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본 세상]<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식사 방식>-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누군가를 떠올린다

2017. 8.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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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을 너에게도 먹고해 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사랑의 감정이다. 식사를 마치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면 내일도 행복할 것이다.

대학원생 시절, 작은 낙이 하나 있었다. 만화책 <슬램덩크>를 꺼내 읽는다든가, 휴대전화 야구 게임을 한다든가 하는 것들이 있었지만, TV로 <짱구는 못말려>를 보는 게 가장 좋았다. 민망해서 어디에 이야기한 일도 별로 없지만, 학과사무실이나 연구실에서 집에 돌아와 짱구를 보면서 지친 하루를 위로 받았다.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웃고 또 가끔은 울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평온했던 한순간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짱구는 못말려>의 스핀오프 작품

<짱구는 못말려>에서 중심이 되는 캐릭터는 물론 주인공인 짱구지만, 그 가족들 역시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짱구 아빠 신형만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이다. 그가 회사에서 분투하는 모습은 에피소드의 중심 소재로 자주 다루어진다. 영업을 마치고 퇴근한 그가 신발을 벗으면 짱구가 다가와 냄새를 맡고는 기절하곤 한다. 그 지독한 발냄새는 그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고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는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짱구 엄마 봉미선은 전형적인 주부다. 신형만에게 발냄새 나는 신발이 있다면, 그에게는 언제나 충전시켜두어야 하는 전기자전거가 있다. 아침마다 때맞춰 짱구를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버스를 먼저 보내고 나면 짱아를 업고 짱구는 보조석에 태우고 전기자전거에 올라탄다. 나에게 봉미선은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그런 모습으로 기억된다. 회사와 가정에서 각각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두 사람은 일하는 아빠, 가정을 돌보는 엄마, 이처럼 전통적 가족 이데올로기의 표상이다. 그것이 2017년에도 여전히 권장될 만한 것이냐 하는 논란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짱구 가족의 일상이 무척 부러웠다. 어찌 되었든 최선을 다할 자신의 자리가 있는 삶인 것이다. 10년 전의 나는 누군가를 책임지거나 평범한 가정을 꾸릴 만한 자신이 없었다.

한국어판으로 발매될 예정인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식사 방식」의 1권 표지. / AK 커뮤니케이션즈
얼마 전 <짱구는 못말려>의 스핀오프 작품인 <노하라 히로시의 점심식사 방식>이 나왔다. 영업직 샐러리맨인 신형만(노하라 히로시)이 바쁜 일상 속에서 챙겨 먹는 한 끼 식사의 풍경을 담아낸다. 스핀오프는 기존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을 그대로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스핀오프 <중간관리록 토네가와>라는 작품도 요즘 인기를 끈다. 그런데 ‘짱구 아빠 신형만’과 ‘토네가와’는 스핀오프 작품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캐릭터를 끌어오는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우선 토네가와의 경우 캐릭터의 의외성을 살리는 데 중점을 두었다. (한국어판에서는 이름이 리네카와로 잘못 번역되었다.) 원작에서의 토네가와는 대단히 침착하고 악랄한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스핀오프작에서는 그가 중간관리직으로서 어떠한 고충을 떠안고 있는지, 그 와중에 얼마나 약하고 평균 이하의 모습을 보이는지 하는 것을 유쾌하게 드러낸다. 그 이면의 모습이 독자들에게 큰 웃음을 준다. 반면 ‘짱구 아빠’는 <짱구는 못말려>에서 보인 전형적 모습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작품을 보면서 ‘아, 짱구 아빠는 참 점심도 짱구 아빠처럼 먹는구나’ 싶다.

