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의 왕비' 고보결, 비록 악역일지라도 [인터뷰]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예쁘장한 이목구비에서 한 번, 차분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말투에 두 번. 아름다운 겉모습만큼 부드러운 내면을 지닌 배우 고보결에게 어떻게 안 반할 수가 있을까. 이런 배우를 왜 이제야 알게 됐나 싶을 정도로 직접 만나 본 고보결은 다양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지난 3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극본 최진영·연출 이정섭)은 단 7일,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 동안 왕비 자리에 앉았다 폐비된 단경왕후 신채경(박민영)과 중종 이역(연우진)의 로맨스를 그린 작품이다. 고보결은 극 중 이역을 향한 연심으로 그를 왕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다 바치는 윤명혜 역을 맡아 연기했다.
늘 단역에서만 머물던 고보결은 이번 작품을 통해 꽤 비중 있는 역할을 맡게 됐다. 오디션을 봤을 당시만 하더라도 고보결은 윤명혜 역을 맡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처음 오디션 봤을 때만 해도 역할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다음에 미팅이 잡혔는데, 감독님이 제 전작품들을 찾아보시고는 가능성을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큰 역할인데 할 수 있겠냐고 하시길래 '잘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어요."
첫 사극이었고, 또 처음으로 비중이 큰 역할을 맡은 탓에 고보결은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단다. 이에 그는 대본엔 설명돼 있지 않은 윤명혜의 서사를 나름대로 채워 넣으며 연기했다. 또한 고보결은 이역을 사랑하는 욕망과 그를 왕으로 만들기 위한 열정이 짙은 보라색으로 다가왔단다. 이에 고보결은 윤명혜가 지닌 짙은 욕망과 열정, 슬프면서도 외로움 등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내는데 중점을 뒀다.
"이역은 명혜에게 눈길 한 번 안 주는데, 왜 명혜는 그에게 인생을 걸고 있나라는 생각했을 때 허망하고, 또 외롭더라고요. 그래서 명혜가 느꼈을 외로움과 우울감을 그대로 극에 녹여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야 시청자들에게 이 명혜라는 캐릭터가 진실되게 와 닿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라고요."
그의 말처럼 윤명혜는 이역을 향한 연심과 그를 왕좌에 올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로 그려졌다. 이 모든 일들을 대의라고 칭하며, 그 과정에서 여럿 목숨이 희생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철의 여인으로 비쳤다. 또한 극 메인 커플인 이역과 신채경의 사랑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또 모함하기도. 연적인 신채경을 죽이기 위해 독약을 가지고 다니거나, 대의를 포기하고 낙향을 결심한 이역을 각성시키기 위해 우렁각시 상단에 역모 증거를 일부러 숨겨 그를 위기에 몰아넣는 등. 윤명혜에게는 대의를 위해서였을지 몰라도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악행이나 다름없었다.
이역을 향한 외로운 외사랑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대의에만 매달리는 윤명혜를 연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 고보결은 "명혜는 거의 웃지도 않고, 대부분 많이 화가 나있거나 우울해하는 모습들이 많았어요. 그런 명혜를 연기해야 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라며 연기 당시 고충을 토로했다. 스토리상 악역이기에 미움받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고보결은 "명혜도 여자인데 사랑받고 싶지 않았을까요?"라며 윤명혜가 지닌 외로움과 그의 악행에 담긴 당위성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절로 아파온다고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윤명혜의 서사는 극 후반에 이르러서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바로 친우 서노(황찬성)의 죽음이다. 윤명혜로 인해 연산군 이융(이동건)의 서슬 퍼런 분노가 우렁각시 상단을 덮치면서 서노가 수장으로 몰리기 때문. 이에 서노는 진짜 수장인 이역을 지키기 위해, 누명을 쓰고 처형장의 이슬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에 고보결은 "명혜에게 서노는 외로움과 슬픔은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면서 서노의 죽음으로 인해 명혜가 소중한 사람을 잃는 두려움을 처음으로 느꼈을 거라고 했다.
서노와 옥사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과 처형장 장면을 촬영할 때를 떠올리던 고보결은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는지 다소 울컥한 모습을 보였다. "명혜에게 서노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였다고 생각해요.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단절시키면서 살아온 명혜에게 서노가 알려준 것들이 너무 크게 다가온 거죠." 명혜에게 서노의 어떤 의미인지 공감했기에 고보결은 두 장면을 촬영하며 유난히 많이 울었다고 했다. "너무 슬펐어요. 얼마나 울었는지, 민영 언니가 힘 빠진다며 그만 울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당시를 떠올리며 고보결은 그 여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듯했다.
대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윤명혜에게 서노는 사람의 중요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희생정신 등을 가르쳐준 소중한 친우였다. 그렇기에 그런 서노의 죽음 당시 윤명혜는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점차 개과천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역을 너무 사랑했지만, 이역이 신채경을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한 뒤 윤명혜는 중전에 오르려는 의지를 스스로 꺾는다. 물론 역사에 기록된 윤명혜는 중종의 비가 되지만, 극에서는 이 부분까지 다루지는 않았다.
극이 진행됨에 따라 달라지는 윤명혜의 감정선에 오롯이 이입해 극에 녹여낸 고보결. 비록 악역이었지만, 인물이 지닌 아픔과 외로움에 공감하며 고보결은 윤명혜 그 자체로 보일 만큼 손색없는 연기를 펼쳤다. 이에 시청자들은 고보결을 향해 아낌없는 호평을 보내기도.
"열정이 조금 남달랐던 현장이었어요. 사극이라서 그런지 집중도의 깊이가 남달랐죠. 사극이 조금의 디테일도 잘 보이는 장르잖아요. 또 스태프들도 배우들과 함께 다 같이 집중해주셔서 무사히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하는 각오부터 다른 작품과는 남달랐던 작품이었고, 게다가 시청자들의 호평까지 받았다. 이에 고보결은 '7일의 왕비'를 여러모로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또한 "저로서는 긴 호흡으로 극을 이끌어간 게 처음이었어요. 등장 신도 많았다 보니까 명혜로서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거든요. 그래서 다음 작품에서도 이런 느낌을 다시 찾고 싶어요"라고 연기 열정을 보인 고보결이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윤명혜로 살았던 고보결. 비록 악역이었을지라도, 고보결에게 '7일의 왕비' 속 윤명혜로 살았던 그 시간들은 앞으로의 연기 인생의 원동력이 될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연기인 것 같아요. 할 때마다 부서지고 깨지고 날을 세우는 외로운 싸움이기도 하거든요. 이걸 옳은 방향으로 풀어내서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티브이데일리 최하나 기자 news@tvdaily.co.kr/사진=송선미 기자]
7일의 왕비|고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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