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실종 시대] 감정 절제하고 이유 전달 명확, 이별 통보도 "카톡"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취업을 준비 중인 장모(27)씨는 얼마 전 카카오톡(카톡)으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카톡 이별은 "헤어지는 이유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8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지난해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한 고모(27)씨는 "'헤어지는 이유'와 함께 '이별 통보를 그냥 받아들여라' '답장은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며 "글로 이별하니 감정을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어 오히려 본심을 전달하기에 좋았다"고 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글로 이별하며 본심 전달”
“지나친 이기주의” 반론도
취업을 준비 중인 장모(27)씨는 얼마 전 카카오톡(카톡)으로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미안해서 도저히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고 했지만 “사귄 기간이 2주 정도밖에 안 돼 굳이 만나서 얘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그에게 드러내지 않은 속내였다.
‘갑자기 이런 말 해서 미안해. 생각해 봤는데 우리 잘 안 맞는 것 같아. 잘 지내’ 30자도 안 되는 메시지를 보낸 뒤, 숫자 ‘1’이 지워지는 걸(상대가 내용을 확인했다는 표시) 보지도 않은 채 대화방에서 나왔다는 그는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할 때는 야박하다는 욕을 먹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잘했다’는 반응들이어서 놀랐다”고 했다. 장씨는 “감정 소모도 덜 하고 편리하기도 하다”며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카톡을 이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만나 얘기하지 않는 건 매너 없는 짓’이라 여겨졌던 연인과의 이별조차 메신저가 애용되고 있다. 결혼정보회사 가연이 지난해 20, 30대 미혼 남녀 56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이별 통보’ 방식으로 당당히 1위(44.2%)에 오른 건 바로 카톡. ‘전화 통화’(23.9%)와 ‘직접 만나서’(19.8%)는 2, 3위를 차지했다. 절반 가까이는 한때 사랑했던 이의 ‘목소리’조차 듣지 않고 이별을 고한다는 얘기다.
카톡 이별은 “헤어지는 이유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8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지난해 카톡으로 이별을 통보한 고모(27)씨는 “‘헤어지는 이유’와 함께 ‘이별 통보를 그냥 받아들여라’ ‘답장은 하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담아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며 “글로 이별하니 감정을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어 오히려 본심을 전달하기에 좋았다”고 했다.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좋다”고도 입을 모은다. 종종 카톡으로 이별을 알리곤 한다는 유모(30)씨는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끝을 낸다는 게 쉬운 게 아니다”고 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내용만 전달할 수 있다면 형식은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인식이 일반화한 탓도 있다. “어차피 이별이 확정된 거라면 굳이 약속까지 잡아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옛 연인과의 재회에도 카톡은 큰 역할을 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해 미혼 남녀 64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더니, 헤어진 연인과의 첫 연락은 주로 카톡을 비롯한 메신저(45.7%)로 이뤄졌고, 전화 통화(20.4%)와 일반 문자(19.9%), 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 댓글(6.4%)이 뒤를 이었다.
카톡 이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 대학생 김주연(24)씨는 “상대와 이별 합의가 어느 정도 있었으면 모르겠지만, 자기 편하자고 혹은 이별 후유증을 피해보겠다고 카톡으로 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로지 텍스트를 통해 관계를 쉽게 맺고 쉽게 끊으려는 행위는 감정 소모를 최소화하려는 본능에 따른 것”이라며 “누군가에게 감정을 쏟을 정도로 자신의 삶이 여유롭지 않다는 현실이, 연인처럼 내밀한 관계에서조차 대화 실종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