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과 종합격투기 최고 스타 간의 대결로 역사에 남을 메이웨더 VS 맥그리거 전이 끝난 후, 둘은 서로를 한껏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경기 전 월드 투어에서 랩배틀을 벌이듯 트래쉬 토크를 주고받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 둘도 없는 친구같이 보이네요. 추정치긴 하지만 메이웨더는 3천억 이상, 맥그리거는 천억 이상의 거액을 벌게 된 데다 PPV 판매량도 메이웨더-파키아오 전의 기록을 뛰어넘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둘 중 크게 다친 사람도 없으니 서로를 미워할 이유가 없겠죠.

그러나 맥그리거는 이번 경기에서 복서로서 뿐 만 아니라 종합격투가로서도 발목을 잡힐 수 있는 근본적인 약점들을 드러냈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얘기한 대로 맥그리거는 이제 UFC로 돌아와 도전자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토니 퍼거슨이나 케빈 리,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등 그를 오랫동안 기다려온 굶주린 맹수들이 지금부터 설명할 부분들을 경기에서 집요하게 파고들 게 분명합니다. 메이웨더 전에서 맥그리거가 드러낸 약점들을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1. 부족한 지구력
메이웨더 전에서 맥그리거는 4라운드부터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후반엔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근근이 버티기에 급급했습니다. 일류 격투가들은 파워든 스피드든 각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영역이 있는데, 확실히 맥그리거는 펀치 파워나 타격 감각이 일품이지만 프랭키 에드가나 케인 벨라스케즈처럼 지구력이 뛰어난 타입은 아닙니다.
거기다 맥그리거가 좋아하는 싸움의 흐름은 밀물과 썰물처럼 본인이 안전한 거리에서 밀고 들어가며 폭격을 퍼붓다 상대가 반격하면 일단 후퇴한 후 다시 들어가는 건데, 이번에 메이웨더가 그랬듯 상대가 그 리듬을 깨고 들어와 난전을 벌이기 시작하면 흐름이 꼬이며 이미 꺼지기 시작한 체력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됩니다.
2. 중간 거리 펀치 공방에서의 약점
맥그리거의 복싱이 일견 좋은 것 같지만, 그가 펀치를 활용하는 방식은 복서보다는 킥복서에 가깝다고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킥과 펀치를 섞어 활용하는 킥복서들 중에서도 훅이나 어퍼컷을 서로 주고받는 중간 거리 펀치 공방에서 강점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지만, 맥그리거는 절대 아니라는 게 이번 메이웨더 전에서 드러났습니다. 넓은 옥타곤 안에서야 뒤로 몇 발짝 빠지면 그런 공방을 피할 수 있지만, 좁은 사각 링에서 복싱의 달인 메이웨더의 압박을 만나니 그게 통하지 않았고, 결국 UFC 옥타곤에서 어느 정도만 드러났던 이 문제점이 그 민낯을 보이다시피 한 겁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바 있는 복싱과 종합격투기 펀칭의 차이로 잠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체육관에서는 일단 발을 붙여 스탠스를 제대로 잡은 상태에서 뒤꿈치를 틀어 치는 복싱의 펀치를 기본으로 일단 가르친 후, 어느 정도 연습 기간을 거친 다음 회원이 종합격투기에 흥미를 보이면 그 차이에 대해 설명한 후 종합격투기 식 펀칭을 가르칩니다. 후자를 설명할 때 제가 예로 드는 게 야구에서 투수가 공을 던지는 방식입니다.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해 안정된 스탠스와 좁은 폼에서 펀치를 치는 복싱과 달리 원거리에서 호쾌한 한 방을 찔러 넣을 줄 알아야 하는 종합격투기의 펀칭은 그 원리에서 큰 와인드업 후 앞발을 멀리 딛고 공을 뿌린 다음 뒷발이 저절로 따라오는 야구의 피칭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주니어 도스 산토스나 로이 넬슨, 척 리델 등이 잘 쓰는 오버핸드 라이트 기술은 외형상 거의 똑같죠.