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뒤늦게 꽂혔다.. '취향 사냥꾼' 아재들
아재 4인방의 '취향 사냥 성공기'
몸·자동차·패션·음식.. 20대보다 넓고, 30대보다 깊게 섭렵
쇼핑의 '쇼'도 몰랐는데
프랭크 시나트라 동경해 페도라 등으로 코디 시작
"그가 된 듯한 자신감 얻어"
신발에 빠진 뮤지션
음악과 협업한 신발 보니 만든 이 철학 느껴져 관심
수소문해 구한 운동화 등 신발 100여 켤레 모아
생존을 위한 운동이..
공부하려고 키운 체력이 근육질 몸매의 바탕으로
"몸 만드니 관심사 늘어.. 취향 덕에 세상 넓어져"
겉멋에서 출발
록하며 모터사이클 타다 엔진에 빠져 車도 연구
이어 생활 전반에 관심 "취향도 공부해야 생겨"

그동안 '중년 남자'와 '취향'은 대척점에 있는 듯한 단어였다. 중년 남자는 권위적이며 구세대적이고 멋이라곤 낼 줄도 모르고 한 술 더 떠 '아재 개그'를 남발하는 유치함의 산물로 취급받았다. '꼰대'로 직행하는 마지막 열차를 타고 맹렬하게 달려가는 이들을 '아재'라는 조롱과 측은함 섞인 단어로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그랬던 '아재'가 진화하고 있다. 20대보다 깊은 지식으로, 30대보다 진한 여유로 무장한 그들이 '취향 사냥'에 나서고 있다. 늦바람 무섭다더니 마흔 줄에 들어서 패션, 음식, 여행, 디자인 소품 등 다양한 방면을 무섭게 탐닉한다. 단순한 취향 발견의 기쁨을 넘어서 해박한 지식을 향해 나가는 이들까지 생겼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1970~ 80년대는 포크·통기타·LP바 문화가, 1990년대는 해외 대중문화가 유입돼 꽃피던 시절"이라며 "그 당시 청춘을 보냈던 4050세대들이 모바일 정보 공유 문화를 적극적으로 학습하며 문화적 개성을 발현하고 있다"고 했다.
TV 등 대중매체에서도 오빠와 아저씨 중간 지점에서 어정쩡하게 자리 잡았던 '아재'가 '유능한'이란 수식어를 달고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그간 알고 있던 지식을 마치 '창고 대방출' 하듯 쏟아내던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tvN), 젖먹던 지식까지 뽑아내 시사를 꿰뚫는다는 '유아독존'(유식한 아재들의 독한 인물평존·tvN) 등의 프로그램이다.
어쩌면 우리는 중년의 잠재력을 저평가해왔는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 의학 담당 기자인 바버라 스트로치가 낸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에 따르면 "중년의 뇌는 놀랍도록 유능하고 재주가 많다"고 한다. 경탄스럽도록 에너지가 효율적이며 인지와 감정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시기라는 것이다. 정보처리 속도나 세부 사항을 기억하는 정확도 등에서 20대 뇌보다 다소 떨어진다고는 해도 판단력, 종합능력, 직관력, 통찰력 등은 우수하단다. 미국 케임브리지대 해부학자인 데이비드 베인브리지도 "중년은 신(神)과 가장 닮은 지혜와 이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friday 섹션이 '취향 사냥꾼'이 된 중년 남성들을 만났다. 검은색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 하나로 '혁명적 사고'라는 이미지를 구현해낸 스티브 잡스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완성해 나가는 이들이다. 저서 '남자는 쇼핑을 좋아해'를 통해 마흔 넘어 쇼핑에 눈 떠 새로운 세상을 찾았다고 고백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류처럼 뒤늦게 숨은 적성을 알게 돼 그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자아도취'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당당히 선언한다. '유아도취', 유식한 아재들의 도도한 취향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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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린 시절엔 지금 같이 정보의 창구가 많지 않았다.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에서 남다름을 추구한다는 게 잘 받아들여지지도 않았고, 손가락질 받기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젠 취향을 찾는 일이 곧 행복과 동일시되는 것 같다."
가수 아이유와 소녀시대 써니, 탤런트 유인나, 개그맨 정형돈 등 스타들의 영어 선생님이자 인기 영어방송 프로그램인 'KBS 굿모닝 팝스'를 10년간 진행해온 이근철(51·이근철 언어문화연구소 대표)씨는 아침을 깨우는 쾌활한 목소리 못지않게 멀리서도 그인지 딱 알아볼 스타일로도 유명하다. 페도라(중간 크기의 챙에 중앙이 움푹파인 모자)나 헌팅캡에 알 없는 안경, 보타이에 어깨가 착 감기는 이탈리아식 재킷, 거기에 끈 없이 가볍게 신을 수 있는 로퍼 스타일 신발 등이다. 10년 넘게 비슷한 외형을 고수한 '취향 만학도'. 그의 친구들은 "페도라를 보면 이근철이 떠오른다"고 할 정도다.
"서른살 넘어서까지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도 모르는 데다 쇼핑이란 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마흔을 갓 넘긴 날이었나. 용기를 내서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스타일을 따라 해봤다. 왠지 그 사람이 된 듯한 자신감이 생겼다. 숨겨진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된 순간이었다."
1970~80년대 경제개발기 청년기를 보낸 지금의 대한민국 중년 남자들의 위치는 독특하다. 이씨처럼 집단에 갇혀 평균에서 되도록 벗어나지 않는 '무색·무취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X세대'라 불렸던 지금의 40대도 이전 '386'세대와 구별돼 개성을 표현한 첫 세대로 꼽히지만, 취향을 내세우기보다 숨기는 게 미덕이었다. 관계지향적인 한국 문화에서 남들의 평가란 잣대는 가장 무시무시한 족쇄이기도 했다.
취향은 곧 캐릭터다
스무드 재즈 밴드 '재즈오텍'의 리더인 이태원(44) 프로듀서는 '스니커헤드(sneakerhead·운동화 수집광)'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동료인 마이클 잭슨 밴드의 베이시스트인 알렉스 알, 조지 벤슨 밴드의 드러머 토니 무어가 붙여준 별칭이다. 그는 현재 희귀 운동화를 비롯해 스니커즈 100여 켤레를 소장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음반 녹음작업을 위해 해외를 찾아 녹음시간 빼고는 스니커즈 쇼핑에 모든 시간을 쏟았다.

