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의 노다지, 덕흥리고분
[고구려사 명장면-26] 1976년 12월 8일, 북한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동(옛 지명: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 무학산 서편 옥녀봉의 남쪽 자락. 향금산이라고 불리는 구릉에서 관개수로 공사 중 고구려 시대 벽화고분 1기가 발견되었다. 한겨울임에도 발굴단은 부랴부랴 12월 16일부터 이듬해 1월 20일까지 한 달여 동안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그 성과는 놀라웠다.
사실 벽화만으로도 고구려 벽화고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도 풍성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어떤 고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풍부한 묵서가 무덤 벽면 곳곳 56군데에 쓰여 있었다. 묵서 글자만도 600여 자. 게다가 무덤 주인의 묘지명도 있었다.
생각해보라.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 벽화고분 120여 기 중에서 무덤 주인을 알려주는 묘지명이 쓰여 있는 고분이 몇 기나 되는지? 여기서도 집중적으로 다룬 바 있는 안악3호분(무덤주인공이 고구려왕인가, 동수인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지만), 그리고 모두루고분(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딱 2기뿐이다. 범위를 삼국 전체로 넓혀도 단지 백제의 무령왕릉만 추가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묘지명에 의하면 이 무덤의 완성 일시가 영락(永樂) 18년 무신(戊申)년 초하루가 신유(辛酉)일인 12월 25일 을유(乙酉)라고 밝혀져 있다. 양력으로 따지면 409년 1월 26일이다. 이렇게 보면 이 무덤은 무덤의 주인공과 축조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유일한 고구려 무덤인 셈이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이 덕흥리고분의 발견은 안악3호분 발견 이후 고구려 고고발굴 역사에서 최고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무덤의 묵서 중에는 날짜와 관련된 묵서가 하나 더 있었다. 널길 서벽에는 "태세재기유이월이일(太歲在己酉二月二日)"이라는 묵서가 쓰여 있었다. 음력 409년 2월 2일이며, 양력으로 3월 4일이다. 이 날짜는 무엇일까? 널길에 쓰여져 있고, 무덤 완성 일자보다 뒤인 점을 고려하면 아마도 무덤을 폐쇄한 시점을 기록한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그렇다면 무덤을 완성하고 무덤 주인을 안장하고 장례 절차 등이 한 달 넘게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고구려의 장례문화를 추적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처럼 무덤을 폐쇄한 날짜까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이 덕흥리고분에 담겨 있는 묵서의 사료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지금까지 언급한 몇몇 사례만으로도 덕흥리고분의 묵서가 갖는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덕흥리고분에 담겨 있는 벽화 제재의 풍부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림의 대상과 내용에 대해 그 이름과 설명이 묵서로 밝혀져 있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오늘 우리 입장에서 볼 때 벽화 내용이 무엇인지 그냥 짐작해보는 것과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고구려인의 의식과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명료한 '표지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벽화와 묵서 등 이 무덤에 담겨 있는 역사 자료의 가치로 볼 때 덕흥리고분을 현존하는 고구려 벽화고분의 첫 자리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덕흥리고분의 벽화와 묵서 내용이 모두 다 명료하게 이해될 수 있고, 이를 통해 고구려 역사의 단면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표지판'은 있지만 그 길로 들어서서 무엇을 찾을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덕흥리고분은 더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무덤을 만든 고구려인은 자신들이 담고자 하는 많은 사실과 생각, 관념들을 그림과 묵서로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오늘 우리들이 그 분명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덕흥리고분은 여러 치열한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묘주는 고구려인인가, 망명객인가? 유주는 고구려의 영토였나? 등등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런 논쟁점들을 짚어보겠다. 어쩌면 이런 논쟁점보다는 고구려인들의 삶을 이해하는데 더 귀중한 자료인 벽화 명장면들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덕흥리고분의 구석구석, 이모저모를 살펴보면 마치 고구려 역사의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 들 것으로 믿는다.
[임기환 서울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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