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일본 축구의 전설.. 그라운드 밖 '멀티 플레이어'가 되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17. 8. 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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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문화, 그리고 패션.. 은퇴 후 11년 그가 꽂힌 것들
내 삶의 키워드는 '열정'
모든 것이었던 축구에 어느 순간 열정 사라져 29세 이른 나이에 은퇴
사케를 알리다
7년간 일본 둘러보며 匠人들 모습에 감탄
사케 등 그들의 작품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패션을 이끌다
화보·광고 모델로 활동.. 英잡지 명예 에디터로 편집장과 의견도 나눠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40)가 2006년 7월 3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를 발표하자 세상은 놀랐다. 일본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가장 성공한 아시아 축구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그의 당시 나이는 29세. 축구선수로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그가 은퇴하리라곤 누구도 예상 못 했다. 그는 "축구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인생에는 많은 길이 있다"면서 그라운드를 떠났다. 그랬던 그가 축구공 대신 사케(일본 청주)를 들고 나타났다. 자신이 만든 사케를 소개하기 위해 지난달 방한한 그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만났다.

사케를 알리기 위해 방한했지만 나카타 히데토시는 카메라 앞에서 “내가 개발한 사케를 들고 촬영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일본 사케를 해외에 알리려는 것이지 나의 사케를 홍보하려는 게 아니다”는 이유였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축구밖에 몰랐던 삶, 축구 관두고 장인(匠人)을 만나다

―전성기에 돌연 축구를 그만둔 이유가 뭐였나.

"축구는 내게 형제나 마찬가지다. 어려서부터 축구와 같이 살았고 성장했다. 축구는 내게 열정이다. 프로 선수가 된 것도 돈이 아닌 열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더 이상 내 안에 없었다. 즐기지 않으면서 축구를 하기는 싫었다. 돈 때문에 축구 하는 건 가족을 파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축구가 아닌 다른 인생의 길을 찾기 위해 무엇을 했나?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어떤 일을 축구와 같은 열정으로 할 수 있을지 찾고 싶었다. 그런데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나를 알아보더라. 외국 사람들이 나를 만나면 가장 먼저 축구에 대해 물었다. 그다음으로는 일본 그리고 일본의 문화에 대해 궁금해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게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만 한 데다 21세 때 일본을 떠났다. 일본 문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갔다.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일본 47개 현을 일일이 방문했다. 7년 걸렸다."

―여행에서 축구만큼 열정을 쏟을 만한 대상을 찾았나.

"장인들이었다. 지역 특산물, 도자기, 공예품, 사케 등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이들과 일하고 싶었다. 이들의 작품을 세계에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개인 홈페이지에 'Revalue Nippon(일본의 재평가)'이란 섹션을 만들었나.

"지방 장인들의 문제는 프로모션(홍보)이다. 마케팅, 브랜딩을 내가 해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내가 장인들보다는 바깥세상과의 커넥션이 더 많으니, 내가 이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다리가 돼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케뿐 아니라 여러 공예품을 두루 알릴 계획이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아시아 모든 나라 장인들의 작품에 관심이 있다."

나카타가 만든 ‘N준마이다이긴조’. 나카타는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 중간쯤 되는 맛의 사케를 만들고자 했다”고 했다./Japan Craft Sake Company

―좋은 사케를 알리기만 하면 될 일이지, 직접 자신의 브랜드까지 만든 이유는 뭔가.

"우선 사케를 알리기로 한 이유부터. 40여 년 전 일본에는 사케 양조장이 3500여 개 있었다. 지금은 1300여 개에 불과하다. 일본 사람들이 사케를 이전보다 덜 마신다. 해외에서 일식이 인기를 끌면서 일식당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일식전문점에는 사케가 반드시 있다. 그래서 사케를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당신의 사케 브랜드를 만든 이유는.

