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Nostalgia] '꾸준함의 대명사' 스티브 피넌 - 72

이형주 기자 2017. 9.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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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N스포츠=이형주 기자]

Nostalgia, 과거에 대한 향수란 뜻이다.

지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무대에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다. 그 원동력은 이전의 선수들이 우수한 플레이로 팬들을 매료시키며 EPL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이다. 이에 EPL Nostalgia에선 일주일에 한 명씩 과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선수들을 재조명해본다. [편집자주]

◇ '꾸준함의 대명사' 스티브 피넌 <72>

축구계에서 어느 한 시기에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는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 훌륭한 활약을 꾸준히 이어가는 선수는 드물다. 前 프리미어리거 중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그 활약을 꾸준하게 이어가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리는 선수가 있다.

피넌은 1976년에 태어났다. 피넌은 윔블턴 FC 유스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으나, 그 곳에서 데뷔는 실패했다. 이에 5부리그이자 아마추어팀인 윌링 유나이티드로 이적하여 프로 데뷔를 했다.

낭중지추였다. 아마추어리그의 선수라곤 믿어지지 않을만큼 기량이 돋보였다. 피넌을 눈여겨 본 버밍엄 시티가 피넌을 영입했다. 버밍엄은 당시 2부 리그에 머물고 있었다. 피넌은 첫 경기였던 왈솔 FC전 승리에 기여했고, 한달 후 브리스톨 로버스전에서는 데뷔골을 신고하는 등 이적 초반 좋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만 19세 밖에 되지 않은 피넌에게 2부 리그의 주전 경쟁은 버거웠다. 출전 기회를 더 많이 얻기 위해 피넌은 3부리그의 노츠 카운티로 임대를 떠나며 3번째로 팀을 옮겼다.

피넌은 노츠 카운티 시절은 롤러코스터였다. 임대를 떠난 시즌에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까지 진출하나 브래드포드 시티에 패하며 2부 리그행이 좌절됐다. 1996/97시즌을 앞두고 완전 이적을 했지만, 팀은 그 시즌 4부 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러나 또 한 시즌 만에 피넌을 활약을 앞세워 승격한 것이 노츠 카운티였다.

물론 부침은 있었지만, 3부 리그와 4부 리그를 전전하며 커리어가 정체되고 있었다. 이런 피넌을 구해낸 것이 케빈 키컨 감독이었다. 키건 감독은 피넌을 당시 2부 리그에 있던 풀럼으로 영입했다.

피넌은 이적 후 금새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풀럼은 피넌 등의 활약을 더해 2000/01시즌 챔피언쉽(2부 리그)서 2위를 기록, 프리미어리그행을 확정지었다. 피넌으로써도 첫 프리미어리그 진출이었다.

하지만 피넌은 이전부터 프리미어리거였던 것처럼 활약했다. 소속 팀 풀럼 역시 이에 순항을 거듭했다. 폴 브라스웰, 장 티가나 등 풀럼의 감독이 자주 바뀌었지만 피넌의 자리는 안정적이었다.

리버풀 FC 시절이 각인되어 있어 피넌을 안정적인 풀백으로 기억하는 팬들이 많지만, 풀럼 시절 피넌은 보다 다이나믹한 선수였다. 많은 활동량과 정확한 크로스로 상대 수비를 곤혹스럽게 하는 선수가 바로 피넌이었다.

황금기였다. 피넌은 풀럼 소속으로 UEFA 인터토토컵에서도 맹활약했고 2001/02시즌에는 PFA 선정 올해의 팀과 풀럼 최우수 선수로 동시에 뽑혔다. 피넌의 활약이 꾸준하면서 빅클럽들의 관심도 커져만 갔다.

피넌의 선택은 리버풀이었다. 피넌은 2003년 여름 리버풀로 이적했다. 그리고 8월 바로 1R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그러나 첫 시즌은 좋지 않았다.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피넌은 첫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부상으로 놓쳤다. 여러 우려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피넌이 두 번째 시즌부터 날아올랐다. 붙박이 라이트백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피넌은 2004/05시즌 4R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전에서 리버풀 데뷔골에 성공했다. 피넌은 이 골로 인해 5부리그부터 1부리그까지 잉글랜드 상위 5개 리그에서 득점한 선수가 됐다. 그리고 이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가 되는 영광도 누린다.

2005/06시즌에도 피넌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변함 없이 라이트백 주전은 피넌이었다. 이 시즌 리버풀은 승점 82점을 기록하며 프리미어리그 들어 최다 승점을 기록하는데, 피넌이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피넌의 활약이 점차 반석 위에 올랐다. 2006/07시즌 알바로 아르벨로아가 당도했음에도 피넌이 라이트백 주전 자리를 지켰다. 프리미어리그, UEFA 챔피언스리그, FA컵 등 나서는 경기마다 활약이 준수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패한 것만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문제는 2007/08시즌이었다. 이 시즌 팀이 승승장구했지만, 피넌은 입지가 좁아졌다. 라파 베니테즈 감독이 알바로 아르벨로아를 보다 중용했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는 전문 라이트백 필립 데겐까지 합류하면서 피넌은 설 자리를 잃었다. 당시 가레스 배리 영입에 끼어 아스톤 빌라로 이적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리버풀이 배리 영입에 실패함에 따라 피넌의 빌라행도 무산됐다. 하지만 피넌이 팀을 떠나야하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피넌은 RCD 에스파뇰로 이적을 감행했다. 하지만 피넌은 프리메라리가 입성 이후에도 단 4경기 출전에 그쳤다.

사실 2009년 겨울 이적 시장에 방황하던 피넌에 아스널 FC와 토트넘 핫스퍼가 오퍼를 했다. 하지만 이는 에스파뇰의 디렉터 파코 에레라와 감독 호세 마누엘 에스날에 의해 거절되는데 피넌 개인으로선 아쉬울만 했다.

피넌은 2009년 7월 포츠머스 FC로 이적하며 결국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분투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분투했으나 팀의 강등을 막지 못 했다. 피넌은 2010년 FA컵 결승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EPL 최고의 순간

2004/05시즌 프리미어리그 4R에서 리버풀과 WBA이 맞붙었다. 전반 16분 터진 스티븐 제라드의 득점을 통해 리버풀이 1-0으로 앞섰고, 이후 전반 42분까지 양 팀이 공방을 거듭했다.

전반 42분 욘 아르네 리세의 롱패스가 오른쪽 측면에서 박스로 쇄도하는 피넌에게 갔다. 피넌은 첫 터치로 폴 로빈슨을 제쳤다. 피넌은 슛하는 척하며 마르틴 알브렛슨까지 벗겨냈다. 이후 슈팅을 했고 득점이 됐다. 피넌의 프리미어리그 데뷔골이었다. 리버풀은 제라드, 피넌의 득점에 후반 15분 루이스 가르시아의 득점까지 더해 3-0으로 승리했다.

◇프로필

이름 – 스티브 피넌

국적 - 아일랜드

생년월일 - 1976년 4월 24일

신장 및 체중 - 183cm, 76kg

포지션 - 라이트백

국가대표 경력 - 53경기 2골

사진=프리미어리그 홈페이지 캡처

total87910@stnsport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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