"힙합가수인 카녜이 웨스트가 나이키와 협업한 신발을 보면서 왜 음악가가 신발과 손을 잡을까 하는 데 궁금증이 폭발했다. 그전까지 운동화는 운동을 잘하는 걸 도와주는 도구인 줄 알았는데 음악의 가사나 음표처럼 곧 만든이의 철학을 드러내는 매개체였다." 이후 카녜이 웨스트가 아디다스와 손잡고 내놓은 이지 부스트 시리즈 등을 어렵게 '득템'했다. 나이키 창업자 필 바우어만이 과거 대학 코치시절 당시 제자이자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던 케니 무어를 위해 만든 '코르테즈 케니무어 qs'도 몇번의 시도 끝에 구했다.

최근 방송된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세바시)' 강연 등을 통해 세련된 매너와 외모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최재붕(52) 교수도 비슷한 경우다. 스티브 잡스와 비슷하게 검은 터틀넥과 청바지 차림이 그의 상징처럼 돼 있다. 최 교수는 "비주얼 시대에 접어들고 자기 연출이 곧 자기 생각의 발현이라 동일시되면서 정신도 복장에서 나온다는 시각이 팽배하다"며 "의상이 바뀌니 생각도 좀 더 혁명적으로 남다르게 하려고 스스로 달라진다"고 말했다. 색색깔의 양말은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에게 영감을 받은 차림이란다. 캐릭터를 완성하니 오히려 일에 몰입하기 쉬워졌다.
취향은 곧 생존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김상헌(53) 교수에겐 '몸짱'이라는 별칭이 항상 붙어 다닌다. 마흔다섯이었던 지난 2009년 남성전문 건강매거진 '멘즈헬스'에서 주최하는 '쿨가이 선발대회'에 출전하고 난 뒤부터다. 식스팩이 선명하게 그려진 몸매로 런웨이를 걷는 사전 심사 장면이 마침 현장 촬영을 온 방송 프로그램에 노출되면서 학교 게시판에 댓글만 수천개가 붙을 정도로 화제가 됐다.