"사케는 상당히 알려졌지만 각각의 사케 브랜드는 잘 모른다. 생산국은 물론이고 생산 지역, 포도 품종, 브랜드까지 널리 알려진 와인과 비교가 안 된다. 우선 (나의 인지도를 이용해) 브랜드를 만들어 사케 자체를 알리자고 했다. 브랜드 하나를 기억하면, 다른 브랜드도 찾을 거란 걸 노렸다. 사케의 해외시장을 창출하고 확대하기 위해 만들었지 돈을 벌려는 건 아니다. 일본 내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나카타가 만든 사케의 이름은 'N준마이다이긴조'. 일본 최고급 사케 '주욘다이(十四代)'를 생산하는 다카기주조 양조장에 의뢰해 제조했다. 가늘고 긴 술병은 일본의 세계적 산업 디자이너 넨도(Nendo)가 디자인했다. 짙은 검정 유리 재질로 자외선으로부터 사케를 보호한다. 한국에서는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 등 고급 외식업장에서 판매한다. 병당 소비자가격은 187만원이다.

사케 전도사, 잡지 명예 에디터… 그라운드 밖 멀티 플레이어가 되다

나카타는 '일본의 베컴'이라 불리기도 한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이 같은 데다 세계적 패셔니스타란 공통점도 있다. 남성 월간지 GQ 미국판의 12페이지 패션화보(2007년 7월호)를 비롯해 일본·미국·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 남성지 커버 모델은 물론, 미국 패션 브랜드 캘빈클라인 속옷 광고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영국의 유명 라이프 스타일 잡지 '모노클(Monocle)' 명예 에디터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트렌드 리더란 얘기다.

2015년 나카타와 이탈리아 주얼리 브랜드 다미아니가 협업해 만든 제품의 서울 론칭 행사에 참석한 모습

―언제부터 패션에 관심 가졌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옷에 신경 안 썼다. 돈도 없었지만 축구 하느라 멋 부릴 시간도 없었다. 프로가 되고 돈도 약간 벌고 외출도 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가졌다. 큰 변화는 이탈리아에서 왔다. 패션뿐 아니라 음식, 와인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됐다."

―패션이 왜 좋나.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아름다운 옷부터 건축물, 음식, 자동차, 여성까지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겉과 속 모두 아름다워야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음식은 보기 좋을 뿐 아니라 맛도 좋아야 한다. 사람은 태도나 말, 걷는 자세 등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

―모노클 명예 에디터는 어떻게 하게 됐나.

"모노클 편집장 타일러 브륄레(Brulee)와 절친인 인연 덕분에 맡게 됐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나눌 뿐이다."

나카타는 은퇴 발표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했을 정도로 팬들과 직접 소통하길 즐겼다. 하루 평균 300만명, 최고 기록 무려 1500만명이 그의 홈페이지를 찾았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요즘은 홈페이지에 개인 소식을 올리지 않던데.

"홈페이지를 시작한 계기는 나에 대한 언론의 오보와 왜곡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너희 미디어와는 말하지 않겠다, 내가 직접 말하겠다'는 생각에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당시 개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별로 없었다. 요즘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누구나 미디어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정보의 양(量)이 부족했다면, 지금은 정보의 질(質)이 문제다. 너무나 많은 정보, 가짜 뉴스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그래서 더 이상 홈페이지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지 않는다. 이메일도 쓰지 않는다. 인터뷰를 하되 많이는 안 한다. 믿을 만한 매체 몇 곳 하고만 한다."

2000년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축구 교환경기에서 나카타와 김도근이 공중볼을 따내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조선일보 DB

―축구에 이어 사케의 길을 걷고 있다. 당신 인생의 다음 여정은 어디가 될까.

"열정이 있을 땐 '다음'은 생각 안 한다. 이 일이 너무나 재미있다. 내 모든 에너지를 지금 여기에 쏟아붓고 있다."

나카타 히데토시(中田英壽)

1977 일본 야마나시현 고후시 출생

1995 벨마레 히라쓰카(現 쇼난 벨마레)에서 J리그 데뷔

1997 일본 국가대표팀 데뷔,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선수

1998 이탈리아 세리에A AC페루자 이적

2000 AS로마 이적

2001 파르마FC 이적

2002 한일 월드컵 일본 국가대표

2005 영국 프리미어리그 볼턴 임대

2006 은퇴 선언

2009 FIFA 홍보대사, 자선재단 테이크액션 설립

2014 스페셜올림픽 글로벌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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