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이런 방식의 펀칭을 구사하던 사람이 복싱에도 있습니다. 바로 마이크 타이슨이죠. 인파이터 선배인 조 프레이저가 끊임없는 위빙, 더킹 등으로 상대 펀치를 흘려내며 전진해 일단 거리를 좁힌 후 폭탄을 퍼붓는 스타일이었다면, 프레이저에 비해 스피드가 훨씬 빨랐던 타이슨은 장신 상대와의 먼 거리를 한 번에 쭉 좁히며 공격하는 게 가능했기에 종합격투기 펀칭과 유사한 장면을 늘 만들어 냈습니다. 타이슨은 커스 다마토와 복싱의 기반을 다지던 때를 회상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발을 대각선 11자로 놓고 몸을 옆으로 튼 기본 복싱 자세를 배우는 데, 난 늘 발과 몸을 정면으로 놓고 다리를 좀 더 넓게 벌리고 웅크린 자세로 복싱을 배운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었다.”고 말합니다. 마이크 타이슨에게 최적화된 가르침을 주었던 커스 다마토의 천재성 뿐 만 아니라, 원거리를 한 번에 좁혀야 하는 종합격투기 펀칭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게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거리를 좁힌 후 중거리 펀치 공방에서 더욱 무서운 모습을 보여줬던 타이슨과 달리, 맥그리거는 거기서 펀치에 파워를 제대로 싣는 것 자체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원래 이 거리에서는 자세를 낮추고 상대와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며 공격과 방어를 넘나들어야 하는데, 맥그리거는 일명 ‘고양이 펀치’로 툭툭 건드리기만 하며 상대 전진을 막으려는 모습 뿐 이었습니다. 저도 맥그리거의 UFC 경기를 여러 차례 해설했지만 이 거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만 생각했을 뿐, 거기서 그렇게 펀치를 못 칠 줄은 몰랐습니다. 이번 메이웨더 전으로 맥그리거가 원거리에서 밀고 들어가는 펀칭은 좋지만, 그 안쪽 거리에서 밀고 들어오는 상대에게 날려야 하는 펀치가 굉장히 부실하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난 겁니다.

맥그리거는 이 거리의 싸움에서 꼭 필요한 탄탄한 커버링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원래 원거리를 좋아하는 선수들은 커버링이 그리 좋지 않고 압박형 인파이터들은 커버링이 좋은 법인데, 맥그리거는 상대 타격을 피하는 센스가 좋긴 하지만 안전거리가 뚫리면 커버링이 약해 위험한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UFC 유망주 최두호 선수가 컵 스완슨 전을 치렀을 때, 킥커로 유명한 스티븐 톰슨이 타이론 우들리와 경기를 했을 때 비슷한 장면이 나온 바 있습니다. 물론 맥그리거의 맷집이 좋긴 하지만,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게 격투기의 오랜 진리라는 걸 잊으면 안 되겠죠.
3. 빈약한 레슬링 손싸움
이번 경기에서 맥그리거가 메이웨더의 백을 잡는 장면이 몇 차례 나왔는데, 그때마다 현지 중계진은 메이웨더가 왜 등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목청을 높였고 몇몇 동료 복서들도 경기 후 여기에 대해 의아함을 표시했습니다. 이는 레슬링 혹은 종합격투기의 기본 몸싸움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맥그리거가 오른쪽 각을 잡아 돌아서 백을 잡은 것이지 메이웨더가 등을 돌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메이웨더의 대처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맥그리거가 뒤로 돌아간 상태에서 무리하게 정면으로 서려 했다면 맥그리거의 후속타가 잔뜩 날아왔을 건데, 등을 돌리고 커버링만 바싹 올린 후 심판의 스톱 사인을 기다렸기에 맥그리거는 복싱 룰 안에서 크게 할 만한 게 없었죠.

