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드레아 피를로(Andrea Pirlo).
그는 월드컵 우승(2006년), 챔피언스리그 우승(2회), 리그 우승(6회), 클럽월드컵 우승(1회),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센추리 클럽(116경기) 등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대회에서의 우승과 각종 기록을 보유한 의심의 여지 없는 유럽 최고의 레전드 미드필더다.
또 그는 단순히 우승 경력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천부적인 경기 조율, 패스 능력, 프리킥 능력 등으로 많은 축구팬들과 전문가들의 존경을 받았던 축구계의 '마에스트로'다.
그런 피를로가 은퇴 계획을 발표하면서(올해 말 경) 유럽은 물론 국내 언론에서도 그의 커리어를 다시 돌아보는 기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중에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박지성과의 인연도 포함되어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은퇴계획을 발표한 피를로와 박지성에 대한 인연, 그리고 피를로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박지성을 '경비견'에 비유했던 그 배경과 함께 두 레전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1. 유럽의 '마에스트로' 피를로와 한국의 '캡틴박' 박지성의 인연
피를로와 박지성의 '인연'은 국내는 물론 유럽 축구계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져있고 또 주기적으로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일화다.
2009/10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당시 AC 밀란은 물론 유럽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였던 피를로를 박지성이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무력화한 끝에 맨유가 8강에 진출했던 것이 그 단초였다. 이는 과거 다음 '원투펀치'에서도 소개했듯 맨마킹의 교과서적인 예로 앞으로도 오래 남을 것이다.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점은, 피를로와 박지성에 대한 사례는 국내에서 회자되는 이상으로 유럽 축구계에서 더욱 인용되고 회자된다는 사실이다.
그 한 예로, 불과 몇 주 전인 지난 9월 말 박지성과 맨유에서 함께 뛰었던 리오 퍼디난드가 BT 스포츠를 통해서 그 경기에 대해 회상하며 박지성을 맨유 최고의 '언성히어로'(unsung hero)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2. 피를로와 박지성, 그 오해와 진실 - 피를로는 왜 박지성을 '경비견'에 비유했나
한편, 이렇듯 유럽 축구계에서도 널리 기억되고 있는 피를로와 박지성의 맞대결은 그 후 피를로가 2014년에 현지에서 출간된 자서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에서 박지성에 대해 직접 언급하면서 또 한 번 큰 화제를 낳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국내에서 화제가 됐던 부분은 피를로가 박지성을 '경비견'(Guard dog)에 비유한 것이 박지성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는 표현이 아니냐는 부분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일부 매체에서는 피를로가 '막말'을 했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그러나, 당시 해당 기사를 보더라도 한국의 독자들은 오히려 '그것은 막말이 아니라 찬사'라는 반응을 보였다)
피를로의 자서전을 직접 번역한 역자로서, 또 두 사람의 맞대결을 지켜봤고 각각의 두 선수를 오래 지켜본 축구 기자로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피를로가 사용했던 '경비견'이라는 표현을 박지성에 대한 무시의 표현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이 책의 해당 부분 전후를 전혀 보지 못한 상태에서 오직 박지성에 대한 대목만을 읽고, 또 그 한 단어만에 의거하여 간주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 전체, 혹은 적어도 박지성에 대한 언급이 실린 챕터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결코 '무시'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피를로의 자서전에서 박지성에 대한 언급이 들어있는 부분은 15챕터('집시')다.
이 챕터에서 피를로는 박지성에 대해 언급하기 이전에, 몰타의 미드필더였던 안드레 솀브리라는 다른 한 선수에 대해 먼저 소개한다. 이 부분에서 피를로는 솀브리라는 선수를 자신이 선수생활 내내 만났던 가장 껄끄러웠던 상대로 소개하고 있다.(그의 말에 따르면, 이 선수는 90분 내내 볼은 쳐다보지도 않고 피를로만 따라붙었으며, 그것이 감독의 지시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피를로는 상대 선수를 '투견'(자기 자신을 90분 내내 악착같이 따라다녔던 점에서 착안)에 비유하며 자기 자신을 '뼈다귀'라고 언급한다.("그가 개라면 나는 뼈다귀였다")
피를로는 솀브리와의 일화 바로 뒤에 박지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즉, 박지성을 '경비견'에 비유한 것은 그 앞전에 다른 선수의 경우를 '투견'에 비유했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뼈다귀'라고 비유했던 것을 고려해보면 '경비견'이라는 표현조차 결코 비하의 표현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일련의 표현들은 모두 문맥상 이어지는 표현이지 그 이상의 무엇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피를로는 본인의 자서전에서 자기 자신을 비하했다는 것이 된다)
이후 이어지는 박지성에 대한 언급에서 그는 박지성에 대해 "전자의 스피드로 뛰어다녔다"며 "역사상 최초의 핵과 같은 선수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또 "그의 헌신은 거의 감동적이었다"며 "이미 스스로의 능력으로 유명한 선수"였다고도 말하며 박지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 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의 능력을 기꺼이 억제한 채 경비견이 되는 데 동의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박지성에 대한 언급 그 직후에 나오는 피를로의 말을 읽어보면 더욱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솀브리와 박지성에 대한 언급 이후에 "나는 그라운드 위를 떠돌아다니는 집시"라며 "내가 찾고자 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약간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피를로 특유의 플레이 스타일을 그대로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즉, 피를로가 박지성을 포함한 두 선수, 그리고 이 챕터를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플레이스타일에 대한 표현, 그리고 그와 다른 두 선수나 그런 전술을 사용하는 감독들(퍼거슨 감독을 포함한)에 대한 그 자신의 '비판적인 생각'이었을 뿐 특정 선수를 비하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3. 축구 역사가 기억할 피를로, 그리고 박지성
앞서 소개한 2009/10시즌 중에 있었던 챔피언스리그 경기 중의 맞대결로, 또 그 이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의 언급을 통해 피를로와 박지성은 어느 시점부터 유럽의 축구팬들에게 또 한국의 축구팬들에게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독특한 인연이 됐다.
물론 피를로는 박지성과의 일화 외에도 수많은 명장면들을 남긴 선수로 유럽 축구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현역시절 그의 명석한 두뇌, 지능적인 플레이 등을 고려해보면 그는 이후 축구계에서 지도자로 또는 다른 모습으로 커리어를 이어갈 가능성도 높아보인다.(이미 피를로가 콘테 감독을 따라 첼시 코치로 올 가능성이 있다는 현지보도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런 피를로를 완벽하게 막아냈던 박지성 역시, 상대팀 에이스(혹은 플레이메이커)를 완벽하게 봉쇄한 전술적 승리와 맨마킹의 교과서적인 예로 영원히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그렇듯 위대한 두 선수에 대해 더이상 책에 사용된 하나의 단어만으로 오해가 나오는 상황이 없기를 빌며 이 칼럼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