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배 전문기자의 풍수와 삶]지안의 고구려 무덤은 왜 백두산을 바라볼까
[동아일보]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
장군분은 일찌감치 도굴돼 유해는 물론이고 유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지상에서 높은 공중의 혈(穴)자리에 조성된 무덤방(墓室)에서 부부 합장으로 나란히 놓인 두 개의 석관이 발견됐을 뿐이다. 이 석관 구조로 시신의 머리 부위가 동북방(방위각 55도)을 향해 배치돼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직선으로 거리를 더 확장하면 백두산 천지를 만나게 된다. 장군분이 백두산을 향한다는 것은 위치상으로 볼 때 틀린 말은 아니다.
장군분뿐만 아니다. 광개토대왕의 무덤인 태왕릉 구조도 비슷하다. 서남방(256도)에 있는 묘문(墓門)을 들어서면 무덤방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데, 무덤방 내 석관은 시신의 머리를 두는 두향(頭向)이 동북방으로 배치돼 있다. 대체로 묘문과 두향은 일직선상에서 서로 정반대 방향이게 마련이다. 왕릉급 무덤은 물론이고 씨름 벽화로 유명한 각저총, 아름다운 춤 벽화가 있는 무용총 등 지안의 고구려 벽화 고분들도 대부분 묘문은 서남방, 두향은 그 맞은편인 동북방 구조다.
풍수에서는 시신의 두향을 중요하게 본다. 특히 패철(나침반)로 상징되는 ‘이기파(理氣派) 풍수’에서는 방위를 철저히 따진다. 이들은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길흉화복이 달라진다고 본다. 이기파 풍수, 즉 방위 풍수는 중국 송(宋)나라 때 이론 체계가 갖춰졌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니 훨씬 이전 시기에 활동했던 고구려 사람들이 풍수의 방위상 길흉을 따져 두향을 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안의 고구려인들이 백두산을 신성시해서 머리를 동북방으로 누이게 했다는 주장도 허점이 있다. 백두산 일대가 고구려 강역이긴 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사료에서 고구려인들이 백두산을 직접 언급한 기록이나 신성시한 근거를 찾아볼 수 없다.
필자는 고구려 무덤들의 독특한 두향 배치를 고구려인들의 천문관에서 찾는다. 고구려인들은 뛰어난 천문 관측가들이었다. 그들이 고분 벽화에 남긴 별자리 그림들은 중국 별자리 그림들을 압도할 정도로 수준이 높고, 개수도 많으며, 차별화돼 있다. 고구려인들이 독자적으로 천문 관측을 했다는 뜻이다.
고구려인들은 삼족오(三足烏)로 상징되는 태양에 대한 제사도 꼼꼼히 챙겼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인들은 해가 가장 긴 날인 하지(양력 6월 21일경)와 해가 가장 짧은 날인 동지(12월 22일경)에 돼지를 바쳐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냥 돼지가 아니라 북두칠성의 화신(化身)인 제사용 돼지(郊豕·교시)였다. 고구려 유리왕이 졸본에서 위나암성으로 도읍지를 이전할 때 이용한 바로 그 돼지다.
특히 고구려인들은 터잡기를 할 때는 하지 때 해가 떠오르는 방위를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하지는 태양의 기운이 가장 극성할 때다. 가장 양기가 충만한 날, 해가 처음으로 떠오르는 곳인 동북방은 의미가 깊을 수밖에 없다. 이를 하지일출선(夏至日出線)이라고 한다. 지안에서는 1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지에 해가 떠오르는 방위각은 정확히 60도로 동북방이다. 이 하지일출선을 따라 고구려 고분의 피장자들이 양의 극성한 기운을 받도록 두향을 정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는 고구려인들의 강건한 기상과 이미지가 서로 연결된다.
두향뿐만 아니다. 지안 국내성의 기운을 지켜주는 주산(主山)인 룽산(龍山)도 동북방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 때 해가 룽산 위로 떠오른다. 지안에서 직선거리로 180여 km 떨어진 백두산은 지안의 주산이 되기는 어렵다. 보통 주산은 도읍지에서 가시권에 있는 산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고구려의 또 다른 도읍지였던 환런(桓仁)현의 고구려인들이 동북방에 위치한 오녀산성을 신성시한 이유도 설명된다. 북한 평양성과 대성산성이 있는 대성산도 그런 관계다.
하지일출선상에 놓인 고구려 도읍지의 주산과 고분의 두향은 천문과 지상 세계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고구려 고유의 풍수 문화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상과 지하의 세계에 집중한 중국의 풍수문화보다 격이 높았던 고구려의 ‘천문 풍수’가 자랑스럽다.
안영배 전문기자·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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