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sumer journal] 쉿, 나만 알고싶은 스피크이지바..'은밀한' 인기

이희수 2017. 10. 12.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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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금주법 시대 몰래 마시는 술집서 유래
위스키 등 고급주류 수요 감소에도 강남·홍대 등 새 트렌드로..대부분 간판없어
아는 사람끼리 사부작사부작 즐기는 재미
토끼 모습을 한 간판만 있는 `앨리스청담` 입구.
"분명 여기 어디에 바가 있을 텐데."

다시 한 번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확인해봤다. 눈앞의 건물 주소는 확실히 서울 강남구 청담동 83-4가 맞다. 그런데 있어야 할 바(BAR) 매장이 눈에 띄지 않는다. 건물을 샅샅이 훑어보자 구석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 위에 자그맣게 'LE CHAMBER'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제대로 찾아오긴 한 모양이다.

문에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뜬금없이 '서재'가 나온다. 미리 알아보고 가지 않았다면 크게 당황할 뻔했다. 조사한 것에 따르면 바로 향하는 비밀 통로는 분명 이곳에 있다.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 서재를 뒤지기 시작했다. 액자를 만져보고, 소파도 슬쩍 밀어봤다. 한참을 수색한 후에야 문 여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곳에 놓인 어떤 물건을 만지니 문이 활짝 열리며 휘황찬란한 바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렵사리 찾아낸 이곳의 정체는 바로 '스피크이지바 르챔버'. 출입구 찾는 법을 구체적으로 알리는 건 금기라 더 이상은 함구하겠다.

최근 트렌드에 민감한 강남, 홍대 상권에는 '스피크이지바(Speakeasy Bar)'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스피크이지바란 1920년대 미국에서 금주법이 발령된 후 은밀히 활성화된 바를 일컫는다. 경찰이나 이웃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쉬쉬하며 술을 조용히 마신다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음주가 합법화된 현 시대에 스피크이지바는 출입구를 찾기 힘든 비밀스러운 바 혹은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조용한 바로 인식되고 있다. 이색적 콘셉트를 가진 이 매장은 2000년대 중반 뉴욕에서 큰 히트를 치더니 홍콩, 일본 등지로 확산됐다. 국내에선 불과 3~4년 전만 해도 이런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바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데다 딱히 홍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특한 바가 있다는 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주요 상권을 중심으로 스피크이지바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업계에 따르면 요즘 청담동, 연남동 일대의 스피크이지바는 매일 만석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위스키 등 고급 주류에 대한 수요가 감소해 수많은 바 매장이 매출 침체를 겪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모습이다.

2014년 오픈한 르챔버는 청담동을 대표하는 스피크이지바 중 하나다. 이곳은 국내 최대 규모 바텐더 대회인 '월드클래스'에서 우승한 바텐더들이 모여 만들었다. 임재진, 엄도환, 박성민 바텐더 등이다. 르챔버에 근무하는 올해 월드클래스 대회 우승자 홍두의 캡틴은 "3년 전에는 단골 고객들만 조용히 찾아왔는데 요즘에는 커플이나 외국인들까지 많이 온다"며 "인기가 많아져 최근 2호점 '스틸'도 오픈했다"고 말했다.

서재 같은 `르챔버` 입구를 지나면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찾아온다는 바 내부가 펼쳐진다.
청담동에는 또 다른 스피크이지바 '앨리스청담'도 존재한다. 이곳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인테리어를 구성했다. 바가 위치한 건물 밖에는 앨리스에 등장하는 토끼의 모습을 새긴 간판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간판 뒤의 장미 정원처럼 꾸며진 계단을 내려가면 바가 아닌 '꽃집'이 등장한다. 르챔버와 마찬가지로 꽃집 어딘가에 앨리스청담으로 향하는 비밀의 문이 숨겨져 있다. 최근 앨리스청담을 방문한 직장인 함초롬 씨(25)는 "출입구 찾는 재미가 쏠쏠해 스피크이지바에 종종 온다"며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기념일에 분위기를 내거나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조용히 한잔하기 좋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스피크이지바 원조는 2012년 한남동에 생긴 '스피크이지몰타르'다. 역시 변변찮은 간판이 없는 스피크이지몰타르는 바의 문을 두드린 후 종업원에게 인원 수를 보고해야 들어갈 수 있다. 이곳은 바텐더가 고객들 취향에 따라 '맞춤형 칵테일'을 제작해주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강남 일대 스피크이지바는 보통 칵테일을 2만5000~4만원에 판매한다. 일부 바는 입장료 1만원을 받기도 한다. 높은 가격대가 부담이라면 홍대 근처의 스피크이지바 '디스틸'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디스틸은 건물 외관에 간판이 아예 없고, 창문의 블라인드도 모조리 내려놓아 찾기가 상당히 어려운 스피크이지바다. 처음 보면 문을 닫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곳의 장점은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다른 스피크이지바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1만~2만원에 칵테일을 맛볼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스피크이지바는 강남, 홍대 일대에서 확산되더니 호텔에도 생겨났다. 2015년 영업을 시작한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의 '찰스H'가 대표적이다. 찰스H는 1920년대 뉴욕 스타일의 스피크이지바다. 포시즌스호텔 홈페이지에 '지하 1층에 숨겨져 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써 있을 만큼 입구를 찾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다. 심지어 매장 문을 열고 나오면 근처에 지나가던 손님이 놀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광화문에 위치한 만큼 직장인들이 퇴근 후 많이 찾으며 싱글몰트 위스키와 창의성 높은 크래프트 칵테일이 주로 판매된다.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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