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나이트쿠스, 밤을 잊은 그대에게

구성 및 제작 / 뉴스큐레이션팀 심지우 2017. 9. 4.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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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89년 5월, 서울 송파구에 우리나라 1호 24시간 편의점이 개점했다. 12년 전인 2005년엔 24시간 패스트푸드점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점차 '24시간 사회'로 변했다. 음식점, 헬스장, 카페 등 너 나 할 것 없이 밤을 새운다.

밤에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놀고 소비할 수 있는 깜깜한 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근무의 연장이 됐다. 이렇게 밤을 잊고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엄청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밤도깨비 야시장/서울시 제공

시간을 뛰어넘은 우리나라 국민

한국인은 잠을 적게 잔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른 한국인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OECD 평균 수면 시간인 8시간 22분보다 40분이나 짧다.

한국인은 일도 오래 한다.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한국인의 연평균 근로 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오래 일하는 나라' 2위를 차지했다. 하루 법정 노동시간 8시간 기준으로 OECD 평균보다 38일 더 일한 셈이다.

잠을 자지 않고 주로 밤에 활동하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호모 나이트쿠스(homo nightcus)'라는 신인류도 등장했다. 밤을 뜻하는 '나이트(night)'에 인간을 뜻하는 접미사 'cus'를 붙인 신조어로, 올빼미족과 비슷한 심야형·밤샘형 인간을 뜻한다. 이미 2002년에 국립국어원이 '신조어'로 지정했다.

그들은 낮에는 늦게까지 공부하거나 일하고, 밤에는 여가를 즐긴다. 전문가들은 야근이 많고 자기 관리가 필수적인 것처럼 돼버린 우리나라 분위기가 호모 나이트쿠스를 양성했다고 분석한다. 호모 나이트쿠스의 등장으로 영화관과 미술관, 박물관 등도 야간 개장을 한 지 오래다.

누군가의 밤은 누군가의 노동시간

호모 나이트쿠스의 활동으로 24시간 여가 산업과 밤 문화가 발전했다. 그러나 24시간 소비하는 사람이 있으면 24시간 근로자도 있어야 한다.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야간에 일해야 하는 '심야 근로자'가 생긴 것이다.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숍이 늘었다. /탐앤탐스 제공

커피전문점 탐앤탐스의 경우 서울의 매장 10개 중 4개에 해당하는 곳이 24시간 운영하고 있었다. 또 다른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의 경우 서울 기준 평균 영업 종료 시각은 오후 10시 36분으로, 오후 8시 52분에 문 닫는 프랑스 파리의 스타벅스와 큰 차이를 보였다. 영국 런던은 오후 9시 11분, 독일 베를린은 오후 9시 9분으로 해외와 서울의 차이는 최대 1시간 40분이나 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과로사가 잇따랐던 일본의 도쿄 매장 영업시간이 서울보다 짧았다. 도쿄 전체 매장의 평일 영업을 마치는 평균 시간이 오후 10시 6분으로, 우리나라가 도쿄보다 평균 30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밤중까지 영업하는 생활편의시설의 근로자들은 다른 국가·도시 사람들보다 늦게까지 일하고 충분히 쉬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중 주5일제를 적용받는 사람은 65%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한다.

밤을 잊었더니, 너무 피곤하다

평균 노동 시간이 긴 우리나라에서 '호모 나이트쿠스'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그렇지만 쉬지 않고 돌아가는 24시간 체제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일하는' 악순환은 피로감을 불러왔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은 끝없는 노동의 굴레에서 편하지가 않다.

'수면 빚더미' 한국

/그래픽=이은경

미국 수면 의학자 윌리엄 디멘트는 저서 '수면의 약속'에서 "수면이 계속 부족하면, 금전적인 빚이 쌓이듯 나중에 잠을 자야 할 시간도 쌓인다"며 '수면 빚(sleep debt)'에 대해 설명했다. "수면 빚이 쌓이면 집중력 저하와 의사 결정 지연, 무관심, 동기 상실 같은 문제가 생긴다"며 쌓인 수면 빚을 제때 '숙면'으로 갚아줘야 한다고 했다.

'수면 빚' 개념에 따르자면 한국은 빚더미에 오른 나라다. 지난해 OECD 18개 회원국 중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것은 물론이고, 2014년 한국인 평균 수면 시간(7시간 49분)보다 오히려 8분 짧아졌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 수면 장애 등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도 2015년 46만2848명으로 5년 전보다 60%나 늘었다.

의료 전문가들은 여가든 근로든 밤늦게 깨어 있기를 계속하면 건강을 해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홍일희 서울수면의원 원장은 "밤낮이 뒤바뀐 생활이 이어지면 만성피로에 시달리기 쉽다"면서 "성격이 날카로워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며 고혈압과 부정맥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정해진 시각에 잠자리에 들고 수면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4월 뉴욕타임스는 "잠이 상류층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 생기는 부작용이 과학적으로 입증되기 시작하며 잠을 잘 자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밤이 좋아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밤잠을 줄여가며 일하고 소비하는 모습은 어쩐지 안쓰럽다. 릴랙스 음료의 인기, 직장인들의 '낮잠 카페' 등 최근 활발한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우리의 피로를 증명한다. 호모 나이트쿠스는 노동에 지쳐 '저녁 없는 삶'이 낳은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즐기고 싶은 저녁이 '밤'이 되었을 뿐.

늦게 퇴근한 사람이 24시간 상점을 이용하고, 24시간 상점은 야간 근무자를 찾는다. 일은 많이 하고 잠은 적게 자는 '24시간' 노동의 굴레를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퇴근 후 저녁에 여가를 즐기고 밤에는 잠을 자는 삶은 불가능한 얘기인지, 피로에 찌든 사회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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