하지만 이 장면들 외에는 맥그리거가 경기 중 클린치에서 메이웨더를 괴롭히는 모습을 특별히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영리한 메이웨더가 평소에 비해 종합격투가인 맥그리거와 클린치 싸움을 정면으로 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이번 경기를 해설하며 또 하나 확실히 느낀 건 맥그리거는 생각보다 레슬링의 손싸움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레슬링의 손싸움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팔힘으로 잡아놓는 건 같지만 오히려 손 그립에는 큰 힘을 주지 않습니다. 어차피 똑같은 사람끼리 싸우는 것이기에 아무리 세게 잡아도 결국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팔에 쓸데없이 힘을 주면 체력만 빠지죠. 그래서 손싸움에서는 팔에 힘을 주지 않고 몸을 얹어 밀고 끌고 하며 쉴 새 없이 상대를 괴롭히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런 손싸움에 능한 사람들은 당연히 레슬러들인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레슬러들인 김현우 선수나 류한수 선수의 경기를 찾아보시면 대번에 이해하실 수 있고, UFC에서는 케인 벨라스케즈나 존 존스, 다니엘 코미어 등 레슬러 출신의 압박형 선수들이 잘합니다. 하지만 맥그리거는 손싸움에서 몸을 잘 얹지 못합니다. 손이나 팔은 움직이지만 몸이 따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개념은 TV를 보시는 일반 팬 분들에게 펀치나 킥처럼 명확히 보이진 않지만 굉장히 중요합니다. 맥그리거는 겨드랑이를 파 잡아놓거나 팔을 빼 빠져나가려 할 뿐 클린치 상황에서 몸을 실어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몸싸움에는 능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팔이 쉽게 지쳐 굳어버리게 되고, 자연히 펀치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맥그리거 뿐만 아니라 UFC의 스피디한 타격가들은 대부분 이런 스타일입니다. 클린치에서 상대를 괴롭히려 하는 게 아니라 틈을 봐서 빠져나오는 게 최우선이죠. 맥그리거에게 지기 전까지 페더급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조제 알도 또한 비슷합니다.
하지만 타격가가 이런 클린치 몸싸움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상대방을 자유롭게 밀고 당길 수 되면 진정한 난공불락의 강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태국의 낙무아이들이 외국인 선수들과 싸우는 걸 보시면 가장 이해가 빠릅니다. 손싸움 및 몸싸움에서의 우위를 앞세워 저벅저벅 밀고 들어가 상대를 마음대로 유린하며 집어 던지거나 팔꿈치 혹은 무릎으로 두들겨 패는 모습은 정말 압도적이죠.
위 영상은 무에타이 선수 출신의 복싱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의 경기 모습입니다. 47승(41KO) 1패라는 완벽에 가까운 전적에, 한국 선수를 열 세 명이나 이겨 국내 복싱 올드팬들에게도 악명을 떨쳤고, 결국 챔피언인 채로 은퇴해 현재까지도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는 인물입니다.(쌍둥이 형인 카오코도 똑같이 복싱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저는 이번 경기에서 맥그리거가 카오사이의 경기를 많이 참고하지 않을까 생각했었습니다. 풋워크와 눈이 좋고 펀치력이 강한데다 클린치에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카오사이의 경기 영상을 보시면 머리를 많이 움직이지 않고 풋워크와 커버링을 잘 쓰다가 밀고 들어갈 때나 접근전에서 본인의 손을 안쪽으로 집어넣어 상대 팔을 교묘히 컨트롤하며 공격을 맞춰 나갑니다. 저 팔 컨트롤이 카오사이 갤럭시가 다른 복서들을 괴롭혔던 악명 높은 리듬의 주 원인이자 무에타이의 정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손싸움을 하려면 기술도 기술이지만 결국 근접전에서 손싸움을 하면서 상대방 엘보우나 펀치에 얼굴을 맞는 걸 불사하는 터프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맥그리거의 손싸움은 카오사이처럼 공방 중 맞더라도 결국 때리려는 손싸움이 아니라, 원거리에서 펀치를 날린 후 상대 반격을 맞지 않고 붙은 다음 떨어지려는 손싸움입니다. 요컨대, 맥그리거는 생각보다 굉장히 깔끔하게 싸우려는 스타일인 거죠.

