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혐오를 넘어](1) 분노와 불안 '왜곡된 투사'..세상이 온통 '색안경'을 썼다
[경향신문] ㆍOO은 없다, 머릿속 허상 파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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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된 색안경을 쓰고 보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쉽게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를 전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몹시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인간 존재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며 고정된 이미지로만 그들을 바라본다. 그런 이미지와 이야기들은 혐오 대상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말한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은 사회적으로 혐오를 받는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색안경’을 쓰고 비난의 근거로 삼는지 조사했다. 지난달 13일부터 열흘간 10~30대 응답자 50여명에게 ‘김치녀’ ‘맘충’ ‘동성애자’ ‘이주민’ 등 혐오 대상이 되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조사하고, 혐오 대상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반응을 들었다.
‘맘충’에서 사람들은 ‘기저귀, 쏟음, 고급 유모차, 커피숍, 브런치, 백화점, 거만, 무개념, 시끄럽다, 치우지 않는다, 남편, 놀다, 노메이크업, 보기 싫음’ 등의 단어를 떠올렸다. 조사 결과를 보여주자 실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분노하는 동시에 위축되는 모습이었다. 채지연씨(35·가명)는 “애를 놔두고 다니면 뭐라고 그러고, 애를 데리고 나와도 뭐라고 그러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분노받이’ 같다”고 말했다. 채씨는 “ ‘맘충’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데 굉장히 불편하고 상처받는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그렇게 하고 있나’라고 자책하게 된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둔 손모씨(36)는 “식당에 갈 때 남들한테 폐를 끼칠까봐 고민하게 되고, 웬만해선 포장해와서 먹고 외식 자체를 잘 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치녀’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명품백, 스타벅스, 화장, 좋은 몸매, 원피스, 돈, 욕망, 과소비, 성형, 예쁨…. 김치녀는 ‘소비’와 관련돼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외모는 전형적 미인의 이미지에 가까웠다. 김치녀는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20~30대 여성에게 조사결과를 보여줬다. 직장인 이모씨(33)는 “김치녀란 소리를 들어본 적이 많다. 입고 있는 옷과 차를 보고 ‘자기 돈으로 샀을 리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스스로 벌어서 쓴다”며 “본인이 성취해나간 배경이 있는데, 외형만 보고 ‘김치녀’라고 판단하는 건 편견”이라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씨(30)는 “대학시절 ‘스타벅스녀’라 불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힘들게 과외하고 공부하느라 피곤해서 내 돈으로 커피 사 마신 건데 뒤에서 수군거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모씨(29)는 “김치녀라는 여성 비하적 프레임과 남성이 좋아하는 여성의 이미지가 공존하는 것이 웃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집중적 혐오발언의 대상이 되고 있는 ‘동성애자’에 대한 이미지는 ‘똥꼬충, 불쾌, 예쁜 남자, 여성스러움, 중성적, 노출, 시위꾼, 에이즈’ 등으로 그려졌다. 혐오 표현을 접한 청소년 성소수자 ㄱ씨(18)는 “울컥해서 눈물날 것 같기도 하고, 화나는데 뭐라고 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응답자 가운데 ‘차별하면 안됨, 특별하지 않음, 쿨, 개방적, 자유로움, 멋’ 등의 긍정적 단어를 떠올린 사람도 있었다. 보수집단을 중심으로 ‘동성애 혐오’가 확산되는 가운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주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막노동, 가난, 까무잡잡, 후줄근, 꺼려짐, 냄새, 범죄자’ 등의 이미지로 조사됐다. 이주민에 대해서는 미디어를 통해 접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모씨(28)는 “사실 조선족은 구분도 안되어서 만나도 잘 모른다”며 “TV나 영화에서 조선족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동포 박옥선씨는 “영화 <청년경찰>을 본 청년들이 조선족을 동떨어진 사람, 조그만 일에도 감정 섞어서 폭력으로 이어지는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한다”며 “예전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아직도 40~50명이 한방에서 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왜 머릿속에 실제 대상과 일치하지 않는 혐오 대상에 대한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혐오하는 걸까.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개인의 제한적 경험을 토대로 대상을 일반화하기 때문에 스테레오 타입은 자의적이고 선택적인 것”이라며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분노표출의 재료로 활용되는 것이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설명했다. 오찬호 사회학자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합리적인 나의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장 악랄했던 사례를 찾고 극한의 이미지를 찾는다”며 “혐오와 차별의 정서를 합리화하려는 강박”이라고 말했다.
부정적 스테레오 타입은 주로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진다. 김수아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사회적 약자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아서 현재 직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지혜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는 “성소수자나 이주민 등 동등하게 여겨지지 않던 시민들이 동등한 위치로 자리 잡으려 할 때 ‘너네는 열등하지 않았냐’는 생각을 몇 가지 단어나 문장으로 만들어내고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그걸 믿게 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혐오는 권력감정이다.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 하는 것”이라며 “혐오할 수 있는 것이 곧 권력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혐오의 이미지는 사람들을 옥죄는 틀이 된다. 혐오 이미지에 자신이 포함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검열하게 한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 대상자는 자신이 ‘김치녀·맘충’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김치녀가 아니라 ‘개념녀’가 되어야 하는 것. 혐오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이를 내재화해 자신을 규율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회심리학자 박진영씨는 “지하철에서 난동 부리는 사람, 고성방가 취객, 갑질 등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 사람인데 그중에서 ‘엄마’라는 특정 집단을 발라내고, 잘못을 저지르는 개인을 그 집단 대표인 양 ‘맘충’이라고 부르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프레임이 생기면 사람들은 해당 사람을 ‘맘충 대 개념 엄마’로 나눠서 보게 되고 누가 맘충이고 누가 개념엄마인지 판단, 검열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눈앞의 사람을 ‘총체적 인간’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성찰부터 필요하다. 윤김지영 교수는 “내 안의 소수자성을 인정하도록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승자독식 사회에서 내가 패배했을 때 느끼는 열패감이 혐오로 나타난다면, 나도 권력의 한 측면에서 소수자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걸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효상·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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