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온가족 잃은 아이의 끝나지 않은 슬픔

김호 입력 2017. 8. 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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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오빠 숨진 다섯 살배기, 현재 초등학교 2학년
주변 아이들 "너희 엄마, 아빠 모두 돌아신거야? 질문
결국 2차례 전학 후 이름까지 바꿔가며 학교 생활
세월호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에 놓인 미수습자들의 사진.권재근씨와 권혁규 군을 포함해 5명이 아직까지 미수습 상태다. [중앙포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304명의 희생자와 생존자, 남은 가족들의 사연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고등학생 자녀를 잃은 부모, 일하러 가기 위해 배를 탔던 부모를 영원히 떠나보낸 자녀 등의 사연이다.

여러 사연 가운데 특히 온 국민의 코끝을 찡하게 한 사연이 있었다. 세월호에서 영문도 모른 채 모든 가족을 잃고 배가 침몰하기 전 가까스로 구조된 당시 다섯 살배기 권모(현재 8세)양의 이야기다.

사고가 난 지 3년 4개월이 흘렀지만, 시신으로나마 권양의 품으로 돌아온 가족은 엄마가 유일하다. 권양 엄마(당시 29세)의 시신은 사고 일주일 만에 세월호 선내에서 발견됐다.
전남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중앙포토]
그러나 아빠 권재근(당시 53세)씨와 오빠 혁규(당시 7세)군은 아직 미수습 상태다. 동생과 조카를 찾지 못해 전남 진도 팽목항 임시숙소에서 머물던 권양의 큰아버지 권오복(62)씨가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신항 숙소에서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권양은 사고 2년 만인 지난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트라우마 치료와 주변의 보살핌으로 점점 세월호 사고의 상처가 아물어갈 무렵이다.

권양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랐던 친척들의 기대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학교 아이들이 “너희 엄마, 아빠 모두 돌아가신 거야?”라며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다. 철없는 아이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툭 던지는 질문을 교사들도 막을 순 없었다.

권양은 결국 학교를 옮겨야 했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다른 또래들처럼 평범한 학교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기대는 또 한번 어긋났다. 같은 상황이 되풀이 됐다.
세월호 미수습자인 동생 권재근씨와 조카 혁규군을 기다리는 권오복씨가 지난 29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오다슬 인턴기자
권양은 또 다시 전학을 갔다. 현재 2학년인 권양은 이름까지 바꿨다고 한다. 사고 직후부터 자신을 돌봐주는 막내고모(54)를 엄마처럼 따르며 지낸다. 사고 이후 “엄마랑 아빠가 오빠만 데리고 제주도에 이사를 가버렸어”라며 울었던 권양은 이제 조금씩 학교 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고 한다.

권양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인 상태라고 한다. 법원은 권양에게 지급된 보상금과 성금ㆍ보험금 등 15억원을 만 30세가 될 때까지 은행에 신탁하라고 결정했다. 만 25세가 되면 재산의 절반을 지급받고, 만 30세 때 나머지 재산을 모두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직 어린 권양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친척들은 권양의 상처가 아물도록 평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성인도 아닌 초등학교 1, 2학년 또래의 철없는 호기심과 관심을 막을 수 있는 뾰족한 방법도 없어 걱정하고 있다.

세월호가 거치된 목포 신항에서 지난 29일 만난 권양의 큰아버지 권오복씨는 "조카가 현재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 힘겹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며 “어른들은 조카가 누구인지 알 수밖에 없지만, 주변 아이들은 과도한 관심을 갖지 않도록 부모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목포=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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