정리해 보면, 맥그리거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아주 좋은 스타일이 아니고 중간 거리에서의 펀치 공방에 약점이 있으며 근접전에서의 레슬링도 초일류급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맥그리거를 이기는 답은? 계속 밀고 들어가 맥그리거에게 페이스를 조절할 여유를 주지 않고 계속 뒤로 밀며 싸우는 겁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마이크 타이슨이 뒤로 밀리면 답이 없다는 약점을 드러낸 후 급격히 무너졌던 대표적인 예입니다. ‘도쿄 반란’이라 불렸던 제임스 더글라스 전 패배 때도 그랬지만, 이밴더 홀리필드와의 두 차례 경기를 통해 타이슨의 이 약점은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전사의 심장을 가진 홀리필드가 타이슨의 펀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맞불을 놓은 후 클린치에서 계속 밀어붙이자 타이슨의 ‘무적 아우라’가 거짓말처럼 걷히기 시작한 거죠. 그전까지 수많은 선수들은 타이슨의 펀치를 두려워해 일단 거리를 두고 아웃복싱을 하려 했고, 스피드와 파워가 좋은 타이슨은 그들을 추격하며 마음 놓고 두들겨 팼습니다. 하지만 홀리필드가 해법을 제시한 후 상대들은 마치 수학 공식에 숫자 대입하듯 똑같이 이 전술을 사용했고, 타이슨은 그후 자신을 뒤로 밀어붙이는 터프한 상대에게 전혀 승리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맥그리거와 기본 스타일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미르코 크로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라이드 링에서 그를 만난 상대들은 무시무시한 왼발 킥이 두려워 그 반대쪽으로 돌며 거리를 벌리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는 똑같은 쪽으로 돌되 크로캅 쪽으로 계속 붙으며 싸움을 걸었고, 크로캅은 허둥지둥 뒤로 밀리며 속수무책으로 당했죠. 이후 효도르의 전진 전략은 당연히 크로캅을 상대하는 데 있어 주요 공식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UFC 옥타곤에서 맥그리거에게 가장 큰 시련을 안겨주었던 사람은 네이트 디아즈였습니다. 맥그리거보다 키도 크고 팔도 긴데다 맷집도 좋아서 맥그리거가 본인이 좋아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치열한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만날 상대들은 디아즈보다 더 터프하게 밀고 들어올 겁니다. 타이슨의 핵주먹을 겁내 쭈뼛쭈뼛거리던 오래 전 상대들과는 달리 ‘그래, 타이슨도 사람이야. 가드만 굳게 올리고 계속 밀고 들어가면 결국 지치게 되어 있어!’란 확신을 갖고 밀어붙였던 홀리필드 전 이후 상대들처럼 앞으로 맥그리거에게도 더욱 거센 도전이 밀려올 겁니다.
마지막으로 맥그리거의 이 약점에 대한 보완책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면
1. 레슬링 손싸움을 강화해 무에타이식 엘보우 및 니킥과 결합해 상대방의 전진을 막는 방법. 존 존스가 굉장히 잘하는 방식입니다.
2. 풋워크를 좀더 살리고 스탠스 스위치 및 킥을 보강해 옥타곤을 더 넓게 쓰며 싸우는 방법. 스티븐 톰슨이 대표적인 예죠.
3. 상대방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 카운터 타이밍 태클을 성공시킨 후 그라운드에 잡아놓고 괴롭히는 방법. 조르쥬 생 피에르가 대표적인 예지만, 이는 레슬링과 주짓수를 동시에 업그레이드해야 하기에 타격가인 맥그리거가 주 스타일로 차용하기엔 가장 비현실적인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도가 되겠네요.
어쨌든 세기의 대결 메이맥 전은 끝났고, 맥그리거는 이제까지 설명한 약점을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 도전자들을 생각하며 이미 보완 훈련을 시작했을 겁니다. 더욱 큰 스타가 되어 UFC 옥타곤에 돌아오게 된 맥그리거의 경기가 벌써부터 기다려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