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소통전문가의 상담실 속 이야기] 엄마는 형제간의 싸움에 재판관이 아니다?!

글 김진미 2017. 10. 1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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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아침, 일산의 한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엄마들이 모인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커피 브레이크 페어런팅’이다. 엄마들의 수다 속 자녀교육 프로그램이다. “잘 놀다가도 하루 몇 번씩 싸워요, 한 아이 말을 들어주면 다른 아이가 억울해하니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두 아이를 기르는 엄마의 하소연으로 시작된다.

아침에 일어난 동생이 장난감 부엌 놀이 세트를 만들어서 문 앞에 놓고 아빠를 깨우러 들어갔다.그 사이 오빠가 일어나 그 장난감 세트를 가지고 놀았던 모양이다. 갑자기 동생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오빠가 내 부엌 놀이 망가뜨렸어!” 당황한 아들은 서둘러 항변했다.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원래부터 그랬어!” “아니야, 오빠가 만졌잖아.” “아니거든, 내가 안 만졌어.”

옥신각신 아이들의 말싸움으로 집안이 시끄러워졌다. 엄마는 아침부터 징징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짜증이 났다. 자신이 옳다고 상대방이 틀렸다고 악을 써대는 아이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화가 났다. 너무 자주 싸워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형제간 우애가 없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지수야 오빠가 안 만졌대, 그리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러나 동생은 막무가내였다. 달래도 듣지 않는 아이에게 엄마는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오빠가 너 장난감 좀 만지면 안 돼? 같이 놀라고 사준 거지, 꼭 너 혼자만 놀아야 해? 그리고 오빠는 우리 가족인데 뭐든지 같이 써야 하는 거야.” 아이의 울음은 30분이 넘게 그치지 않았다. 오빠에게 억지 사과를 시켰고, 아빠가 달래준 후에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과연 상황은 종료되었을까? 해결되지 않은 무엇이 있다. 바로 지수의 마음이다. 지수의 긴 울음은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이 아니다. 지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엄마에 대한 서운함이고, 엄마의 지지를 받은 오빠에 대한 질투심이다. 만약 엄마가 지수의 오해를 풀어주려고 오빠가 안 만졌고, 또 만졌다 해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면? 그래도 지수에게 그 내용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오빠 편을 들고 있다는 것으로만 느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가족이니까 모든 것을 오빠와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지수는 그마저도 오빠를 두둔하는 말로 받아들일 것이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수가 오빠를 일렀을 때, 엄마는 지수의 속상한 마음부터 먼저 알아주어야 한다. “저런, 어쩌나, 지수가 아침부터 공들여 만들었는데 망가졌네, 속상하겠다.”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면 아이는 곧 감정을 정리한다. 엄마는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 후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어본다. 그러면 아이는 다시 만들 것인지, 다른 것을 가지고 놀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동생 마음을 알아주고 있자면 오빠가 끼어들 수 있다.“내가 안 그랬다니까, 내가 망가뜨린 거 아니에요.” 엄마가 동생 편을 들어주고 자신을 책망하는 것 같은 불안감에 오빠가 항변하게 된다. 그럴 때 엄마는 역시 오빠의 억울한 마음도 알아주면 된다. “그랬어? 네가 망가뜨리지 않았구나. 네가 안 했는데 동생이 망가뜨렸다고 해서 억울했구나.”딸의 마음도 알아주고 아들의 마음도 알아주는 것이 모순으로 보인다. 두 아이를 다 옳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을 알아주는 것’과 ‘옳다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옳지 않아도 아이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각자의 마음을 알아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판단한다.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면 미안하다고 말할 마음이 생긴다. 억지로 사과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은 금방 화해하고 놀게 된다. 영유아 시기에는 형제 사이에 잦은 말다툼이 일어난다. 엄마는 순식간에 재판관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판단해준다. 그리고 억지로 사과를 시킨다. 마지막으로 사이좋게 놀라는 판결을 내린다. 엄마는 지혜로운 재판관이 될 수 있을까? 엄마의 판결이 내용적인 면에서는 공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감정 면에서는 불공정하다. 잘못한 사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발달의 단계상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영유아 시기의 아이들은 엄마의 공정한 판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상대방 편을 들어주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질투심만이 느껴질 뿐이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허전함만 전달될 뿐이다. 사이좋게 놀아야 한다는 교훈은 말로 해서 되지 않는다.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인정해주면 아이들은 저절로 사이좋게 논다. 따라서 이 시기 아이들의 다툼에 부모는 사실에 개입할 것이 아니다. 감정에 개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공정한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재판관이 되지 말고 마음의 지지자가 되라.

글 김진미(빅픽처 가족연구소 대표, bigpicturefami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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