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대상 오른 이명박]MB식 비판세력 적출법, 박근혜 정부보다 저열하고 집요했다

정환보 기자 입력 2017. 9. 19. 22:33 수정 2017. 9. 1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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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문화예술계 좌파 등급 분류…제재·계도 등 맞춤형 철퇴

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국가정보원을 동원해 ‘박원순 제압 문건’을 작성·실행한 책임을 물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하면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서울 강남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직접 겨누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최근 확인된 것이 결정타였다.

특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핵심인사가 복역 중인 박근혜 정부와는 또 다른 MB식 ‘비판세력 적출법’이 주목받고 있다. 계획·전략수립 단계에서 깨알같이 꼼꼼한 준비, 실제 실행에서 보여준 집요함, 국가기관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저열한 행태까지 전 단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 촘촘히 준비된 그물망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명단에 오른 대상자가 9473명이라는 점에서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지지선언 참여자 등을 몽땅 집어넣는 등 정교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반면 방송·연예계 인사 중심으로 82명을 선정해 놓은 MB판 블랙리스트 작성 전후에는 세부사항이 촘촘하게 준비됐다.

2010년 10월 청와대 기획관리비서관 요청으로 국정원이 작성한 ‘문화예술단체 내 좌파인사 현황, 제어 관리방안 보고’ 문서에 따르면, 국정원은 정부 비판 성향 연예인을 촛불집회 적극 가담 A급 15명, 단순 동조자 B급 18명으로 분류했다. A급은 연예활동에 대한 실질적 제재조치를, B급은 계도조치를 취하는 등 ‘맞춤형 철퇴’를 가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MBC·KBS 등 방송장악 국정원 문건을 보면 주요 간부 한 사람 한 사람을 ‘좌편향’ ‘무능·무소신’ ‘비리 연루’로 구분해 낙인찍고 퇴출 필요성을 정리하기도 했다.

■ 전방위로 압박하는 집요함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는 지난 7월27일 서울중앙지법 1심 선고에서 “지원 배제 행위가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진행됐다”는 판단을 받았다. 그러나 ‘은밀하고 집요한 방법’은 MB판 블랙리스트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금전적 지원 배제에 초점을 두는 단순한 수준을 넘었다. 퇴출 대상으로 지목된 인물의 사회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로 압박을 일삼았다.

국정원 ‘좌파 연예인 대응 TF’와 문화·연예·방송 담당관 활동 보고를 보면, 2009년 10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총 19건의 활동 내용이 담겨 있다. 연예인 소속 기획사 세무조사·특정 프로그램 폐지·라디오 제작자 지방 발령 유도 등을 국정원이 이끌었다. ‘연예인의 종북 성향 폭로’ ‘댓글·사설 정보지 형태 문건 유포’ ‘광고주에 항의 e메일 발송·광고모델 교체 압박’ ‘유관부처·기관 직접 조치를 통한 오프라인 압박’ 등 압박 방법도 다양했다.

‘더티 플레이’도 드러났다. 국정원 심리전단이 2011년 10월 보수성향 인터넷 카페에 배우 문성근·김여진씨가 나체 상태로 누워 있는 합성사진을 제작해 올린 게 대표적이다. 심리전단은 그해 9월 민간인 사이버외곽팀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즐라인민공화국 슨상교도들이 일으킨 무장폭동’이라고 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정오에는 뇌물짱’ ‘부엉이 바위 번지점프’ 등으로 폄훼하는 글을 올렸다.

국정원의 행태는 원세훈 전 원장의 출신성분과도 무관치 않다.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장 출신의 정보 문외한이면서 ‘MB 집사’로 불린 그가 물불을 가리지 않는 충성심에서 국정원을 ‘이명박 지키기’ 기관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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