"본선 출전을 여러번 고사할 정도로 반향이 컸다. 대학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해 조언을 구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제는 외려 만나는 사람마다 당시 대회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관리 노하우를 묻는다." 공기업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10개월 특별과정 학생들에게 '몸 관리' 요청이 들어와 운동을 가르치기도 한다. 최대 20㎏을 빼고 '새 삶을 얻었다'는 학생도 있다.
그가 '건강'을 생각하게 된 건 풀브라이트 전액 장학금으로 미국 시카고 대학에 유학하게 되면서. 밤을 새워도 해내기 버거울 정도로 공부량이 많았다. '살기 위해' 운동을 했다. 학교 체육관을 찾았는데, 노하우 없이 운동하는 동양의 마른 청년이 안쓰러웠는지 거구의 현지인 트레이너들이 그에게 다가와 무료로 운동법을 가르쳐줬다.
2005년 서울대에 부임하고서도 버릇처럼 학교 체육관에서 운동했다. 당시 트레이너가 "좋은 대회가 있으니 출전해보라"며 그를 설득했다. 그저 그런 습관이 그의 장점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3개월간 집중적으로 운동했다. "대회를 위해서 체지방률 6% 정도로 몸을 만들었다. 덕분에 복근에 강하게 식스팩이 새겨졌는데 대신 얼굴에 식스팩도 얻었다(웃음). 지금까지 체지방률 11%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 몸을 만들어놓으니 옷이 보이기 시작하고, 옷을 알게 되니, 그 옷을 입고 갈 곳이 궁금해지고…. 취향의 발견은 몰랐던 세상을 알게 되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김 교수는 중년 남성들에게 취향 개발은 '적자생존'과 궤를 같이한다고 해석했다. 조직심리학이나 행동심리학 등을 연구하다 보면 중년 남성에게 '취향'은 사회에서 도태되는 걸 늦추고,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시켜주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나온 일본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의 '갈 곳이 없는 남자, 시간이 없는 여자'에서처럼 중년 이후 친구가 하나둘씩 사라져 '관계 고립'에 놓이기 쉬운 이들에게 탈출구이자 스트레스 해방 터가 바로 '취향'이라는 설명이다.
최재붕 교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존에 유리하고 우월하게 여겨지는 문화는 빠르게 복제한다는 점에서 중년 남성에게 취향 탐구는 더욱 중요해진다"며 "휴대폰에 많은 정보를 의존하며 신체의 일부처럼 여기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가 오면서 남들과 공유하며 '좋아요'를 이끌어낼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취향은 곧 직업이다
신동헌(43) 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는 자동차 전문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까남'이라는 필명의 블로거로 활동하면서 쓴 글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업계에서 알아주는 전문가가 됐다. 시승차는 너무 많아 세기 어렵다. 자동차는 15대 정도 바꿨고, 모터사이클은 8번 정도 바꿔가며 소유했다. 대부분 BMW 계열이다.

"BMW모터사이클을 타보니 잰 체 같은 거 안 하고 진지하게 달리기에만 몰두하는 학구파 같았다. 핸들을 돌릴 때의 감각이라든지 엔진 소리라든지 요철을 넘을 때의 감각, 브레이크가 차를 멈추게 하는 스타일까지 완전히 이상형이었다. 여자로 치면 눈 깜빡거림이나 입냄새까지 맘에 드는 타입이다."
원래 홍대 근처에서 활동한 인디밴드 출신이다. 록음악과 20대를 함께했다. 모터사이클에 빠진 건 전적으로 우연이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는 '과시적 욕구'가 생겨나 모터사이클을 '멋'으로 타게 됐다. 엔진이 주는 묘미에 푹 빠진 그는 결국 모터사이클 전문지 기자가 됐다. 파고파고 또 파고들다 자동차 엔진에 눈뜨게 됐다. "자동차가 기계가 아닌, 사람의 몸을 감싸는 일종의 옷으로 보였다."
발견은 곧 배움으로 이어졌다. 그 나라 차를 보다 보니 역사가 궁금해지고, 기질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신씨는 "취향은 학습의 결과이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고 말한다.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고급 식당에 가게 되고, 레스토랑에선 예의라며 재킷을 빌려줬다. 덕분에 옷에 관심도 갖게 됐다. 그의 취향은 또 한 번 전진했고,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눈을 떴다. 남성 매거진 '레옹'의 편집장도 지냈다.
심리·과학 저널리스트인 톰 밴더빌트의 저서 '취향의 발견'에서 말하듯 "취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는 돈이 아니라 교육"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970년대 연구한 취향 보고서인 저서 '구별 짓기(1979)'에서 "실질적 자본보다 문화적 자본이 사람을 구별짓는 더 강력한 변수"라고 한다. 취향은 교육으로 길러지고, 그렇게 탄생한 취향은 강력한 힘이 된다는 얘기다.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학부 이택광 교수는 "지금의 중년들은 '글로벌 세계 시민'이라는 기치 아래 넓어진 대학 문호를 경험하고, 학습이 하나의 문화처럼 존재했다"며 "어느 세대보다 배움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마치 게임 레벨을 높이듯 배움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행복전문가 서은국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정답 같은 인생을 살지 못하면 '행복 시험'에 낙제한 듯 좌절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취향 발견은 이러한 타인 의식 문화에서 빠져나가는 통로가 된다"고 말했다. 알베르 카뮈가 이렇게 당부하지 않았는가.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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