아이를 도입한 이유는 바로 편파판정 논란 때문이었다. 2004년 US오픈 여자단식 8강전이 그 시발점. 흑인인 세리나 윌리엄스는 백인인 제니퍼 캐프리아티(이상 미국)와 준결승 티켓을 놓고 맞붙었는데 당시 주심과 라인맨은 캐프리아티에게 거푸 유리한 판정을 내렸다. 특히 인·아웃 판정에서 윌리엄스는 계속해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윌리엄스는 패했고 TV 중계를 지켜보던 팬들이 US오픈 조직위원회에 항의하면서 인종 차별 문제가 불거졌다. 이 경기 이후 테니스계에선 심판들의 자의적인 판단을 막기 위해 호크아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2006년 US오픈 조직위원회는 4대 메이저대회 중 처음으로 호크아이를 도입했다. 뉴욕타임스는 “당시의 경기로 심판 권위가 크게 훼손됐고 이는 호크아이 도입의 촉매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테니스에서 호크아이를 처음 활용키로 했을 때 선수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특히 심판의 고유 권한인 판정에 호크아이가 ‘관여’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는 “호크아이는 돈 낭비”라면서 “테니스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나스닥100오픈 1회전에서 사상 최초로 호크아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 선수로 기록된 여자테니스 자미아 잭슨(미국)은 “호크아이는 심판과 선수들이 느끼는 심적인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호크아이 찬반 논란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현재 ATP를 비롯해 여자프로테니스(WTA), 국제테니스연맹(ITF) 등이 주관하는 80여 개의 대회에서 호크아이가 활용되고 있다. US오픈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대회에서 호크아이로 판정이 바뀐 건 남자단식에서 28.67%, 여자단식에선 24.55%였다. 심판의 첫 판정 중 4분의 1 정도가 호크아이 판독으로 번복된 셈. 호크아이 도입에 부정적이던 페더러도 “다른 종목도 호크아이로 오심을 잡아내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력 추천’할 정도.
하지만 호크아이가 완벽한 판정을 내리기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다.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호크아이가 완전히 심판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기엔 멀었다”고 지적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카메라가 설치된 위치와 방향, 바람의 영향 등으로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수 있으며 공의 그림자를 공으로 착각해 판정을 내릴 수도 있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대회 조직위원회는 한 코트에 3∼4명의 기술자를 투입해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유도한다. ATP는 “넥스트 젠 파이널이 테니스의 미래를 보여줄 것”이라며 “여론 수렴과 자료 분석을 거쳐 호크아이 판정을 확대해 나갈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손우성 기자 applepi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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