신형만은 원작에서 가정에 충실한 가장으로 그려지지만, ‘저 사람 참 멋있는 아빠/남편이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이면 예쁜 여자들 앞에서 정신줄을 놓다가 봉미선에게 혼쭐이 난다. 스핀오프작에서도 그 모습이 그대로 반영된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충실한 가장

6화 ‘드라이 카레의 방식’에서는 신형만이 오래된 식당에서 드라이 카레를 먹으며 옛사랑을 추억하는 장면이 나온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우울해진 그에게 ‘오늘 밤은 전골이야. 폰즈가 다 떨어졌으니까 돌아오는 길에 사와줘’라는 아내의 문자가 온다. 그러자 그는 ‘맞아, 지금 내게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잖아. 오후에도 열심히 일해보자’ 하고 힘을 낸다. ‘OK! 잊지 않고 사갈게, 사랑해’ 하는 답장도 잊지 않는다. 7화 ‘팬케이크의 방식’에서는 직장 후배의 권유로 생크림이 가득한 팬케이크를 힘겹게 먹는다. 그러나 의외로 배도 부르고 괜찮다고 느낀 그는 ‘다음엔 가족끼리 오도록 하자! 분명 모두가 기뻐할 거야’라며 회사로 돌아간다. 16화 ‘산마멘의 방식’에서는 요코하마에 출장을 가서 남들이 모두 먹고 있는 산마멘이라는 음식에 도전하게 된다. 이게 바로 요코하마의 맛인가 하며 기쁘게 배를 채운 그는 ‘어쩌다가 만난 산마멘이지만 처음 먹게 된 나한테도 추억으로 남게 되었는걸, 하지만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러 오고 싶어, 주말에 말을 꺼내볼까’ 하고 생각하며 식당을 나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을 먼저 떠올리는 신형만의 모습은 원작의 충실한 가장 이미지와 겹쳐지며 보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가 왜 짱구의 아빠인지, 우리는 곧 확인하게 된다.

2화 ‘카레의 방식’에서는 스마트폰으로 카레 맛집을 찾은 그가 카레의 매운 정도를 두고 고민하는 모습이 나온다. 매운 카레를 먹고 싶으니 마일드는 아니고, 너무 매워서 맛을 못 알아보게 된다면 본전도 못 거두게 될 것이니 베리핫도 아니고, 원조 카레의 맛을 확실히 느끼면서 매운 맛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세미핫 메뉴를 선택한다. 이처럼 점심 메뉴를 위해 오래 고민하는 모습은 애틋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때 옆 테이블에 앉은 여성들이 “역시 남자는 굉장히 매운 카레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한 얼굴로 먹었으면 해” 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듣는다. 그는 메뉴를 묻는 식당 주인에게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베리 핫으로!!” 하고 답한다. 생각보다 훨씬 매운 카레맛에 당황한 그는 물에 시럽을 타서 계속 마시면서 고통스럽게 그릇을 비워낸다. 그러고는 여성들을 향해 ‘어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그들은 애초에 신형만에게는 관심이 없다. 그밖에도 떨어진 포크를 줍다가 여종업원에게 오해를 받거나, 목에 걸린 고등어의 가시를 밥을 먹는 것으로 넘기다가 반찬만 남게 되었다거나, 자신보다 비싼 메뉴를 고른 부하직원에게 설교를 고민한다거나, 하는 짱구 아빠다운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가족을,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우리가 아는 짱구 아빠다. 그는 아들에게 “짱구야, 아빠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건 너와 짱아가 태어났을 때란다”라고 말할 줄 아는 인간이다. 그밖에도 ‘짱구 아빠 명언’이라고 검색하면 눈물을 핑 돌게 하는 그의 말들이 이미 잘 정리되어 있다. 물론 “똥 먹는데 카레 이야기 하지 마!” 같은 대사가 섞여 있어서, 다시 웃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짱구 아빠처럼 든든한 가장 역할을 해낼 자신이 별로 없다. 짱구와 짱아만한 두 아이만 덜컥 생겨버렸다. 어제보다 더 짱구를 닮아가는 아이를 보며 매일 당황스럽다. 다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10년 전, 대학 연구소의 조교로 일할 때도 그랬다. 교수들의 식사 자리에 따라가 영수증 처리를 하면서 음식이 맛있었다면 기억해 두었다가 꼭 누군가와 다시 찾았다. 내가 먹은 맛있는 음식을 너에게도 먹게 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사랑의 감정이다.

내일 점심에는 무엇을 먹게 될지 잘 모르겠다. 편의점 도시락이 될 수도, 좋아하는 쌀국수집에 가게 될 수도, 망원시장에서 도너츠 1000원어치를 사먹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의 형편에 맞추어 최선의 점심식사를 하고 싶다. 식사를 마치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면 내일도 행복할 것이다.

<김민섭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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